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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207(주) 결산 4.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벧전 4:7-10) | 이기형 목사 | 2025-1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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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7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1207(주일예배) 결산4.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벧전 4:7-10)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지난 3주간에 걸쳐 2025년 한해를 결산하면서 공허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과, 풍족하게 넘치도록 받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모든 인생에게는 인생 해고 마지막이 있음을 기억하고 지혜롭게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어떤 분이 설교가 잘 와닿지 않는다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셔서 한번 더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다. 오늘 네 번째 설교는 인생의 마지막이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이다. 오늘 성경 말씀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알려준다. 실감나시는가? 베드로가 이 말을 한 때가 62년 경인데, 2천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럼 없는 것이 아닌가? 베드로는 주님께서 아무도 망하지 않도록 오래 참고 계신다고 가르친다. 우리도 잘 준비해서 아무도 망하지 않았음 좋겠다. 그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1.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마지막이 되었을 때 먼저 할 일은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일이다. 졸거나 잠들었을 때, 혹은 깨어 있긴한데 딴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정신 차리라고 한다. 깨어 있어야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고 뭘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깨어 있어야 기도할 수 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 하셨지만 그들은 피곤함으로 잠들었고 결국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다. 성경은 깨어서 기도하고, 기도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순환논리로 가르쳐 주신다. 내가 깨어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기도하고 있으면 깨어 있는 것이다. 그럼 기도가 뭐길래 이렇게 마지막을 준비하는데 필수적으로 가장 먼저 강조하는가? 사람들이 기도하는 까닭은 부족한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서이다. 필요가 없다면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 역시 부족한 것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자 대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되심을 믿어야 기도할 수 있다. 우리의 기도의 무게 중심은 하나님의 주시는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쓸 것을 아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자녀이기에 당당하게 아버지께 필요를 구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그것을 주실 것이라는 것보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데 있다.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건강한가? 기도는 의무나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다. 기도는 개인 영성의 척도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깊은 만남으로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벧전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번에는 개인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는데,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연애하라는 것일까? 여기 헬라어는 아가페인데,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과(요일 4:16),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는 자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요 13:34). 사랑해야 하는줄 알지만 사랑하는게 쉽지 않다. 말세의 징조 가운데 하나가 사랑이 식어진다. 말세의 고통은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한다. 그래서 세상이 고통이다. 어떻게 뜨겁게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사랑을 나눌 수 없다. 내가 사랑받을만해서가 아니라 전혀 그렇지 못함에도 나를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는가?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면 사랑받을만한 이웃이 아니더라도 나도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마음은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뜨거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가 있다면, 죄와 허물이 보여서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감가는 사람은 저절로 끌리고 사랑의 마음이 생길텐데, 더럽고 추악한 죄가 보이면 다가서는게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 베드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허물이 없어서일까? 그럴리 없다. 하지만 허물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으로 덮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안보인다. 사랑하는 자의 약점을 감추지 폭로하지 않는다. 경쟁자의 약점을 폭로하고 그것을 통해 승리를 얻으려 하지만 사랑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연합이다. 부족함도 연약함도 감싸 안고 덮어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허물이 보이는가? 시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이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짓이 밉게만 보인다. 미운 짓만 골라하니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 있으면 뭘 해도 이쁘게만 보인다. 그것이 사랑의 신비 아니겠는가?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3. 불평말고 청지기로서 섬기라 (벧전 4:9-10)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첫 번째는 개인 영성으로 기도를, 두 번째는 관계 영성으로 사랑을 말했다면 세 번째는 공동체 영성으로 섬김을 말해주고 있다.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섬김을 받기 위해 살아간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그것을 보여준다. 돈을 벌고 권력을 가지는 이유는 편하고 쉽게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런 삶을 포기하고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렇다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이건 바보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 주인되시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섬김을 주는 것이 복이 있는가, 섬김을 받는 것이 복이 있는가? 주 예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 하셨다(행 20:35). 가난한 사람들과 섬김을 받으려는 부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누군가 돕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정한 부요자라 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들은 가졌지만 가난한 자들이다.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맡겨주신 청지기의 신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맡겨 주셨는가? 제각기 은사를 주셨고 여러 가지 은혜를 맡겨 주셨다. 나에게 주신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나에게 주신 은혜가 있다면, 그것은 나누라고 주신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서로 대접하는 것이다. 공동체에는 봉사하라. 우리 공동체는 작아서 봉사할 일이 없는가?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일 것이다. 마음만 있으면 너무 봉사할 일이 많이 있다. 우리에게 시간을 더 주신다면, 낭비하고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섬김과 나눔으로 가치있는 삶을 살아 가시기를 바란다. 마무리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베드로는 3가지로 가이드 해 주었다. 개인 영성으로 기도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와 만남 대화가 신앙의 기초이다. 관계 영성으로는 사랑을, 뜨거운 사랑은 죄와 허물도 덮어준다. 공동체 영성으로는 섬김을, 나에게 맡겨주신 것으로 대접하고 봉사하라 하셨다. 이건 세상을 거꾸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시류따라 떠내려가면 세상으로 끝나지만, 세상을 거슬러 올라갈 때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과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우리 하늘가족 식구들이 한분도 빠짐없이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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