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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4(종려주일) 십자가로 가까이 (요19:25-26) 이기형 목사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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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9:25-26절 개역개정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제공: 대한성서공회

십자가로 가까이(19:25-26)

 

의미를 대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림, 암호, 기호, 문자 등을 상징(Symbol) 로고 마크 아이콘이라 한다.

기독교의 상징은 무엇인가? 십자가이다.

왜 십자가일까? 십자가는 아시는대로 가장 참혹한 사형 집행 도구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십자가를 미련한 것이고 거리끼는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십자가는 지나간 과거의 추억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과해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지금부터는 십자가는 과거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지금 십자가에 달려 계신게 아니라 내려오셔서 무덤에 계시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십자가의 예수보다 부활의 예수를 더 좋아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자이런 말씀보다 예수의 부활과 승리를 누리자는 말씀에 더욱 환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의 심볼을 바꾸어야 한다.

십자가는 지워버리고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이나 이스터 바니(토끼)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세상 모든 곳에 교회는 십자가를 세운다. 그럼 왜 십자가인가?

 

왜 십자가인가?

부활은 기독교만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이고 우리의 소망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부활은 십자가를 전제한. No cross, No crown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부활은 불가능하다.

복음서 전체 분량의 3분의 1가량을 예수님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 고난주간 십자가 죽음에 할애한다.

십자가 고난과 죽음에 비하면 탄생이나 부활, 승천 기사는 이상하리만큼 간략하게 지나간다.

그만큼 예수 십자가는 복음의 중심이자 은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십자가의 죽음은 반드시 부활을 약속한다.

그래서 죽어야 산다는 역설의 진리가 기독교에 있다. 살려면 죽어야 한다.

죽음은 나의 의지이고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나의 선택은 죽음의 삶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가 지나간 추억이나 일회성 통과의례가 아니라 날마다 경험하는 실존이 될 때, 주님은 그에게 부활의 기쁨을 주신다. 죽지않고 살아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생명의 길이다.

구원 이후에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인가? 바울은 십자가를 강조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삶을 사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예수가 죽은 십자가에 나의 정욕과 탐심, 그리고 세상도 함께 못박는 것이다.

예수 제자로서의 삶을 제자도라 하는데,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제자도가 무엇인가?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 제자도이다.

그렇게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는 주님께 합당하지 않다 하셨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고 우리의 날마다의 실존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간 사람들

그렇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 십자가에 동행하였고 그들도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았던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누가 있었을까? 복음서의 기록은 약간씩 다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제자들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고 오직 여인들만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기록은 약간 다른데, 예수를 아는 자들과 여자들이 멀찍이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요한의 증언은 다르다. 공관복음에는 주로 여인들이 멀리서서 바라보았는데, 요한의 기록에는 사랑하시는 제자 이는 요한을 가르킴이고 여인들이 십자가 곁에, 십자가 예수의 곁에 있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이해하자, 공관복음의 기록과 같이 여인들과 제자들 몇 명은 멀리서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를 바라보며 시간이 흘러가는데, 그 자리에 머물거나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예수의 십자가 가까이 나아간 사람들도 있었다고 요한이 기록하는데, 이 기록이 정확한 이유는 자기 자신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가시는데,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저 멀리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는가, 그마저도 소수의 사람들이었고 대부분은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함께 못박힌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멀찍이서 십자가를 구경하거나 정작 그 골고다 현장에 머무는 것조차 포기한다면,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어쩌면 그 십자가는 금은 보석으로 장식된 십자가일 수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십자가일 수 있다.

골고다 근처에도 가지 않으면서, 그 처절한 고통의 현장은 외면하면서, 나를 위해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살을 한 번도 바라본 적이 없으면서도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고 십자가를 붙들 수 있는가?

우리의 삶의 방향은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십자가로부터 멀어지고 있는가?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가, 십자가는 팽개치고 영광과 축복만을 갈망하고 있는가?

섬김과 희생 그 번거로운 십자가는 다른 사람이 지게 하고, 조금도 손해보지 않고 조금도 불편하지 않는 넓고 쉽고 편한 길을 가려 한다면 그 끝에서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는가?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간 제자 요한은 그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십자가 아래서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그 받은 말씀이 요한의 남은 생애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명이 되었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발걸음이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란다.

 

마무리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신 곳처럼,

나도 자기를 부인하고, 나의 자아와 욕심과 정욕과 세상이 죽어지는 곳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제자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그저 한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나를 위해 피흘리신 그 십자가 아래서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보혈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는 까닭은 십자가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아예 생각지도 않거나 멀리서 구경할 뿐이기에,

십자가를 알고 있지만 십자가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십자가의 능력은 없다.

왜 그리 교만하고 왜 그리 강팍하고 왜 그리 고집스러운가? 죽지 않아서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를 만나지 않아서이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어디에 머물 것인가?

주님과 함께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여정에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누군가 가장 가치(價値)있는 사람은 같이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주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주와 함께 고난의 자리에도 같이 있어야 한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십자가 앞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고, 평생 십자가 곁에서 떠나지 않기를 사모하였다.

미국 찬송가 작가 크로스비(F.J.Crosby)는 찬송가 439장에서 십자가로 가까이를 노래했다.

Jesus, keep me near the cross 주님 나를 십자가 가까이 있게 해 주십시오.

예수의 보혈이 떨어지는 십자가 아래로 가까이 나아갈 때 그 보혈이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며 새로운 삶을 살게 하고 마침내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할 것이다.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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