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01(주) 예배 드림이 기쁨됩니까? (사 1:11-15) | 이기형 목사 | 2025-06-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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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1:11-15절 개역개정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2025년 6월 1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601(주일예배) 예배 드림이 기쁨됩니까? (사 1:11-15) 교회 가기 싫어서 빠지는 사람들도 있겠고, 교회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즐겁게 교회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별 생각없이 주일이니까 습관적으로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기도 할 것이다. 아무 생각이나 기대없이 습관적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면 예배가 아니겠는가. 교육, 전도, 구제, 친교... 다 교회가 감당해야 하지만 그런거 빠져도 교회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예배가 빠진다? 이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뭐길래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가? 가장 단순하고 쉬운 이해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배는 '예를 갖추어 절한다' 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경배하는데 예배 중에 찬양과 기도와 봉헌이 그렇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고 예배자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는데, 설교와 강복이다. 예배가 어려운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기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내가 호흡할 수 있음으로 알 수 있다.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랑을 하고 받은 사람은 알 수 있다. 하나님도 보이지 않지만, 전능하신 통치자로 실존하신다고 우리는 믿는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도 없고 그 예배는 의식에 그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 앞에 있는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 있다. 이 사실을 예배 시간 내내 꼭 붙들어야 한다. 이사야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입술을 빌어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심으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지으신 하늘과 땅을 붙들고 한탄하신다. 소도 나귀도 주인을 아는데,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호소와 한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할만큼 다했는데 하나님께서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투정하시나, 참 까다로우신 분이야’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무수한 제물을 드렸는데, 살지고 기름진 수송아지와 숫양과 숫염소와 어린 양까지 아깝지만 불살라서 드렸는데 이게 부족했단 말인가? 제물 뿐 아니라 시간도 드렸지.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안식일을 지켰고, 매월 첫날과, 대회와 성회와 절기 등 빠짐없이 지킬건 다 지켰는데, 뭘 얼마나 더 하라는건가? 그리고 기도는 또 얼마나 많이 드렸는데, 어떻게 불효막심한 자식이라고 떠들 수 있단 말인가? 이해가 안되실 수 있는데, 그럴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아야 한다. 1.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예물을 열거하신다. 11절 보시면 무수한 제물, 숫양의 번제, 살진 짐승의 기름, 숫송아지, 어린양, 숫염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느냐고 반문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드렸다는데, 정작 하나님은 무엇이 유익하느냐 물으시니 당황스럽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단언하신다. 아시다시피 제사 제도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고 오히려 물으시니, 황당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해하자면, 하나님께서 제물이 필요없다는게 아니다. 제물은 하나님을 만나는 수단일 뿐이다. 제물을 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야 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그 제물을 싫어하셨을까? 우리는 12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내 앞에 보이러 왔다고, 마당만 밟을 뿐이라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만남을 원하셨는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은 없고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만남으로 마당만 밟았을 뿐이라 하신다. 하나님은 이것을 헛된 제물이라 하신다.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우리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누가 성전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하나님의 고통스러운 호소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시는 기회가 되시면 좋겠다. 예배에 빠짐없이 오시는 것이, 제 입장에서 보면 안오는 것 보다야 낫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저 마당만 밟고 가는 것이라면 헛된 예배, 헛된 제물이라 하신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그렇게 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제자가 아니라 열광적인 팬덤으로, 주체적인 예배자가 아니라 피동적인 관중으로, 헌신자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에 종교 소비자로 전락할 수 있다. 소비자는 비용을 지불한 예배를 통해 평안을 얻고 감동을 얻고 만족을 누리겠다고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무한경쟁 속에서 교회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여 단골 손님을 붙들어 놓으려 한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주체적인 예배자가 되어야 하고 능동적인 예배자로 참여해야 한다. 피동적인 예배자로 눈도장 찍고 마당만 밟고 가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능동적인 예배자로 예배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예배자가 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며 축원한다. 2.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날을 언급하신다. 월삭은 매달 초하루에 드리는 제사이다. 일주일마다 찾아오는 안식일, 대회는 기타 집회를 말한다. 그런 모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가증히 여기는 바라 하신다. 14절에서는 싫어하신다고, 그것이 하나님께 무거운 짐을 지우는거라 하나님께서 곤비하시다 하신다. 안식일, 절기나 모임은 사람이 정한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주셨다. 특별히 안식일을 범하면 죽이라고까지 하셨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실만큼, 곤비하다고 하실만큼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왜 그리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 날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날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고 무거운 짐이라고 하신다. 삶은 그대로인데 안식일을 지켰다고 해서 그 삶이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예배를 드렸다면,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났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다면,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내려고 힘써야 하는데, 그런 수고와 희생은 포기하고 예배드리는거 만으로 만족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견딜 수 없다고, 예배가 주일성수가 하나님께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짐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예배당에서 국한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배당 안에서는 얼마나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는지, 그러나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 사람으로 돌변해서 세상의 논리대로,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갈 위험이 너무 많이 있다. 마무리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다 필요없다고, 제물도 안식일도 기도도 필요없다고 오해하실지 모르겠다. 다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제물이 아니라 예배자를 원하신다고, 형식이 아니라 본질을,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적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선물을 뇌물이라 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마음이다. 예배의 자리에 모였어도 하나님을 놓칠 수 있기에,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늘 기억해야 한다. 주께 와 엎드려 경배드립니다 주 계신 곳에 기쁨 가득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네 예배드림이 기쁨됩니다 이 찬양가사처럼 정말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을만큼 예배 드림이 기쁨되시는가? 그래서 주일이 기다려지고 예배를 사모하면서 기대하면서 교회에 오시는가? 아님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아무 생각없이 예배로 눈도장 찍고 마당만 밟고 지나가는 예배인가? 나와야 할거 같아 마지못해 나와서 자리 지키다가 돌아가시는가? 참된 예배자가 많지 않아서, 하나님은 그 예배자를 찾으신다(요 4:23). 주를 위해 모인 예배의 자리에 주님 찾으시는 그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 그 예배자, 여러분이 그 사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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