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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타임 목회칼럼> 풍요의 역설 | 하늘가족 | 2026-0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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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역설 세상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변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대개 감이 오지요. “라떼는 말이야… 그 시절엔 참 좋았는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꼰대가 과거를 미화하며 추억하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참 좋았습니다. 그냥 다 좋았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이 아니어도 ‘우리 교회’였고, 그 시절 목사님들은 요즘처럼 고학력도 아니었고 대단한 언변이나 쇼맨십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목사님’이었습니다. 노트에 받아 적으며 들었던 설교는 때로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했고 말씀대로 살아보고 싶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제 믿음이 순수해서였을까요? 세상에 덜 물들어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교회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목사님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한 교회를 다니면 다른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기회도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상 유일한 말씀의 통로였지요. 부흥회가 열려야 강사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고, 연합수련회에 가야 또 다른 말씀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던 당부는 “담임목사님께 잘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다른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였기에, 한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린다고 하면 ‘심령부흥성회’ 포스터를 곳곳에 붙였고, 지역의 성도들이 그 교회로 모여 함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갈급했습니다. 참으로 빈곤한 시대였습니다. 시청각 교재라야 궤도나 슬라이드, OHP 정도였고, 악기는 드럼 대신 북과 손뼉이 전부였습니다. 빈곤한 만큼 희귀했고, 희귀했기에 갈망했습니다. 갈망했기에 작은 것으로도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난한 날의 행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불과 30~40년 만에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인터넷은 시공간을 넘어 세상을 하나로 연결했는데, 시외전화와 국제전화를 기억하는 세대라면 이 변화가 얼마나 급격한지 실감할 것입니다. 정보를 독점해 이익을 얻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정말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세계적인 설교자의 설교도, 저명한 신학자의 강의도 실시간 통역과 함께 손안의 화면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온라인에는 언제든 더 세련되고 수준 높은 설교가 넘쳐나니까요. 굳이 주일 아침 서둘러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팬데믹을 지나며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도 예배를 시청할 수 있는 세상에 익숙해졌습니다. 아이스크림 광고처럼 이제는 ‘골라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말씀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에서 과연 말씀은 귀합니까?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다. 흔해졌습니다. 흔해지니 소중함도 옅어졌습니다. 눈은 더 고급스러워졌고, 귀는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사람이 아니라 맛을 즐기는 미식가가 되면 음식은 점점 더 까다로운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자 취향이 생겼습니다. ‘내 스타일’이 중요해졌습니다. 말씀은 더 이상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심지어 설교자에게 요구합니다. “은혜를 끼쳐 달라”고. 오늘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지만, 그 귀함을 잘 모릅니다. 귀함을 모르니 갈망도 없습니다. 갈망하지 않으니 영혼은 더욱 곤고하고 쇠약해집니다. 이것이야말로 풍요의 역설이 아닐까요? 말씀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세상의 풍요로 충분하다고, 배부르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회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풍요가 저주가 아니라 진정한 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가 기준이 되어 취향대로 말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기준이 되어 나를 말씀에 맞추어 가는 태도 말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렘 42:6) 이기형목사(캘거리 하늘가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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