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 홈 >
  • 하늘가족양식 >
  • 설교말씀
설교말씀
250119(주) 공동체의 원리(고전 12:26-27) 이기형 목사 2025-01-19
  • 추천 0
  • 댓글 0
  • 조회 30

http://gajok.onmam.com/bbs/bbsView/5/6487855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2:26-27절 개역개정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5년 1월 19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119(주일예배) 공동체의 원리(고전 12:26-27) 공동체의 원리(고전 12:26-27) 공동체와 유기체로서 교회 지난주 설교에서 “우리는 조직인가, 공동체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주님은 교회가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말씀하시면서 교회를 비유하신 세상속의 기관은 Family 가족이다. 또 하나의 질문은 교회는 조직체인가, 유기체인가? 인데, 교회는 유기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비유가 몸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교회’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가족과 몸이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들이다. 오늘은 지난주 말씀드리지 못한 지체의 원리에 대해 말씀드리려 한다. 1. 다양성을 인정하라(14-19절). 여러 지체가 합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듯이 교회도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말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나와 다른 이들을 지체로 인정할 수 있는가?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 정치적인, 이념적인, 성별과 계층과 인종과 세대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복음 안에서 하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세상은 점점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 선동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전략적 극단주의’라는 지지층 결집 전략에 몰두하면서 나와 입장이 다른 이들을 맹목적으로 반대하고 타도와 척결의 대상으로 여기게 한다. 불신과 혐오를 담아내는 사나운 언어로 상대를 향한 적개심에 불타게 한다. 이제는 정치가 종교화되어서 정치 리더를 교주처럼 맹신하고 이념을 진리처럼 여기게 되었다. 교회 안에는 이들이 공존할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아예 대화를 하지 않아야만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면 말싸움으로 갈등으로 끝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 다양성의 걸림돌 - 배척(부정) 본문에서 15-16절에서 다양성의 걸림돌을 찾아보자면,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이다. 발이 손에게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어 있는게 아니다”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손이 발에게 “너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어 있는게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지체간에 그런 대화를 나눌리 절대 없지만, 그런데 오늘날 공동체 안에서는 그런 대화가 오갈 수 있다. 발이 손이 아님에는 틀림없고, 귀가 눈이 아님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 사실을 가지고 발이 손에게 ‘나는 몸에 붙어있지 않을거라고’ 독립 선언을 한다면, 몸이고 뭐고 귀찮기만 하니 이제는 아무 관계없이 내 맘대로 하겠다고 말한다면, 그게 말이 되는가? 공동체에서 누군가 ‘몸이고 공동체고 귀찮고 불편하기만 하니 나는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한다면 그게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혹은 손이 발에게 너는 손이 아니니 한 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러니까 공동체에서 누군가에게 너는 나와 입장과 견해가 다르니 한 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는 안된다. ‘고와도 내 님이고 미워도 내 님’ 혹은 ‘잘나도 내 자식 못나도 내 자식’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가족이기에 그렇다. 교회는 그래야 한다. 2) 다양성의 걸림돌 - 쏠림 또 하나는 지체의 쏠림현상인데, 17절 말씀처럼 모든 지체가 눈이 되길 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눈이 귀하다고 생각해서 모든 지체가 눈이 되길 원한다면 어떻게 듣고 냄새를 맡겠는가? 아니 입도 코도 귀도 자기의 역할은 내려놓고 다 보겠다고 달려든다면 어떻게 될까? 공동체에서는 교회에서는 그래서는 안된다. 지체는 각자 맡은 그 사명 자체로 귀하다. 교회의 직분이 계급이고 서열인가? 아니다. 눈과 귀와 코는 입은 어느 지체가 우월하고 열등한지 분간할 수 없다. 다만 기능 차이일 뿐이다. 그렇게 기능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다. 우리는 그것을 소명 사명이라 한다.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 감당할 때 그 몸이 온전히 작동할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나의 역할과 사명을 찾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또한 그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지체의 역할을 존중할 때 공동체는 화평과 질서를 유지해 갈 수 있다. 모든 지체들이 그 자체로 귀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2. 통일성을 인정하라(20-21절). 