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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214(주) 기다림1. 기름도 준비하는 슬기를(마 25:1-13) | 이기형 목사 | 2025-1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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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5:1-13절 개역개정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2025년 12월 14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1214(주일예배) 기다림1. 기름도 준비하는 슬기를(마 25:1-13) 대림절 대림절은 한자어인데, 기다릴 대(待)와 임할 림(臨)자를 사용한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예수의 오심은 2가지 차원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은 역사 가운데 이미 성취되었다(Already). 성육신 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 이것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절기가 성탄절인데, 이 성탄절을 4주동안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가 대림절이다. 대림절의 두 번째 다른 차원의 기다림이 있는데. 두번째 오심은 앞으로 오시겠다는 약속이다. 다시 오심을 한자로 재림(再臨)이라 한다. 첫 번째 오심은 구원이었지만 다시 오심은 인류 역사의 종말과 심판을 위해서이다. 아직 오시지 않았기에 Not Yet이라 하는데, 슬기로운 자는 심판이 임하기 전에 준비할 것이다. 과연 사람들은 주님의 오심에 대비해서 충분히 준비하고 있을까? 여러분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문제로 누군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가? 말세와 재림에 대해서는 일부 열광적인 사이비 이단들이 관심을 가지고 전도할 뿐이고, 그마저도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 현실도피이다. 재림을 준비한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하게 되는 것처럼 보여서 현재만 바라보다보니 언젠가 오신다는 주님은 저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이 대림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곧 대림절에 어떻게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이번주와 다음주에 걸쳐서 살펴보려 한다. 본문이해. 결혼식 이야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시기를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신다.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은 정혼을 하고 신랑이 1년 정도 지참금 같은 결혼 준비를 마치면 신부를 데리러 신부 집을 찾는다. 신부는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가 신랑을 맞이하는데, 먼저 신부의 친구들 들러리들이 신랑을 맞이한다. 유대의 결혼식은 대개 밤에 시작되었기에 들러리들의 필수품은 등불이었다. 신랑을 맞이한 신부는 들러리들과 함께 등을 밝혀 신랑 집으로 이동해서 며칠동안 잔치를 벌인다. 그러니까 본문의 배경은 신랑이 신부집을 찾아갈 때 신랑을 맞이할 열 명의 들러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들 중에 다섯은 미련했고 다섯은 슬기가 있었다. 슬기와 미련의 차이는 무엇일까? 본문은 단순하다. 미련한 자들은 등은 가졌지만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고, 슬기있는 자들은 등과 함께 여분의 기름을 그릇에 담아 준비하였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느냐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할까? 현재로는 별 차이가 없다. 모두의 등불에는 기름이 있어 불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기로 한 신랑이 더디오는 것이다. 기대했던 예상했던 시간을 넘겨 오지 않는 것이다. 밤은 깊어가고 자연히 졸음이 찾아오고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슬기로운 처녀들도 미련한 처녀들도 모두 졸고 잠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신랑이 도착했으니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열명의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신랑이 늦게 오는 바람에 등에 있던 기름이 없어져서 등불이 꺼져가는 것이다. 미련한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한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나누어 주었다가 도중에 떨어지면 큰일이니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오라 한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기 위해 떠났고 그 때 신랑이 와서 준비한 자들 슬기로운 처녀들은 혼인잔치에 참여하였다. 그렇게 혼인잔치의 문은 닫혔다. 뒤늦게 기름을 구입하고 혼인 잔치에 찾아온 미련한 다섯 처녀가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지만, 이미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들과 함께 결혼 잔치는 시작되었으니 그들은 이제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미련한 자들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허망하면서도 무서운 통보를 듣는다. 이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일까? 교훈, 기름을 준비하라. 여기 신랑은 당연히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그럼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열명의 처녀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다. 분명한 사실은 미련한 자들도 예수를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도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였다. 재림을 기다린다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엄중하다. 본문에서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졸거나 잠들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는 것인가? 신랑이 더디오자 지혜가 있든 미련하든 모두 다 졸며 잠들었다. 미련한 자들과 슬기있는 자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모든 것은 차이가 없지만 단 한가지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느냐의 차이이다. 우리도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자동차의 기름을 미리 체크하고 준비하지 않던가. 자동차에 기름 떨어지면 긴급 서비스를 받으면 되지만, 마지막 날 등불에 기름이 떨어진 것은 대체불가이다. 그럼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이 비유에서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통적인 해석으로는 성령 충만으로 이해한다. 예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에게 성령 충만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본문의 비유를 보면 슬기로운 자들의 조언이 기름을 파는 사람들에게 돈주고 사오라고 하는데, 성령을 돈 주고 살 수는 없다는 점에서 제약은 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성도의 착한 행실이라 하기도 한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라 했는데 그 빛은 착한 행실이라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유에서 기름이 의미하는 바를 한가지로 한정지을 수는 없을거 같다. 조금 넓게 해석하자면 성령 충만한 삶이라 할 수 있겠다. 등불과 기름이 있는데 불을 밝히는 것은 등불인가? 외형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진실은 등불이 아니라 기름이다. 심지를 태워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태워 빛을 낸다. 등불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모습이다. 신앙의 형식이라 하겠다. 예배라든지, 기도라든지, 봉사라든지, 교회에 다니는 것이라든지 겉으로 드러난 행실이다. 그러면 기름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중심이다. 믿음이고 성령의 충만함이다. 아무리 예배의 자리에 와 있어도 그 마음이 없다면 외식이고 껍데기에 불과하다. 아무리 봉사를 하고 기도를 해도, 자기 욕망을 채우고 명예를 위한 것이라면 그 역시 위선일 뿐이다. 등불과 기름, 뭐가 더 중요한가? 사람들은 보여지는 등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꾸미려 한다. 황금 보석으로 치장하고 더 크게 돋보이려 한다. 하지만 기름 없으면 장식품에 불과하지 등불을 밝힐 수는 없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기름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여러분의 겉으로 보여지는 믿음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의 내공은 어떠한가? 지금 부족하다는 주유등 싸인이 보인다면 지금 채워야 한다. 무시하고 가다간 큰 일 당한다. 아직 기회가 있다. 지금이 기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름을 채우는 주유소가 어디인가? 주(主)유(有)소(所) 주님이 계시는 장소, 바로 교회이다. 그렇게 수십년 예배당을 왕래했는데도 여전히 기름통이 채워지지 않았다면, 그 내면이 공허하고 그저 외적인 직분과 경륜과 짬밥으로 만족하고 있다면 정말 유감 아니겠는가? 50년짜리 등불이 골동품으로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금은 보석으로 치장한 등불이 장식품으로는 소용이 있을지 몰라도, 기름 없으면 어둠을 밝히는 등불은 될 수 없고, 주님 오심을 맞이하는 등불로도 쓰임받을 수 없다. 이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만이라도, 우리가 주님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불을 밝히는 기름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면 좋겠다.우리 모두는 신랑되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인데. 등불만 준비하는 미련한 자들이 아니라, 등불과 함께 기름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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