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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27(주) 입술에서 마음으로 (마 15:7-9) 이기형 목사 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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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5:7-9절 개역개정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5년 7월 27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727(주일예배) 입술에서 마음으로 (마 15:7-9) 예배당의 변화 우리는 금주에 예배당을 새롭게 확장했다. 이전의 예배당에 비하면 거의 2배로 넓어져서 정말 새로워졌다. 예배당이 새로워졌다면 이것을 계기로 우리 예배자들도 새로워지면 좋겠다. 우리 교회도 새로워지면 좋겠다. 예배당은 이렇게 멋있게 변화되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변화가 아닌가 싶다. 변화가 쉬운 까닭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우리는 변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하지 않아 변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가하면 변화가 어렵다는 것은 우리 모두 공감한다.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변화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쉽게 변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있다. 변화와 비슷한데 참된 변화가 아닌 것, 그것을 우리는 변장이라 한다. 변장은 본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도록 외모를 옷차림이나 얼굴 모양을 바꾸는 것이다. 중심이나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겉모습을 바꾸는거라 어렵지 않다. 변장의 대표적인 예가 화장이 아닐까 싶다. 신앙의 변장 - 외식 신앙의 변장도 있을 수 있을까? 본래의 자신을 감추고 겉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신앙인인 것처럼 꾸밀 수 있을까? 얼마든지 가능하다. 변화는 어렵지만 변장은 쉽기에 많은 신앙인들도 쉬운 변장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외식이라 한다. 대부분의 한글 번역 성경은 외식을 위선이라고 번역했다. 헬라어 원어는 맡겨진 배역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를 뜻한다. 배우는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그 역할을 할 뿐이지 일상에서는 그렇게 살진 않는다. 그러니까 말로 연기하는 것 뿐이지 일상에서 그렇게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는 없다. 위인의 배역을 맡았어도 그가 위인은 아니고, 악역을 맡았어도 그가 악인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어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멋진 연기를 펼친다해도 그가 그리스도인일 수는 없다. 여기 본문에서 외식하는 자들아 라고 불렀을 때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다. 바리새인은 구별된 자, 분리된 자라는 의미인데 세속에서 구별되어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율법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기에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들이었다. 서기관은 율법을 필사하고 보존하며 해석하고 일상에 적용하도록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감히 일반 유대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 예수님꼐서 보실 때 이 모든 것이 연기라니 참으로 충격적이지 않는가. 외식 - 입술과 마음 그럼 예수님께서 이들을 외식하는 자, 위선자라고 하시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본문 8절에 이들은 입술로는 주님을 공경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멀리 있다고 지적하신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입술의 가르침과 고백은 정말 놀랍고 대단했다. 그렇지만 정작 마음은 주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입술의 소리와 겉모습을 볼 뿐이고 마음은 알 수가 없기에 바리새인들을 정말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송하지만, 주님은 마음을 보시고 중심을 감찰하시기에 그들을 위선자라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3장에서 그들을 향해 화가 있을거라고 책망하신다. 이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게 하였다(마 23:25). 사람들의 보기에 깨끗한 그릇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잔이나 그릇의 청결은 겉이 중요한가, 안이 중요한가? 겉도 깨끗해야지만 그보다 음식을 담는 속이 더욱 깨끗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지만 이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겉은 깨끗하게 하였지만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속에는, 하나님께 담아드려야 하는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셨다(마 23:27) 정말 아름다운 땅이 되려면 그 안에 있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들을 치워 버리면 회칠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땅이 될건데, 그 더러운 것은 그대로 두고 겉만 아름답게 보이도록 회칠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가 아니라 변장이다. 변장은 잠시동안 그 역할을 감당할 뿐이지 그 사람의 실체가 아니기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마 24:50-51) 본문 9절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위선을 가리기 위해 사람의 계명을 만들었다. 여기 사람의 계명은 앞서 2절에 나오는 장로들의 전통을 말한다. 장로의 전통은 율법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말한다.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 구체적인 세부 규칙을 만든 것은 잘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해석이 기록된 율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번거로울 정도도 상세하게 규정함으로 사람을 거기에 얽매이게 만들고 본래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리게 만든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사람의 계명을 만들고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헛된 일이라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랑하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그렇게 허무한 신앙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마무리 이렇게 예배당이 넓어지니까 너무 좋다. 하지만 예배당의 변화에서 그치는 것은, 겉만 그럴싸하게 꾸미는 바리새인들의 회칠한 무덤일 수 있고 대접의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한데 대접의 겉만 깨끗하게 하는 외식일 수 있다. 그러니 겉모양의 예배당의 변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의 변화로 나아가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예배당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의 예배를 받으시기 떄문이다. 교회의 변화, 곧 교회 공동체 식구들의 변화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 주님은 우리가 날마다 변화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힘든 변화를 선택하기 보다는 쉬운 변장을 선택하기도 한다. 변화는 중심과 본질의 변화라면 변장은 중심은 그대로 있어도 잠시 겉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변장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잠시 주어진 역할만 감당하는 것이다. 배우처럼 연기하는 것이다. 그러한 변장을 주님은 외식이라고, 위선이라고 지적하신다. 그렇게 살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칭찬하고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겉모습만 보기에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으쓱해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주님은 그런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신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니 정말 자기가 그런 사람인양 스스로 속아 넘어가지만, 마지막 주님 앞에서는 외식하는 자의 받는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변장이 아니라 변화의 진실한 삶을 살아가자. 입술에서 그치는 말로만의 믿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삶으로 증거하는 믿음이 되자. "말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라" 

우리가 말하는대로 우리의 삶이 따라가기를 힘쓰고, 또한 우리의 삶으로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날마다 변화되는 하늘가족 식구들의 일상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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