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03(주)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에게(시 68:7-10) | 이기형 목사 | 2025-08-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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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68:7-10절 개역개정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8.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9.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10. 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2025년 8월 3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803(주일예배)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에게(시 68:7-10) 애굽, 광야, 가나안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장소였던 애굽 광야 가나안 중에 어디에 살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겠는가? 캐나다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가나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여기 가나안에는 치명적인 위험성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가나안에 사는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 가신다. 우리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의 자리를 거두어 들이시고 불편하고 부족함이 많은 광야로 부르신다. 광야가 힘든 이유는 3가지인데, 첫째 광야에는 길이 없어서 방황하기 쉽다. 둘째, 광야는 필요한 모든게 부족하다. 셋째, 마땅히 거할 곳이 없다. 삶의 기반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광야로 불러내셨고 거기서 다듬어 위대하게 사용하셨다. 혹시 여러분 중에 광야를 지나고 계시는 분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기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광야를 거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은 없다. 광야를 거치지 않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놀라운 은혜를 주시려고 우리를 광야로 초대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길이 없다고 먹을 것이 없다고 살만한 거처가 없다고 불평만 늘어놓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걷어차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광야의 놀라운 은혜를 3가지로 살펴 보려 한다. 1. 광야의 은혜 - 하나님은 우리의 앞에서 인도하신다(7절) 계획이 막히거나 좌절되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 아니라 가고 싶은대로 간다면 그 길이 옳은 길이겠는가? 그래서 우리 삶의 궤도를 수정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 가신다. 광야에서도 얼마든지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광야에서는 네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상식과 지혜가 통하지 않는 광야, 길이 없으니 어디로 가야할지 막연하다. 방황이 시작된다. 여러분이 오아시스를 발견하고서 달려가는데, 그게 신기루일 수 있다. 그런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 앞서 나가신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그럼 출애굽 이스라엘을 어떻게 앞서 인도하셨는가?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의 백성을 인도하셨다. 또한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삼일 길을 앞서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다 여기 하나님께서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이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만을 위한 계획과 생각을 갖고 계신다. 때때로 나는 대책이 없어서 막막한데,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고 대책을 갖고 계신다. 나만을 위한 맞춤은혜가 있다. 남이야 어떻게 살든지 내 알바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면 된다. 믿음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순종이다. 그리스도인의 발걸음은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 기다리니 주님 손에 우릴 드립니다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언약궤는 어떻게 나타날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주님의 말씀 성경이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가? 예수가 길이다. 내 방식대로 아니라, 세상의 방법대로는 더욱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예수로 예수처럼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2. 광야의 은혜 - 하나님은 흡족하게 공급하신다(9절). 광야는 농사하여 수확하는 곳이 아니다. 광야의 현실적인 고통이 여기 9절 말씀처럼 곤핍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이 떨어지자 극심하게 지쳐갔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본성이 바닥이 드러나는데 얼마전 그렇게 찬양했던 이들이 원망하고 불평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대책도 없이 굶어죽게 하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셨을까? 그럴리 없다. 하나님의 대책은 무엇인가? 흡족한 비를 보내 주셨다. 비같이 내려주신 양식은 만나였다. 자기들의 손으로 농사한 것이 아니었으니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양식이었다. 오늘 우리들도 광야의 곤핍함으로 인해 이만저만 걱정이 많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만나를 내려 주시고, 메추라기 고기도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도 주신줄 알겠는데, 오늘 내 삶에 만나와 메추라기, 생수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남들에게는 있는데 내게는 없는 것들이 수두룩 하다. 너무 잘 보인다. 하나님은 남들에게는 풍성하신데, 자식인 나에게는 인색하신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 맞나 싶은 것이다. 만나를 내려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도록 떡을 주신다. 그러니 떡을 먹기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가라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생존할 수 있는 떡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떡으로만 살아가나?’ 그 이상을 구한다. 어떻게 만나만 먹고 살아가나? 그렇게 불평한 사람들이 있었다.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도 먹어야 한다고, 성경은 그것을 탐욕이라 하였다. 그리고 탐욕의 결과는 기브롯 핫다아와, 무덤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필요를 채우신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안주실리 없다. 나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못주실리도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선하신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나도 때로 남들이 가진 것을 왜 나에게는 주시지 않는지 부러워하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 맞춤으로 주신줄 믿고 감사하며 자족한다. 그것이 광야의 은혜요 훈련이다. 3. 광야의 은혜 - 하나님께서 거처가 되어 주신다(10절). 광야는 거할만한 곳이 아닌 까닭은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기 때문이다. 애굽에 있을 때는 허름해도 집을 집고 살았는데, 자기 집이라고 가꾸고 꾸미고 넓히는 재미가 있었는데, 광야에서 집은 단지 생활의 공간일 뿐이다. 우리네 인생 광야도 그렇지 않은가. 모든게 불안정하다. 우리의 거처도 쉽게 흔들리고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광야에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품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날개로 덮어 주셨기 때문에 평강과 안전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평화는 환경이나 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집을 자랑한다. 몇평이고 얼마짜리이고 집안 가구가 어떻고..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육체의 집은 무너질 날이 있는데, 영원한 거처는 어디인가? 하나님의 품이다. 그래서 438장, 3.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님의 품 안에서 참된 평강과 안식을 누리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마무리. 광야는 길이 없어서 방황하기 쉽고, 필요한 모든게 부족한 곤핍의 장소이며, 마땅히 거할 곳이 없어서 힘든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 가신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다. 광야의 은혜는 무엇인가?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우치게 된다. 필요에 따라 채우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훈련하게 하신다. 내 삶의 거처가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알게 하신다. 여러분들 중에 광야 훈련중에 있다면 이 은혜를 꼭 붙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은혜가 있다. 가난한 자를 위해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다. 광야의 가난한 자가 복인 것은 욕심과 탐욕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살아가기에.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으면서 세상의 거처가 아니라 주님의 품안에 거하기를 힘쓰기에 복이다. 우리는 세상의 풍요가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광야와 같이 곤핍한 곳에서도 그 은혜로 살아간다.광야에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를 가나안에 인도해 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광야 훈련을 믿음으로 감당하시고, 비록 세상속에 있지만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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