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5(주일예배) 빈 그물이 채워져도(눅 5:1-11) | 이기형 목사 | 2025-05-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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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5:1-11절 개역개정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50525(주일예배) 빈 그물이 채워져도 (눅 5:1-11) 인생에 회의가 들 때 인생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은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분주한지 자신의 삶을 성찰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우리의 삶이 형통할 때는 실감나지 않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인생의 회의를 만난다. 열심히 한다지만 힘들기만 하고 제자리 걸음도 아닌 후퇴하고 있는거 같기도 하다. 본문의 베드로도 그러했다. 1. 실패의 빈 그물 예수님은 이 갈릴리에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쫓으며 병자를 고치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시면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베드로는 장모의 열병을 고침받을만큼 예수님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는데,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의 주변에 있지 않고 빈 배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예수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바다에 나가야 했는가? 그게 다 먹고 살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데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는데 잡은 것이 없은 피라미 새끼 하나 없다. 기적같은 일이다. 갈릴리의 두 풍경을 그려보라. 한 무리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감격으로 천국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베드로는 밤새 헛수고에 쓰라린 가슴을 달래며 빈 그물을 씻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모르겠다. 예수를 믿는 것도 여유도 있고 시간이 있고 돈도 있어야지, 하루살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는 너무 멀리 계시는 듯 하다. 그러면 그렇게 성실하게 살려고 몸부림하면 하나님께서도 좀 도와 주셔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날 쉬지않고 호수에 나간 베드로는 평소보다 더 고기를 잡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꽝이다. 밤새 수고했는데, 참 열심히 살았는데 손에 남은 것은 없고 덩그러니 홀로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2. 빈 그물이 채워져도 그 애처로운 인생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시고 그의 공허한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신다. 인생을 연민과 허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거듭된 실패로 인해 낙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형통하고 성공하면 인생에 대해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 삶이 무료하다는 사람에게 ‘삶은 무료라서 무료한거고, 유료결재하면 신나고 재밌을거라’는 통찰이 신박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돈을 벌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한다. 그런데 정말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본문의 베드로를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셨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인생 역전이 일어났다. 베드로는 야간 작업으로 지칠대로 지쳐있고 이제 그물도 씻었으니 돌아갈 타이밍에 예수가 배에 오르더니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라 하고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른 배로 가시라고, 나는 집에 들어갈거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 배를 내어 드리고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요구하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갈릴리의 베테랑 어부 앞에서 고기잡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지나는 소가 웃을, 참 웃기는 일이다. 물고기들은 밤에 활동하고 낮에는 숨어 있고, 적당한 깊이에 고기가 있지 깊은 곳에는 없고, 무엇보다 씻어놓은 그물인데 지난밤 수고를 되풀이하라는 것인가? 베드로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전이었다면 그렇게 말했겠지만, 말씀에 사로잡힌 베드로는 다르다. “사실 우리들이 밤 새도록 갈릴리 바다를 다 뒤졌지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밝은 대낮에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것은 경험상 비상식적이지만, 말씀하시니 그물을 내려 보겠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단 한방에 만선의 꿈을 이룬 것이다. 비결은 무엇인가? 내 상식과 지식과 경험을 넘어서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이다. 내 생각대로라면 순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내 지식과 경험을 넘어서서 말씀에 대한 순종, 그것이 축복의 비결이다.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게 있다. 이제 베드로는 행복했을까? 이제 인생에 유료결재하면서 신나는 삶을 살았을까? 베드로가 이렇게 두 배에 가득 고기를 잡았다해도 하루 이틀 지나면 그 기쁨은 사라질 것이다. 인생이 허무한 이유는 무엇을 소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풍성하게 누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참된 가치를 찾지 못했기에, 진정한 부모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그것을 발견한다. 3. 주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두 배에 가득히 잠긴 고기를 보고서 베드로는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뜻밖의 고백을 한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베드로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본 것이 아니라, 그 물고기를 잡게하신 예수님을 보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자기를 부자되게 하시는 분으로 생각한게 아니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어부입니다’ 이렇게 고백했을 것이다. 시몬은 배에서 말씀 전하시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할 믿음을 얻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하였을 때 나타난 결과를 보고서 베드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케 되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예수님을 부르는 시몬의 호칭의 변화를 보라. 처음의 호칭은 선생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이라 부르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 아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는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죄임됨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위대하고 정직한 자기발견과 자기성찰은 죄인됨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허풍과 과장으로라도 자기를 부풀리려 한다. 그게 안되니 주눅들고 자존심은 바닥이고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런 인정을 통해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양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불안이 있다. 자기의 모습을 거울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듯이, 인간이 죄인됨을 알 수 있는 거울은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이다. 인간들이 서로 잘났다고 교만하지만 도토리 키재기 하듯 고만고만 한거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인간은 새로워진다.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라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인생을 새롭게 하셨다. 베드로가 두 배에 가득한 물고기로 인해 어물전 사장이 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배와 물고기도 다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름받은 것이다. 물고기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인생이 아니라, 죽은 영혼 살리는 고귀한 사명을 맡겨주신 것이다. 고귀한 하나님의 사명, 그 사명이 그를 살게 한다. 그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마무리 밤을 지새며 고생하고 수고하는데 빈그물이라면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해서 낙심이 되고 실패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결핍과 실패가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가고 거기서 말씀을 전했으며, 베드로가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밤새 헛그물로 빈 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을 때는 그것만 가지면 행복할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도 참된 행복은 없다. 빈 그물이 채워진다해도 이내 곧 비워질 것이기에, 그건 일시적인 기쁨이지 영원한 기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는지 모른다. 정작 물고기를 잡게 하시는 주님은 외면한채 물고기만 좇아가는 것이 얼마나 애석한가. 그런데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게 하시는 예수님을 만났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자기의 죄인됨을 보았다. 그것은 정직한 자기성찰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앞에 정직하게 설 때 주님은 그의 인생을 새롭게 해 주셨다. 더 이상 세상의 물고기를 잡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을 취하는 어부로 그를 세워 주셨다. 주님께서도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자리매김 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목적이 더 이상 물고기 잡아 부자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있든지 죽은 영혼 살리는 고귀한 사명을 주셨다.그가 참된 행복자요 소명자이다. 그런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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