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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타임 목회 칼럼> 사실과 진실 | 이기형 | 2021-09-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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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교민신문 디스타임(https://thistime.ca)에 기고한 목회 칼럼입니다.
사실과 진실
어릴 적 하굣길에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면 엄마가 우산을 들고 찾아오십니다. 작은 우산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기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거의 옷이 젖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건, 먼 훗날 알게 된 비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한 우산 속에서 데이트할 때도 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으니까요.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 거친 비바람으로부터 안전하고 평온하게 지켜주는 그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따뜻하고 감동적인지요. 자기는 흠뻑 젖을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내 공간을 내어주는 희생은 정말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언론을 뜨겁게 다룬 우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건은 지난달 28일에 아프가니스탄 난민 정착 지원과 관련한 법무부 차관의 언론 브리핑에서 있었답니다. 마침 비가 내린지라 부대변인이 차관에게 우산을 받쳐 주었는데 언론은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J일보는 ‘차관님 비 맞을라...아스팔트 무릎 꿇고 10분간 우산 댄 법무부 직원’이라는 제목으로 “10분 이상 법무부 한 직원은 강 차관 뒤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 꿇고 양손으로 우산을 받쳐 올려 강 차관이 비를 맞지 않도록 했다”며 친절한 설명을 깃들였습니다.
이 후 언론이 앞다투어 쏟아내는 자극적인 보도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까지 편승해서 비난하는 바람에 대통령까지 나서 언급할 만큼 이슈가 되었고 결국 당사자인 법무부 차관은 사과까지 해야 했습니다.
사진은 조작된 것도 아니었고 그 설명은 사실 그대로였습니다. 아무리 차관이라지만 방송에 나와 자기 혼자 돋보이겠다고 부하 직원에게 체벌 아닌 체벌을 가한 그런 인간은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겁니다. 누구라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진실은 따로 있었답니다. 그 장면을 연출한 사람은 법무부가 아니라 방송국 기자들이었다구요. 브리핑이 시작되자 방송국 기자들이 차관 옆에서 우산을 받쳐 든 법무부 직원을 화면발을 위해 차관 뒤로 가게 했습니다. 뒤에 있어도 손이 보이니 더욱 자세를 낮추라고 요구했답니다. 이 직원은 엉거주춤 쪼그려 앉다가 다리가 아파지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우산만 보이게 한 것이라네요.
우리는 사실에 분노하지만, 진실에는 관심 두려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방송국 기자들입니다. 자기들의 작품이니까요. 자기들이 연출하고서 시치미 떼고 다른 사람들에게 덤터기를 씌웁니다. 협력하는 직원이 같이 나오면 안 된다고 그를 퇴장시킨 사람들이 상사를 위해 궂은일을 마다한 그를 위하는 척 몰매를 던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닐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큰 그림으로 바라보면 비로소 사실과 다른 진실이 보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정보의 왜곡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확증편향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 더욱 빈번할 것입니다.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고 경고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진실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당사자의 마음 말입니다. 그는 무슨 마음으로 차관의 엉덩이 뒤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 들었을까요? 직장인지라 마지못해 우산을 들었을까요? 아니면 존경하는 차관을 위해 기꺼이 양복 한 벌 버리는 심정으로 우산을 들었을까요? 그가 속내를 밝히지 않으니 알 수도 없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이 있었기에 그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 아름다운 희생을 기억해주는 사회라면 좋겠습니다. 그 사진으로 근거 없는 비난으로 여론몰이할게 아니라 이름 없이 수고한 그를 향한 칭찬이었더라면 좋았을뻔했습니다. 설령 어쩔 수 없어 억지로 무릎 꿇었다 해도 그는 칭찬받아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기형목사 (캘거리 하늘가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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