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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7(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한 자 (창 39:2-3) 이기형 목사 20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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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39:2-3절 개역개정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년 7월 7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40707(주일예배)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한 자 (창 39:2-3)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한 자(창 39:2-3) 부흥과 형통의 비결 ‘어떤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해서 100명 넘게 출석한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축하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감사해야 하지만 부러움과 ‘우리는 언제나 부흥할까, 혹은 어떻게 부흥했는지’ 비결이나 원인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비결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고 부흥하거나 형통하진 않을테니 그것을 공식화하거나 법칙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참 열심히 성실하게 신실하게 살아가는데 하는 일마다 잘 안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손대는 일마다 잘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아닌거 같은데 이 사람은 뭘 하든지 그냥 된다.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재수가 좋아서 운이 좋았다고 대답할건데, 정말 그런거 같다. 누군가 형통하고 누군가 불통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하나님이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마음의 서운함은 감출 수가 없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형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요셉을 통해 살펴 보려고 한다. 형통한 사람 요셉 성경에 나오는 가장 형통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요셉과 다니엘을 선택할 것이다. 요셉은 팔려온 히브리 노예인데 애굽의 총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어떻게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 일개 노예 신분에 불과했지만 하나님께서 높이시니까 일국의 총리 둘째 치리자가 된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과 기대가 있다. 우리도 뛰어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고 뛰어나게 세워주실 수 있다. 그런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그걸 믿으면 그대로 믿음대로 이루어질텐데, 아멘하지 않아서 믿지 않아서 이제 그렇게 안되는 것일까? 그건 나의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나의 계획대로 될줄로 믿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대로 이루어진다. 형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문에서 살펴 보자. 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셔서 총리가 되었는가? 아니다. 보디발의 노예가 된 것이다. 요셉이 팔렸는데 그래도 시위대장의 집에 팔린 것이 형통한 것일까? 노예가 되어도 기왕이면 권력자의 집에 노예가 된 것을 형통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 중에서 가정 총무가 되었으니 출세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봤자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 총무가 되면 다른 노예들보다 조금 편할 수는 있겠지만 요셉은 본래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었고 잘나가는 총애받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억울하게 팔려온 요셉의 입장에서 형통이란 다시 아버지 집에 돌아가는 것이겠다. 적어도 노예가 아니라 보디발의 양자가 되는 정도라면 형통이라 할 수 있겠다. 요셉은 가정 총무가 되어 일할 사람이 아니라 가정 총무를 두고 떵떵거릴 사람이기 때문이다. 형통한 자가 되었는데 고작 가정 총무라니, 형통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형통한 자라면 시온의 대로처럼 승진의 초고속도로를 달리는 삶을 연상케 한다. 시험과 유혹은 하나님께서 막아 주시거나 피하게 하시고 재앙도 전혀 미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요셉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형통하게 하셨다는데 이게 형통이라 할 수 있을까? 요셉은 주인 마님의 명령을 거절하는데, 그 댓가는 그나마 조금 여유를 가졌던 가정 총무에서 해고되고 감옥의 죄수로 전락하게 된다. 성경은 왜 이런 것을 형통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이건 형통이 아니라 추락이 아닌가? 몰락이 아닌가? 본문이 형통이라 말할 때 그것은 높은 권력의 자리에 오르거나 많은 부요를 가지거나 자기의 꿈을 이루었을 때 형통이라 말하지 않는다. 지루한 감옥 생활이 지나고 먼 훗날 요셉은 정말 애굽의 총리가 되어 나라의 둘째 치리자가 되었을 때 그 때 요셉이 형통했다고 기록하진 않는다. 여기 39장은 요셉의 가장 암흑기였을텐데, 여기에서만 세 번이나 요셉이 형통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기 형통이라고 말씀하시는 3구절을 자세히 보시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이 형통이다. 그러니까 주어는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내 계획과 목표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것이다. 성공과 형통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통해 이루시는 것이다. 마무리 사랑하시는 하늘가족 여러분! 형통은 내가 원하는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가장 큰 방해물은 어쩌면 나 자신이다. 하나님보다 내가 더 드러나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기에 낮고 작은 곳에서는 견딜 수 없어한다. 높은 곳에서는 힘주고 우쭐한다. 그건 형통이 아니다. 언제나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는 인생,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인생이 형통자이다.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부와 권세를 얻었다해도 하나님의 손 밖에 있는 자유자라면 그를 세상은 성공자라 부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형통자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붙들고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꿈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나같은 인생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꿈과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 가신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내 능력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기에 좀 부족해도 괜찮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한데서 온전해진다. 나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고 동행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것이 형통이다. 내 인생,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한다. ‘괜찮아, 내 인생 하나님이 있잖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나의 계획이 다를 수 있지만, 나의 꿈과 소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이루어가는 참된 형통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말씀으로 삶을 살기 1. 사람들 중에 참 열심히 성실하게 신실하게 살아가는데 하는 일마다 잘 안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손대는 일마다 잘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왜 그럴까요? 2. 요셉은 총애받던 부잣집 아들에서 노예로, 다시 죄수로 몰락하는거 같은데 성경은 형통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그것을 형통이라고 동의하시나요?  

3. 여러분이 붙들고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꿈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나같은 인생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꿈과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꿈과 계획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발견했나요? 찾아냈다면 거기에 순종하고 그 길을 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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