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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주) 에바다 열리라 (막 7:31-37) 이기형 목사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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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7:31-37절 개역개정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8월 25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40825(주일예배) 에바다 열리라 (막 7:31-37) KOSTA 간증 지난주간 West Canada KOSTA 청년 집회가 있었다 저도 강사들의 공항 라이드를 도우면서 코스타에 참여하였는데, 은혜 충만한 청년들을 보면서 떠오른 단어가 여기 본문의 ‘에바다’였다. 에바다는 ‘열리라’는 뜻의 아람어이다. 코스타 참석한 청년들이 마음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얼마나 진지하게 말씀을 경청하는지, 귀가 열리면 무엇이 열리는가? 입술이 열린다. 입술이 열려 열정적으로 찬양 드리며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이런 말씀 드리면 ‘나도 그 때는 그랬지, 그게 다 한 때더라고... 니들도 나이 먹어 봐라, 별 수 없을껄’ 이렇게 냉소적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생각인가? ‘예수 30년 50년 믿으면 나처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자랑스러움일까 아니면 부끄러움일까. 안타깝게도 부끄럽게 될 가능성은 많다. 세월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30년 믿으면 들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은지라 더 이상 들을 것이 없어진다. 찬양과 기도와 예배도 점점 고상해진다. 기도는 그다지 아쉬운게 없어서 굳이 기도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다보니 신앙의 연륜이 더할수록 귀는 닫히고 말도 어눌해진다. 이상한 이야기가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 귀 먹고 말 더듬는 자 갈릴리에 이르자 사람들이 한 장애인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해 주시길 간구했다. 이 당시 장애인들은 의사 소통을 할 수도 없었고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차별과 소외를 당했다. 이들은 세상과 완전 단절되어서 버림받은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소망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육체적인 장애보다도 훨씬 더 불행한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 장애. 그리고 영적인 장애라고 할 수가 있다. 귀는 있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막 8:18). 나이가 들면서 듣기 힘들고, 어린 아이들도 잘 듣지 않는다. 오늘날은 확증편향이라는 것이 있어서 듣고 싶은것만 골라서 듣기 때문에 정말 듣기 어려운 시대이다. 영적으로도 오늘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쉽지 않다. 죄가 사탄이 사람들의 귀를 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듣지 못하는 장애는 또 다른 장애를 가져 오는데, 잘 듣지 못하니 말하는데 장애가 생긴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중요한 교훈을 주는데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다. 듣지 않고는 잘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를 강조하고 들으라고 그렇게 간청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 장애인에게 좋은 이웃들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예수께 데리고 나와서 안수해 주시길 간구하였다. 이렇게 주님 앞에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못듣고 말 더듬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고치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고쳐 주신다. 2. 예수님의 고치심 1)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에서 떠나셨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예수님은 이 장애인과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셨다. 주님은 그 한 사람을 따로 인격적으로 만나 주신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무리로 있지만 주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만나 주신다. 그렇다면 나도 내가 주님을 만나야 한다. 피상적으로 예수를 만나지 말고 일대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2) 손가락을 귀에 넣고 손에 침을 뱉어 혀에 대셨다. 직접 접촉하면서 침을 사용하는 것은 당시 민간용법으로 많이 알려졌었다. 예수님께서 환자에게 손을 대지 않고서도 말씀만으로 얼마든지 치유하실 수 있다. 그런데도 손가락을 듣지 못하는 양 귀에 넣고 침을 뭍혀 말하지 못하는 그의 혀에 대는 것은 행동언어였다. 이 사람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지만 볼 수는 있었기에 예수님은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장애인은 양쪽 귀와 혀에 닿는 예수님의 손길을 통해 자기의 영혼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을 Touch라고 했다. 사람의 터치에도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의 터치야말로 치유와 회복의 기적을 이루실 것이다. 그 주님께서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의 닫혀진 귀를 나의 굳어진 입술과 마음을 터치하신다. 주님의 터치로 인해 귀가 열리고 입술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기를 축복한다. 3)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에바다’ 하셨다. 여기 '탄식'이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신음이다. 주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살았던 그의 처지와 아픔을 공감해서이다. 사람들에게 당한 무시와 조롱, 고독과 소외의 아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예수님은 그렇게 탄식하시면서 에바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고, 치유의 능력이 있다. 주님의 말씀 앞에 죽음마저도 순종할 수 밖에 없는데, 주님께서 나에게 “에바다” 하실 때 내가 굳게 닫아두고 열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귀가 열리지 않아서, 입술이 열리지 않아서, 눈이 열리지 않아서 답답하신가? “주님! 저의 귀에 손가락을 넣어 주시고, 저의 혀에 손을 대주시며, 저의 아픔에 공감하시며 저에게도 ‘에바다’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간구하시기를 바란다. 3. 고치신 결과 예수님의 에바다 말씀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풀려 분명하게 말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내게 “에바다!” 말씀하시면 나도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며 분명하게 증거할줄 믿는다. 이들이 전에는 귀먹고 말더듬는 자들이어서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심지어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시는데도 오히려 더욱 널리 전파하였다. 마무리 주님은 코스타 뿐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도 우리에게 찾아와 일대일로 만나시며, 손가락을 귀에 대시고, 침을 뭍힌 손을 혀에 대시고 탄식하시며 에바다 하신다. 주님은 나를 끌어안고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시며 에바다 열리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그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과 더불어 풍성한 잔치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열린 귀 열린 입술, 열린 마음의 열린 인생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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