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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타임 목회칼럼> 만물의 영장이 달팽이를 부러워하는 이유 이기형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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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교민신문 디스타임(https://thistime.ca)에 기고한 목회 칼럼입니다.

찬송가 438장,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맞나요?
거친 들의 초막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은 내 주 예수 모셨기 때문이라 합니다.
악인의 장막보다는 내 하나님 문지기가 더 좋다는데 과연 맞습니까?
이런 질문들이 극단적인 이분법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궁궐과 장막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는 아닐까요?
그래도 세상 살 동안에는 내 이름 문패 붙인 집 한 채는 있어야 할거 같은데...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집을 갖고 태어난 달팽이가 부럽습니다.
<만물의 영장이 달팽이를 부러워하는 이유>
사람이 살아가는데 3가지 필수적인 요소를 의식주라 합니다. 에덴 동산처럼 벌거벗고 살 수 없기에 옷도 필수이고,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 역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의식주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다다익선의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을 가지려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기보다는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즐기거나 여러 해 누릴 것을 쌓아 두고서 대대로 즐기려 합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약육강식의 밀림이 되겠지요. 그래서 국가 정책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힘을 모아줍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금번에 드러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보면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거 같아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 어느 정권이든지 속수무책이지만, 특별히 금번 정부는 더욱 무능을 드러내었습니다. 정권 실세들도 똘똘한 집 한 채를 택하고 관직을 박차고 나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정부 인사들만이겠습니까? 입법을 하는 사람들이 그 수혜자들인데 자기들 스스로 부당이익 환수라든지 이해충돌방지법 등의 족쇄를 채울리 만무하니, 정권은 바뀌어도 신화는 깨지지 않습니다.
한 가족이 살아가는데 도대체 몇 채의 집이 필요할까요? 한 채면 되겠지요. 호젓한 곳에 별장을 둘 수는 있겠지만요. 더 많은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집은 더 이상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재산이 되어서 집이 절실한 사람들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의식주, 그 기본적인 삶의 요소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들은 선지자 이사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이들에게 통렬한 저주를 퍼붓습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선지자는 화가 있을거라 하지만, 오늘 우리 자본주의 시대는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꿈꾸는 직업 현황' 설문조사에서 건물주가 2등을 차지했습니다. 사람들은 건물주가 아니라 갓(God)물주라고 합니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주거 공간을 몇 사람이 독점함으로 많은 사람들은 집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동물은 날 때부터 자기 집을 가지고 태어난 달팽이라고 합니다.
식량이 재산 가치가 되어서는 안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대지도, 주거 공간도 재산 가치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집이란 누구든 살 수 있어야 하고(living) 그러기 위해서 살 수 있도록(buy)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책과 정치가 필요합니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대통령이 생각납니다. 대통령 궁을 노숙자에게 내주고 본인은 원래 살던 농가에서 출퇴근했다지요.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의 이상과 현실은 멀리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머리둘 곳조차 없이 지내셨습니다(마 8:20).
가져가진 못하더라도 자손들을 위해 남겨둘 수는 있을거라 생각하기에 그렇게 가옥에 가옥을 모으나 봅니다. 물론 정당한 경제활동을 비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착한 임대인이 되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손들을 위한 거처까지 마련하셨다면, 정작 본인의 영혼의 안식처는 준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의식주 기본 생활 여건마저 갖추지 못한 이들을 조금이라도 돌아보는 것, 그것은 장래 자기를 위해 좋은 터를 닦는 것입니다(딤전 6:19)
오늘 우리의 삶이 ‘이생망’처럼 생각되어도 절망하진 맙시다. 육신을 위한 안식처가 불편해도 영혼의 안식처가 있다면 자유와 안식을 누릴테니까요. 소유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존재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세상이 그를 옭아매지 못할테니까요.
평생 내 집이라 할 곳도 없고, 나그네 인생 불편한 인생 캠핑으로 지내 오셨다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처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아파트 청약보다 확실한 아버지의 집이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불편하더라도 견디고 소망해 봅시다.
이기형목사 (캘거리 하늘가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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