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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타임 목회칼럼> 여러분의 신앙의 민낯, 지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이기형 | 2021-0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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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교민신문 디스타임(https://thistime.ca)에 기고한 목회 칼럼입니다. 오랜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을 드러내듯이, 오랜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신앙의 바닥도 드러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비상 시국에는 하나님도 다 이해해 주실거라는 착각과 지금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쉬라고 하시기에 그냥 아무 것도 하지말고 푸욱 쉬어야 한다고 합리화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여러분의 신앙의 민낯, 지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알제리의 한 남성이 결혼하고 아내와 행복한 첫 날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옆에 누운 여인을 보고 까무러치게 놀랐답니다. 그가 결혼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은 온데간데 없고 생전 처음보는 낯선 여인이 누워 있으니 그럴만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 남성은 결혼 전에 아내의 민낯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늘 아름답게 화장한 모습만 보고 사랑에 빠졌는데, 깨끗이 씻고 잠든 아내의 민낯을 확인하고 그동안의 사랑은 싹 달아났을 뿐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며 사기 죄로 고소하면서 위자료를 요구했다 합니다. 정말 현실인지 아님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는 장난인지, 얼마나 화장술이 뛰어났으면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는지, 그렇다고 얼굴보고 결혼한 것도 아닐텐데 너무하는거 아닌지 싶기도 하고, 전혀 다른 여성이었다면 그 충격도 헤아려 볼 수 있을거 같기도 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청춘들은 꼭 민낯을 확인해 보셔야 할거 같습니다. 그런데 확인이 안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지요. 한 병원에서 성형외과 의사와 일반외과 의사가 갓난 아기를 안고 퇴원하는 산모와 마주쳤습니다. 엄마는 절세미인인데 아기는 못생긴 겁니다. 성형외과 의사가 아는 체를 했다지요. “어머나, 아기가 엄마를 꼭 빼닮았네요.” 아기 엄마가 지나가자 다른 의사가 물어봅니다. “이봐, 전혀 닮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야?” 성형외과 의사가 대답합니다. “어, 아기 엄마가 처녀 때 내 환자였거든” 아름답게 가꾸는 것에 대해 딴지를 걸려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아름다움도 능력이라는 오늘 우리 시대에 화장술과 성형술이 얼마나 발달해 있는데 그 도움을 받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되고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좋습니다. 본래의 나도 나일 것이고, 화장한 나도 나일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나는 누구일까요? 잠시 화장으로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은 돋보이게 할 수 있지만, 그건 잠시입니다. 그게 나의 본판은 아닐 겁니다. 성형으로 아름다움을 가꿀 수는 있습니다만, 외모의 아름다움은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나의 민낯이라면, 본 모습이라면, 본 판이라면, 이런저런 화장이나 위장 변장하지 않은 본래의 나... 그것을 인격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언제 꾸미지 않은 인격의 민낯을 볼 수 있을까요? 형통하고 순조로울 때는 누구나 너그럽고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과 위기의 시간에는 비로소 그 밑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름다운 호수였는데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면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쓰레기들이 드러납니다. 참된 사랑도 역경 가운데 드러납니다. 행복할 때 사랑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어려울 때 사랑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이 참된 사랑이지요. 연애의 공식 가운데 사계절을 함께 겪어봐야 한다는 것은, 따스하고 선선한 봄 가을뿐 아니라 한 여름날과 같이 열 받는 일에, 차갑게 얼어붙는 한파와 같은 역경에 비로소 상대의 본 판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위기 가운데 비로소 본래 모습이 드러납니다. 코로나로 인해 1년 넘게 예배 모임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세요?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은 지나간 과거에 뜨거웠던 추억이 아닙니다. 앞으로 코로나가 끝나면 열심히 할거라는 기대도 아닙니다. 지금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 드리는 지금의 모습이 정직한 신앙의 민낯입니다. 어쩌면 요즘 주님은 교회와 신앙인들의 민낯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나중에 잠잠해지면 그 때 뵙자고 한다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주님만을 사랑하겠다는 그 서약은 어디로 갔는지 주님께서 망연자실하지 않으실까요? 상황에 따라 바뀌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어떠하든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움직이는게 아닙니다. 이기형목사 (캘거리 하늘가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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