14절은 다양성을 강조했지만, 20절 말씀은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 말씀하시면서 통일성을 강조한다. 몸 안에 지체인 것이지 몸을 떠나서는 지체라 할 수 없고 생존할 수도 없다. 우리 각 지체의 역할과 사명은 그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있지 않고 몸을 이루고 세우는데 있다. 통일성의 걸림돌 - 능력주의, 효율성 21절 말씀처럼 눈이 손더러 쓸데없다고 하거나, 머리가 발더러 쓸데없다고 할 수 없다. 눈이 보는데 손은 쓸데 없을 것이다. 손은 보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이 눈처럼 볼 수 없다고 쓸모없는 지체라 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손의 기능은 따로 있는데 눈의 기능에 맞추어서 불필요하다고 여긴다면,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못미치면 효율적이지 않고 능력이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 한다면 이게 말이 되는가? 조직체에서는 그렇게 한다. 능력주의가 원리이기에 그렇다. 공동체의 원리를 3가지 예로 들어 설명한다. 1)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22) 조직체에서는 약육강식, 약한 자는 생존할 수 없다. 능력만이 살길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다르다. 약하게 보이는 지체는 도리어 요긴하다. 몸의 지체 중에 약하게 보이는 지체라면 뇌와 심장 같은 신체 내부 장기들일 것이다. 뇌에 미세한 혈관 하나만 막혀도 생존에 큰 위협이 되지 않던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열을 가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겉으로 약하게 보인다고 그 기능마저 무시해서는 안된다. 약한 지체는 도리어 더욱 중요하고 요긴한 지체이다. 누군가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은 비판이나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몫이다. 내가 누군가의 연약과 부족을 채워줄 때, 나의 부족이나 연악함도 누군가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는 약함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나눔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2) 덜 귀히 여기는 몸의 지체(23) 세상에는 귀천이 있는데. 조직에서는 덜 귀히 여기는 비천한 것들은 무시를 당하고 귀빈들이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공동체라면 덜 귀히 여기는 지체는 더욱 귀한 것으로 입혀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차별이라면 하나님은 차별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공평이라 하신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고 한다. 어떤 손가락이겠는가? 못난 자식에게 향하는 부모의 마음이 긍휼이다. 여러분이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그렇게 비천한 자들이었다. 그 비천할 때 베풀어주시는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존귀한 자가 된 것이지, 본래부터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공동체 가운데 아직도 비천한 가운데 있는 지체들이 있다면 무시하거나 배척해서는 안되고 존귀하게 대해야 한다. 3) 아름답지 못한 몸의 지체(23) 아름답지 못한 지체에 대해 조직체라면 조직의 명예에 누가 된다고 제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라면 다르다. 아름답지 못하다면 귀중함을 더하여 그 부족함을 덮어주고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지체에게는 귀중함을 더해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부족한 지체로 인해 분쟁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하다. 여기 돌봄은 걱정하다는 의미인데, 실제적인 돌봄이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걱정하고 염려해 주는 것이 공동체이다. 마무리. 동고동락하는 공동체 그냥 교회 다니면 되는줄 알았는데, 이런게 공동체이고 이렇게 해야 한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갈까? 모든 지체는 머리에 순종한다. 그리고 신경과 혈관이 각 지체들과 연결되어 각기 사명을 감당하도록 힘과 능력을 전해준다. 그렇듯이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때 유기체로서 그 몸은 세워질 것이다. 내가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순종마저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순종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이다. 주님은 지체들을 신경과 혈관으로 이어 주셨다. 그렇게 한 몸을 만들어 주셨다. 타인의 아픔이 기쁨이 되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타인을 처단하고 딛고 일어서야 내가 산다는 이 비열한 세상에서, 주님은 교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다. 교회는 동고동락하는 공동체이며 한 몸이다.  

어쩌면 지금 당장에 이런 공동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실망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하늘가족교회가 세상적인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시기를 축복한다. 

 

 

G
M
T
Y
음성 기능은 200자로 제한됨
옵션 : 역사 : 피드백 : 닫기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50126(주) 영혼을 품으라(고후 12:14-15) 운영자 2025.01.28 0 30
다음글 250112(주) 우리는 조직인가 공동체인가(고전 12:12-13) 운영자 2025.01.17 0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