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스타임 목회 칼럼> 아 내 탓일까, 아내 탓일까? | 이기형 | 2022-03-05 | |||
|
|||||
|
3월 3일 교민신문 디스타임(https://thistime.ca)에 기고한 목회 칼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방어 기제가 작동합니다. 자기의 정당성을 변명하고 어떤 일의 책임과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곤 합니다. 의인은 없고 부패하고 더러운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 하시는데요, 자기를 살피고 통회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십니다. 먼저 스스로를 살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아 내 탓일까, 아내 탓일까? 요즘 흔하게 들은 사자성어는 내로남불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를 말합니다. 거기에는 철저하게 자기는 맞고 남은 틀렸다는 자기 합리화의 이기주의가 들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로남불을 자기에게 적용하여 성찰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타인을 향한 비난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역시 내로남불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이기적이 되었을까요? 누군가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라고 그러던데,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습니다.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는 너고 너는 나다”라고 하면서 웃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심오한 진리가 있지 않습니까? 우분투,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는 이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맞습니다. 사람은 본래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너는 나라는 이 말을 처음 감탄하면서 사용한 사람은 아담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낯선 상대가 경쟁자가 아니라, 위협을 주는 경계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고백한 사람은 인류의 시조 아담이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래서 둘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었던 것이지요. 사랑이 그러하고 사랑의 만남 부부가 그러합니다. 처음 인류의 시조는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하나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상대를 향해 ‘나’라는 1인칭 대명사로 불렀던 아담이, 2인칭 ‘당신’도 아니고 3인칭 ‘그’로 부르는 것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 인류의 시조가 죄를 범했습니다. 죄가 들어와 관계를 망가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아담에게 묻습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은 ‘아, 내 탓입니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탓입니다’라고 핑계를 대고 책임을 돌립니다. 같은 글자 아닙니까? 조금만 생각하면서 아! 하고 탄식하며 생각했더라면 ‘내 탓입니다’가 나왔을텐데 아담은 성급하게 ‘아내 탓입니다’로 책임 전가를 합니다. 가장인 남편이 자기 살겠다고 자기의 잘못을 아내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살 길은 회피가 아니라 회개일텐데요 이미 죄로 인해 이기심에 어두어진 것입니다. 잘 되면 자기 탓이고 안되면 조상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탓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잘못 만났다고 환경과 형편을 원망하면서 끊임없는 불평을 만들어 냅니다. 성도들도 교회를 잘못 만났다고 아무래도 교회를 바꾸어야 신앙이 좋아지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바꾸지만 이내 불평 거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왜 남의 눈에 티가 그렇게 잘 보이는 것일까요? 어쩌면 내 눈에 들보가 들어 있어서 만사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요? ‘아내 탓’이 아니라 사실은 ‘아, 내 탓’이 아닐까요? 수십년 전 한국 카톨릭은 ‘내 탓이오’ 캠페인을 펼쳤었습니다. 세리는 가슴을 치면서 나는 죄인이라고 내 탓이라고 회개하지만, 바리새인은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드린다며 정죄하고 심판했습니다. 자기는 의롭고 다른 사람은 죄인이라고 판단하지만 주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내 탓이라고 회개하는 세리는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자기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은 오히려 정죄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아 내 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아내 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