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유구한 어느 교회에 설립 초기부터 섬기시던 교인이 계셨습니다. 담임목사님은 바뀌었어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면서 교회를 섬기신 덕분에 집사를 거쳐 장로의 직분도 받으셨습니다. 이 장로님은 젊은 시절부터 이 교회와 인생을 함께 하셨으니 교회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도 남다르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담임목사님은 예배당 건축을 원하셨는데 장로님께서는 무리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두 분이 갈등하시다가 장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네요. “목사님, 목사님은 건축하다가 힘들면 다른 교회로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고스란히 뒷감당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무리해서 하면 안됩니다”
담임목사님들이 위임목사가 되어도 더 좋은 사역지가 나오면 떠나는 것이 다반사인지라 장로님의 말씀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닌거 같지만, 면전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놀라울뿐더러 담임목사님을 그렇게 떠날 수도 있는 사람으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그 담임목사님이 서운함을 넘어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고 표현에 오해가 될만한 여지가 있기에 장로님께서 사과하시고 오해를 푸셨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장로님께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를 떠날지라도 나는 끝까지 교회를 지키겠다는 그 마음이 참 귀하고 소중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교회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교회는 누구의 것일까요? 물론 주님의 교회라는 것은 상식이지만, 사람들은 쉽게 말해서 목사가 주인인지 장로가 주인인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장로 임직을 위해서는 장로 고시를 통과해야 하는데 면접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교회의 주인은 목사입니까? 장로입니까?”라고 합니다. 장로라고 대답했다간 고시에 통과하기 힘들겠지요. 그렇게 안수를 받고 장로회에서 신임 장로 환영을 하는데 선배 장로가 질문합니다. “교인의 대표는 목사입니까? 장로입니까?” 그러면서 ‘담임목사는 월급쟁이일 뿐이고 장로 교회의 주인은 장로’라고 교육한다는 겁니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주인이라고 우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헤게모니, 주도권 싸움일 겁니다.목사가 교회를 사유화하고 자식들에게 세습하는 현실이 너무 유감스럽고, 장로가 목사는 바지 사장이니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는 무의식도 유감스럽습니다. 주인은 따로 계시는데 종들이 주인노릇하려 하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몸은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유감은 성도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내 교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 농촌 사회는 어지간해서 이동하지 않았고 한번 정한 교회가 평생의 교회였을 뿐 아니라 자자손손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내 교회라는 애착이 있었습니다. 예배당이 성전일리 없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예배당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예배당 청소를 하고 화단을 가꾸며 손길과 마음을 주었습니다. 마음의 중심에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나뭇잎처럼 작은 바람에도 쉽게 움직입니다. 입맛 따라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맛집 탐방하는 미식가처럼 그렇게 교회를 옮겨 다니기도 합니다. 교회를 서비스업으로 생각하는 거지요. 세계화의 바람이 온라인 예배와 함께 찾아와서 더욱 선택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는 2023년 한국교회 트렌드 중에 하나로 플로팅(floating) 크리스천, 2024년 트렌드 중에 하나로 OTT 크리스천을 주목했습니다. 이제 내 교회가 없어졌습니다. 목사는 떠나도 나는 교회를 지킬거라는 그 결연한 의지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찾아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게 맞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감히 자기 거라고 사기쳐서는 안되니까요. 그러나 교회가 건물은 아니라는 것쯤은 오늘날 상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받은 거룩한 성도들이 교회라면 내가 그 교회 아닙니까? 내가 없으면 교회도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내 교회라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교회라는 생각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가 교회라면 그 교회가 내 교회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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