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6(주) 내 집 마련 (고후 5:1-2) | 이기형 목사 | 2024-05-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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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5:1-2절 개역개정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내 집 마련(고후 5:1-2)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3가지 요소를 의식주라 하는데, 곧 옷과 음식과 집을 뜻한다. 성경이 의식주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러니까 비록 집이 없다해도 족한 줄로 알라고 하신다(딤전 6:8) 나아가 두 벌 있으면 나눠주라 하신다(눅 3:11)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성경 해석에 대해 문자에 집착하는 우리지만 우린 이 구절만큼은 그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성령이 임한 초대교회는 필요에 따라 나누는 유무상통의 공동체가 이루어졌다(행 2:44-45).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고도 믿는거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법칙과 가치는 나눔이 아니라 축적이고 독점이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더 많이 소유하고 여유롭게 살려고 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복이라 여긴다. 이 모든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집이다. 집은 자신의 신분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명일 수 있어서, 영끌,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집을 마련하려고 한다. 인생의 남은 세월을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집을 마련하는 것은 지혜일 수 있지만, 영원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는 것은 더욱 절실한 지혜이지 않을까? 1. 육체의 장막 집은 무너진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갈 인생의 편안을 위해서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마련한다.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집은 영원하지 않고 무너진다. 아무리 공들여 화려하게 지었어도, 아무리 거대하게 하늘 높이 세웠어도 무너질 날이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아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무너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모르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무너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하루 한번이라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기억한다면,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서 안락한 인생을 위해 영끌을 해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는데, 인생의 마지막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죽음 앞에 인생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2. 하늘의 영원한 집이 있는 줄 알라 우리가 육체로 살아갈 동안 집이 있듯이, 죽음 이 후 영원한 삶을 살아갈 때에도 집이 있어야 한다. 우리 육체의 장막 집이 무너지고 그 후에 영원한 삶을 위해 갈 집이 없다면, 지금 갈 집이 없어 막연한 것보다 더욱 절망적이지 않겠는가. 하늘의 집을 몰랐던 사람들, 바로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이다. 나사로는 세상에서는 비록 마땅한 집도 없어 부자의 대문 앞에서, 먹을 것도 변변치 못해 부스러기를 먹으며, 입은 것도 상처 투성이로 찢겨진 옷이었겠지만, 그에게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었다. 그러나 부자는 세상에서 호위호식을 하며 남부러울거 없는 삶을 살았지만 하늘의 영원한 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는 영원한 저주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야말로 우리 최대의 소망이 아닌가? 영원에 비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가는 7~80년 아니 100년을 산다한들, 이 세상의 시간은 그야말로 지나간 어제 밤의 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들이다. 그저 하룻밤 캠핑가서 야영하는 것이 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룻밤은 고생도 추억이고 불편함도 감내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셨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세상의 가치관과 법칙을 따라 살지 않고 하늘의 법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의 논리와 법칙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쓰고 결단하시기를 바란다.
3. 하늘의 처소를 간절히 사모하라 우리에게 하늘의 영원한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고 좋아한다. 정말 하늘의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우리는 그 처소를 간절히 사모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니 늘 깨어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해야 한다. 세상에서의 삶을 포기하거나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늘의 처소를 갈망하는 것이다. 새 아파트를 구입하고 지어져 가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의 삶을 포기하진 않지만, 자기 집으로 이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하늘의 처소보다 지금 살아가는 집이 더욱 안락하고 평안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하늘의 처소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할 때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침몰되지 않고 본향 찾는 나그네 순례자로 살아가게 될 줄을 믿는다. 마무리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내 집 마련 하셨는가? 수고 많으셨고 잘 하셨다. 이 세상에서 아직 내 집 하지 못했는가? 괜찮다. 아무리 화려하고 대단한 집을 마련했다해도 육체의 장막은 무너지기에 그것은 영원의 시간에 비하면 한 여름 밤의 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몇 년을 살아도 육체의 장막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무너질 육체의 장막을 위해 영끌을 하면서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육체로 사는 동안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육체의 장막이 무너지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께서 그를 믿는 자를 위해 예비하신 거처, 하늘의 영원한 처소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육체의 장막집을 준비하는 만큼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며 또한 갈망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궁궐같은 집에서 호위호식하며 풍요롭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에게 영원히 거할 처소가 없다면 그의 삶은 하루살이에 불과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변변한 내 집이 없고, 입는 옷도 허름하고, 먹는 것도 부스러기로 연명하며 구질구질하게 살지라도 영원한 하늘의 처소가 있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영원한 내 집, 그 집을 마련하셨는가? 그 소망으로,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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