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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31(주) 불쌍한 자들에게 주신 부활의 소망(고전 15:19-20) 이기형 목사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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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19-20절 개역개정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불쌍한 자들에게 주신 부활의 소망(고전 15:19-20)

 

1. 불쌍한 자들

이생망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이번 생은 망했어"를 줄인 말인데, 지금의 삶이 나아질거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질 수 없고 현실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때 탄식하는 말이다.

여러분도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탄식해본 적이 있는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비참한 처량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라는데, 나는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가?

그 불쌍함은 타인에 대한 부러움으로 변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아가는 같은 시대 사람들이 부럽다.

만약 인생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많은 사람들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혈기왕성한 청년의 때로 돌아가고 싶어할지 모르겠지만,

그 청년의 때를 살고 있는 사람들도 지금이 최고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생망을 살고 있다.

어쩌면 아예 부모를 바꿔서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재벌집 자식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는 행복할까?

모든 것을 다 가져본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모든게 인생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인생 뭐 있나,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지는거지,,, 어짜피 인생이 다 그런거라고 쿨하게 인정하고 카르페디엠, 오늘 하루를 즐기라, 소확행을 찾아 만족을 누리는 것이 최고의 지혜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만족한 사람들, 나름 즐겁게 잘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인생을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는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라면 불쌍한 자라고 가르쳐준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떤 꿀을 찍어 먹든지 그 달콤함은 순간에 지나고, 다시금 비참하고 불쌍한 인생으로 돌아온다.

그마저 꿀이 없다면 너무 기진맥진하고 매달릴 힘조차 없기에 고통스럽겠지만,

잠시의 꿀이 절박한 상황을 바꿀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이 인생의 절망이다.

타이타닉 같은 여객선암초에 걸려 좌초되었고 침몰하고 있다면,

연회장에서 열리는 파티가 그 절박한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그나마 죽기 전에 파티라고 즐겨보고 죽는 것이 다행인가?

일등석에서 초호화 여행을 즐긴다해도 침몰하는 배에는 아무 소망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바라는 것이 단지 이 세상의 삶 뿐이라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조금 더 가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조금 더 편하게 누릴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것이라면 그가 예수를 믿었다해도 역시 더욱 불쌍한 자가 되고 말 것이다.

 

2. 불쌍한 자들에게 주신 부활의 소망

이렇게 불쌍한 자들에게 주시는 소망은 무엇인가? 20절을 같이 읽어보자.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이다.

침몰하는 크루즈에서 유일한 소망은 일등석이 아니라 비록 작고 허름하고 보잘 것 없어도 구명보트로 옮기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우화에서 참된 소망은 사자를 물리치고 그를 사망의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주는 것이다.

누구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사람이 없었다.

어떤 위대한 성인들도 결국은 무덤 속에서 주검으로 존재할 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빈 무덤을 보여주면서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

어느 종교가 부활을 말하는가? 부활은 기독교의 유일한 진리이다.

부활은 일반적인게 아니라 인류 역사상 부활하신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렇기에 예수 부활에 의심과 회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으시는가?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제자들도 예수의 빈 부덤을 확인하고서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은 후 제자들의 증언은 무엇인가? 예수 부활이다.

기독교는 십자가 죽음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진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라면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고린도교회에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을 증거하는데 먼저 부활의 증인들을 열거하다가

마지막에 자신에게 나타나셨다, 자기도 예수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면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헛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수 부활은 명백한 역사적 사건이고 기독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마무리

수 부활과 우리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기서 ????첫 열매????라는 말은 그 다음 열매를 예고하고 약속하는 표현인데, 바로 우리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의 부활의 예고이자 약속인 것이다.

그리스도에 붙어 있는 자는 부활의 영광에 함께 동참할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을 확증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 신앙고백에서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 부활은 이 세상에서 불쌍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참된 소망을 주신다.

부활이 없다면 이 한 세상 그저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일 것이다.

(32)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부활이 있다면, 이 세상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면 이 세상이 전부인양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오늘 역사적인 예수의 부활은 죽은 것 같았던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영광스럽게 변화시켜 주실줄 믿는다.

예수의 부활은 죽음이 지배하는 무덤같은 이 세상에서 절망속에 탄식하는 자들에게 참된 소망을 보여 주시며 죽음을 이기는 능력을 부어 주신다.

부활,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다면 두려울 것이 뭐 있겠는가?

바울은 죄로 인해 죽음이 인생을 결박했지만, 예수 부활하심으로 사망은 힘과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말씀하신다.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

그러므로 이 부활의 믿음 안에 흔들리지 말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을 사모하면서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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