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스타임 목회칼럼> 훈수의 지혜 | 이기형 | 2022-10-21 | |||
|
|||||
|
훈수의 지혜 대형교회 부교역자로 오랜 세월 사역하면서 여러 가지 배움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기에 큰(?) 목회를 하는구나’ 노하우(?)도 배우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반면교사로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의 사정을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더 잘 알게 되다보니 ‘난 훗날 그렇게 하지 않을거라’는 각오도 다져 보았었습니다. 비법도 배우고 해서는 안되는 반면교사도 배웠으니 현장에 나가면 잘 하겠지요? 누구나 나에게 맡겨주면 저 사람보다는 잘 할거라고 자신합니다. 대통령을 맡겨줘도 지금 대통령보다는 잘할거라고 큰소리칠 겁니다. 지금 대통령을 하신 분도 그렇게 큰 소리쳤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한번 해 보겠다고 나섰는데, 생각보담 잘 안되는 모양입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 실제 안에서 만나는 현실은 달라서일까요? 저도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수련하던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아니라 개척교회 담임목사가 되었으니 대형교회를 일구는 노하우도, 저렇게는 안할거라는 반면교사도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전혀 다른 세상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다른 사람들의 사역에 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있고 충고라도 해 줄 수 있을거 같은데, 정작 나의 상황에서는 답이 보이질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나는 잘 할 수 있을거라 싶었는데 그게 아닌 겁니다. 아마 누군가는 저에게 ‘그렇게 하면 안되지, 이렇게 하면 될텔데’ 너무 쉽게 답을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다른 사람의 사역에 쉽게 답을 얻었던 것처럼, 누군가 밖에 있는 사람은 쉽게 답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훈수는 바둑이나 장기에서 나온 말로, 바둑이나 장기를 뚜는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거나 실수로 안좋은 수를 두었을 때 주변에 구경하는 사람이 더 좋은 수를 가르쳐주는 것을 뜻합니다. 게임에 집중하다보면 수 하나 하나에 집중을 하다가 시야가 좁아져서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는데, 구경꾼은 그런 것 없이 여유롭게 판을 관망하니 의외의 수를 볼 수가 있는 겁니다. 훈수를 두는 사람은 구경꾼입니다. 꼭 이겨야하는 강박감도 없고 책임감도 없습니다. 역설적인데 그래서 길이 보입니다.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길이 없는데 나를 내려놓고 전체를 바라보니 길이 보입니다. 욕심을 내려 놓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욕심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음으로 얻을 수 있음은 역설이며 진리입니다. 나의 자리를 벗어날 순 없지만 나의 입장과 욕심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제자도의 첫걸음인 ‘자기 부인’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따를 때 첫 단추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나를 벗어나는 것이 참된 나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답답하시다면 내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훈수에 귀를 기울여 보시는 것이 어떠실지요.
이기형목사 (캘거리 하늘가족교회 담임)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