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30(주) 말씀이 복입니다 (시 147:12-20) | 이기형 목사 | 2025-0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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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47:12-20절 개역개정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13.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14.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15.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7.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18.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19.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20.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2025년 3월 30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330(주일예배) 말씀이 복입니다 (시 147:12-20) 말씀이 복입니다(시 147:12-20)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인데, 시편 147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 3가지를 찾았다. 1연에서는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2연에서는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본문 3연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말씀이 복이라는 제목을 정했다. 1. 참된 축복이 되게 하는 말씀(13-15) 3연은 말씀으로 인하여 찬송하라 하시는데, 그 이유는 말씀이 참된 복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를 13-14절에서 보여주신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약속을 주셨을 때에 그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께서 문빗장을 견고히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제 성문이 견고하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겠다 하셨다. 부모는 자기가 복받는 것보다 자녀가 복받는 것을더 좋아한다. 또한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해주시겠다 하셨다. 이스라엘이 늘 인사말로 간구하는 것이 살롬인데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름다운 밀로 배부르게 하시겠다 하셨다. 들짐승과 까마귀 새끼도 먹이시는데 당신의 백성도 먹이신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복을 주신다면 찬양하고 찬송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약속된 복을 누리고 있는가? 현실적으로 보면 누리지 못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없이도 이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감히 어느 누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렇게 만족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아시는대로 맘몬, 돈이다. 자본주의를 황금만능주의라고 한다. 돈이면 안되는게 없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런 복을 안주시는거 같은데 맘몬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누리고 있는거 같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는 유혹이고 시험이다. 어떻게 이 유혹에서 빠져나와 승리할 수 있을까? 2가지를 기억해야 하는데, 첫째는 맘몬이 주는 것은 참된 복이 아니라 유사품이다. 짝퉁이다. 겉으로 화려할수록 속이 비어 있을 수 있다. 과장, 과시,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맘몬이 주는 것은 가짜이기도 하지만 유통기한이 있어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 이 세상에서 뿐이다. 그 후에는 오히려 더 큰 공허함과 후회, 그리고 빚을 갚아야 하는 기나긴 고통만 남을 뿐이다. 두번째 기억할 것은 내가 받지 못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받아서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큰 괴리는 이 갭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관점차이이다. 시력보다 시각이 더욱 중요하다.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세속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말씀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절 말씀인데, 말씀의 역사가 있을 때, 말씀이 내 안에서 신속하게 역사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을 복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셨다. 말씀의 관점으로 13절과 14절의 약속하신 축복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빗장을 견고히 하신다. 그럼에도 우리의 성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무능과 한계가 아니라 허용과 계획하심이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께서 무능하셔서 지켜주지 못한게 아니라, 죄악으로 오염된 성을 다시 세우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에게 복을 주신다. 그 복이라는 것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수도 있지만, 가장 귀한 복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경내를 평안하게 하신다. 편안은 상황에 따른 조건적이지만 평안은 상황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세상에는 참된 평안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주님의 품 안에 거할 때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줄 믿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밀로 배불리신다. 아름다운 밀은 산해진미 진수성찬이 아니라 화목한 밥상이다. 이와같이 말씀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만이 하나님 주시는 복을 참된 복으로 받을 수 있다. 말씀 안에서 참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추위와 고난을 감당하게 하는 말씀(16-18절) 눈과 서리와 우박이 떨어지는 것을 사람들은 자연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께서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고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뿌리신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은 모든 계절을 돌보신다. 여기 시인에 의하면 봄이 오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봄을 보내 주신다. 18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녹이시고 물이 흐르게 하신다. 자연 만물속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인생의 계절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의 사계절에는 어김없이 겨울도 찾아온다. 추위가 몰아치면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견디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기억할 것은 언제까지나 겨울이 계속되진 않는다. 봄이 와서 눈과 서리와 우박을 녹이시고 생명을 약동케 하는 생명수가 흐르게 하신다. 그럼 누가 눈을 녹게 하는가? 18절 말씀에는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가 바람을 불게 하신즉. 인생의 추위를 녹이는 하나님의 방법은 말씀과 바람이다. 인생의 겨울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긴 하지만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바람이 있다면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봄을 가져오게 한다. 생명을 약동하게 하고 사랑의 꽃을 피우게 한다. 성령의 바람이 잠들었던 만물을 소생하게 하고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바람으로 인하여 냉냉한 겨울이 아니라 화창한 봄날을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말씀을 받은 축복자(19-20절) 세 번째 연의 마지막 두 구절은 시편 147편의 결론과도 같다. 하나님의 회복과 하나님의 돌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나 아무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20절).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알지 못하니 그들은 본성대로 자기가 주인되고, 세상의 법칙 따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건 당연하다. 그러면 그의 말씀과 율례와 규례를 누구에게 보여 주셨는가? 야곱에게, 이스라엘에게, 오늘날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하셨는가? 복을 받고 성공하고 형통하고.. 그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은 복을 복으로 알게 하고 추위와 고난을 봄날로 바꾸어 주신다. 그것이 말씀의 능력이다.그 축복의 말씀으로 인하여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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