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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5(주) 환대 (히 13:1-3) 이기형 목사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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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히브리서13:1-3절 개역개정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환대(13:1-3)

 

지난 몇주간 한국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은 환대였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여유없이 바쁘고 분주한가.

나는 그들의 분주한 삶에 들어간 이방인이고 한가한 나그네였다.

형제들 친척들이야 혈육이니까 반갑게 맞아주겠지만,

다른 지인들의 경우 옛날에 좋은 관계였다해도 10년도 더 지났는데 이제는 각각이 되어버린 삶이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나그네와 이방인 같은 나를 극진하게 환대하였다.

우리는 그런 사랑과 환대를 받으면서 치유와 회복, 충전을 경험하였다.

아무리 메마른 사람이라도, 아무리 강팍한 사람이라도 그런 환대를 받으면 치유와 회복을 누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환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환대(歡待)는 국어사전에서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이다.

헬라어 제노스(ξένος xenos)라는 단어는 외국인(foreigner), 낯선 사람(stranger) 등의 뜻과 함께, 환대를 베푸는 주인(host)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이것은 누구나 주인으로 살 때가 있고 손님으로 살 때도 있다는 가능성을 지적해주고 있다.

내가 손님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주인으로서 어떻게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지 지혜를 준다.

성경에 황금률이라 불리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대접을 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에 환대가 절실한데도 우리 사회는 환대보다는 홀대가, 나아가 차별과 혐오가 기승을 부린다. 세상은 편리하고 풍요로워지지만 인심은 더욱 각박하고 메말라간다.

환대는 많은 것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임을 알 수 있다.

타자(the Other)윤리학을 제시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환대를 나의 삶의 테두리 밖에 있는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여 타자를 나의 삶의 공간에 맞아들이는 것이라 정의했다.

타자 없는 삶, 곧 나만의 삶의 안락함과 공간을 고수하려는 자기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귀찮음과 낯설음을 수용하며 기꺼이 나눔과 이웃됨을 실천하려는 자기 개방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정의를 보면 환대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더불어 함께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로 양극화되어 간다.

계산상 이익이 될만한 사람에게 환대하는 것은 본능이겠지만, 떠돌이 나그네 외국인 가진게 쥐뿔도 없는 사람을 환대하고 내 바운더리에 인정해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나도 언젠가 이방인과 손님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마저 그럴리 없다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논리는 경쟁 사회에서 따뜻함을 누리려면 낭만적인 환대보다는 치열한 승리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겨야 따뜻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을 믿는가? 우리는 그것을 사탄의 속임수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승자가 될거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속삭이지만 그건 불가능하고,

승자가 지배하는 세상은 모두가 불행하다. 승리자도 불행하다. 결국은 파멸이다.

세상의 논리에 순응하고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우리에게 향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는 3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너무 쉬운 말씀이다.

하지만 성경은 알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살라는 삶이 지침이기에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성경이 얼마나 강조하는지 잘 아실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가장 본질적인 소망은 서로 우애하는 것이다(12:10).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에서 눈여겨 볼 말씀이 있는데,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님의 제자됨을 인정받는다.

기독교의 신뢰도가 언제부터 추락하였는가?

교회가 부흥하면서 서로 갈등하고 싸울 때, 교회 안에 용역이 들어오고 경찰이 출동할 때부터이다.

서로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세상을 사랑한다니 이건 넌센스 아닌가.

세상을 향해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아무리 하나님을 향해 사랑한다고 거룩한 고백을 드린다해도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거짓말이라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형제 사랑은 제자됨과 하나님 사랑의 증거라 하시는데, 쉽지 않다.

사랑할만한 형제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겠는데, 도무지 사랑할만하지 않는 형제도 사랑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보면 지쳐서 형제 사랑을 멈출 때도 있고, 낙심해서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럴 때,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 다시 시작하라.

형제 사랑에 지치셨는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격려하시니 다시금 힘을 내서 시작해보자, 계속해보자.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이제 사랑의 범위가 형제에게서 이웃으로 손님으로 넓어진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모든 계명의 요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아닌가? (22:37-40)

이웃은 형제보다 넓은 개념이다. 이웃 사랑을 본문은 손님 대접, 환대로 표현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손님과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그네였었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 뿐 아니라 신약 성경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벧전 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특별한 것은 교회의 직분자의 자격을 말할 때, 손님 대접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손님 대접은, 환대는 형제 사랑을 넘어서는 더 높은 이상이고 실천이라 하겠다.

환대는 이기심을 넘어서야 하기에 우리 본성으로 잊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잊지 말라 하신다.

환대의 공동체, 누구라도 우리 교회에 들어오면 진심어린 환대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여러분을 만나면 마음으로 맞아주는 따뜻한 환대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성경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솔깃한 보상을 말씀하신다.

손님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사였다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과 롯의 경우인데, 아브라함은 낯선 세 사람이 자신의 집 앞에 나타나자 신속히 영접하고 극진히 대접했으며(18:1-8),

롯은 저물 때에 소돔성에 이른 두 사람을 간청하여 자기 집에 유숙하게 했다(19:1-3),

그 결과 아브라함은 하나닙의 심판 계획을 들을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조카 롯을 구원할 수 있었으며(18:16-21 ; 19:29) 이삭의 잉태를 들었고, 롯 역시 두 딸과 함께 구원받는 복을 받았다(19:1-17).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계신다’(구두 수선공이 만난 하나님)라는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을 썼는데, 톨스토이는 마태복음 25장을 배경으로 이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님은 당신이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돌보거나 돌보지 않은 이들에게 영생과 영벌을 선고하신다.

그러나 모든 이들은 의구심을 가진다. 그런 적이 없다고..

그러자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고, 그에게 하지 않는 것이 내게 하지 않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정직하게 듣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예수님을 외면하고 모른 체 지나쳤을까?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누가 박대하고 푸대접하겠는가?

그러나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함 같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 하시니,

손님 대접, 환대가 그리스도인의 사랑임을 잊지말고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3. 갇힌 자를 생각하고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13: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본문은 처음에 형제 사랑을 말씀하고, 다음에는 손님 대접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면서, 마지막으로는 갇힌 자와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앞서 마태복음 25장에서 갇힌 자, 학대받는 자를 돌아보는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거니와, 고난당하는 자들과 함께 하라는 것이다.

기독교 정신은 강자의 편에 서서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갇힌 자들, 경제적으로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자들, 강자의 입장이 아니라 약자들을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교회는 안타깝게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두둔하는 오류를 범하곤 했다.

오늘날은 복음마저 이념으로 갈라치기를 하기에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이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라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난지라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

 

마무리

고국을 방문하면서 환대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지를 체험하게 되었다.

세상에서도 환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본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랑이다.

각박한 이기주의 세상에서 약육강식의 세속적인 논리에 의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 형제 사랑과 더 나아가 손님 대접과 환대를 잊지말고, 얻을 것이 없는 자로 우리 곁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환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우리의 시각과 마음과 관심강자가 아니라 약한 자들,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들과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어야 할 복음의 삶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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