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타임 목회칼럼>‘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와 같이 합당한 말을 | 이기형 | 2024-1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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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와 같이 합당한 말을 은혜롭고 평화가 가득할거 같은 교회에서는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부르시고(마 23:33), 베드로를 향해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하셨으니(마 16:23) 그 정도는 가능할거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보니 강단에서도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기도 하고 어렵지 않게 마귀 사탄을 들먹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말에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가 있었는데, 거기 참여하지 않는 자들을 마귀 사탄 이완용 바퀴벌레라고 말씀하신 목사님도 계셔서 교회 안의 언어도 사납고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에서는 교회의 언어가 온화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거 같습니다. 누군가 SNS에 올린 ‘교회에서 욕대신 쓰라고 가르쳐준 말’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욕설을 비슷한 의미를 담아내는 교회의 용어로 바꾼 것입니다. 이런 겁니다. ▸ㅈㄴ → 진실로 ▸닥쳐 → 잠잠히 묵상해 ▸꺼져 → 광야로 걸어가 ▸개빡치네 → 머리가 홍해처럼 갈라질 것 같아 ▸ㅅㅂ → 이 곤고한 자야 ▸새끼 → 깜찍한 어린 자녀야 ▸미치겠다 → 은혜가 넘치네. 분노가 치밀어 “이 새끼야, 닥쳐”라고 하고 싶은데 “깜찍한 어린 자녀야, 잠잠히 묵상해” 이렇게 말한다면, “ㅈㄴ 개빡치네”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진실로 머리가 홍해처럼 갈라질 것 같아”라고 말한다면, “회사에 일이 많아 미치겠다”는 표현도 "오늘도 회사에 오니 일이 많아 은혜가 넘친다"라고 말한다면 예민하고 사나운 분위기도 은혜롭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말은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귀한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2:34). 입에서 쓰레기와 같은 말이 나온다면 그 마음에 쓰레기로 가득하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외모를 가꾸고 악세서리 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씁니다. 옷에 얼룩만 져도 그 옷을 입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상대를 향한 예의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값비싼 향수를 뿌리면서도 정작 그 입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의 악취를 뿜어낸다면 너무 무례한 것인 아닐까요?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시고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않다고 가르쳐 주십니다(엡 5:4).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사람일진대 혈기가 올라오고 감정이 상할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럴 때 세상에서 가르쳐준 지혜를 사용해 보심도 어떨까 합니다. “진실로, 이 곤고한 자야, 은혜가 넘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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