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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7(주) 일구이언 자승자박(약 3:9-11 이기형 목사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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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야고보서3:9-11절 개역개정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일구이언 자승자박(3:9-11)

 

설교 제목의 뜻 풀이는, 한 입으로 두 말하면 그 말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거라는 말씀이다.

국회의원 총선거에 정당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지역들이 있다.

민주당의 경우 서울 강북을 지역구에 민주당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나 다름 없었는데, 정봉주 전의원이 공천을 받았다. 그렇지만 과거에 유튜브와 방송에서 행한 막말이 문제가 되어 지난 14일에 공천이 취소가 되었다.

국민의 힘의 경우도 대구 중남구 지역구에 도태우 변호사, 부산 수영에 장예찬 전 청년최고의원이 공천을 받았는데 공천이 당선이지만 이들 역시 과거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공천이 취소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발언을 다 잊어버렸겠지만, 그 발언들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남아 그들의 미래를 가로막았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 아닌가?

 

우린 출마할 일이 없으니 안심할 수 있는가?

모든 인생에게는 죽음 이 후 심판대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건데, 형제를 비판하고 업신여기는 자에게 심판을 경고하신다.

심판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의 언행심사, 말과 행동과 마음과 생각이다

과거의 발언이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정치인들 뿐만이 아니다.

무익한 말이 사라지지 않고 그로 인해 심판 날에 심문을 받을거라 하신다.

행동으로 저지른게 아니라도 입술의 죄도 가볍지 않다.

낚시에 물고기의 입이 걸리듯이, 사람도 입술로 인해 재앙과 멸망의 그물에 걸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야고보서 3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1. 말의 영향력과 파괴력

1) 말의 영향력 - 말과 배

야고보는 말의 영향력을 말과 배의 비유로 설명한다.

[]은 힘이 있지만, 아무리 힘이 있어도 제어(통제)가 안되면 무용지물인데, 말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 그 입에 재갈을 물린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말의 재갈처럼 입술을 제어하는 자가 지혜자이다.

또 하나의 비유는 배인데, 배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는 것이 지극히 작은 방향키이다.

야고보는 말에는 영향력이 있는데, 말의 입에 개갈을 물리듯이 우리의 말에도 재갈을 물려야하고, 배에 키로 운행하듯 우리의 말에도 키가 있어야 온전하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말은 단지 소리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괴의 능력이 아니라 생산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가?

재갈과 키. 실제적으로 말하면 경우에 합당한 말, 유익하고 선한 말이라 하겠다.

경우에 합당하고 유익하고 선한 말 가운데 하나는 칭찬과 격려라 하겠다.

아픔과 고통많은 세상에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절실하다.

 

2) 말의 파괴력 -

그런가하면 말에는 영향력 뿐 아니라 파괴력도 있다. 야고보는 그것을 불에 비유한다.

불이 얼마나 유익한가.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불은 통제가 안되면 오히려 재앙을 가져온다.

작은 불씨가 어마어마한 숲을 잿더미로 만들고 삶의 터전을 집어 삼켰다.

혀의 파괴력이 그렇다고 비유한다. 우리 지체 중에 지극히 작지만 온 몸을 불사르고 더럽힌다.

말 한마디로 인해 관계가 깨지기도 하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 우리의 고민 - 통제불능

이렇게 말에는 선하게 사용하면 영향력이 있고 통제를 잃어버리면 파괴력이 있는데, 우리의 고민은 통제가 안된다는 점이다.

인류는 만물의 영장으로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을 길들여 왔다.

그런데 인류가 길들이지 못한 것이 있는데, 자신의 혀라고 말씀한다.

만물의 영장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인간이 자기의 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왜 길들여지지 않을까? 자기 혀도 자기 맘대로 안되는 것일까? 자기 혀가 아닌가?

그렇다. 내 맘대로 못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것을 죄인됨이라 한다.

로마서에서 말씀하는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3:10).

그러면서 죄인됨을 열거하는데, 먼저 혀와 입술과 입을 지적하고 있다(3:13-14).

그 안에 이미 속임과 독사의 독이 있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해서 혀를 통해 자동적으로 죄를 짓는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구원받은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 입술로 또한 사람을 저주하기도 한다(3:9).

일구이언, 한 입으로 다른 말,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마땅치 않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비정상을 어떻게 정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

 

3. 해답 - 우리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온전히 성화되지 못한 탓에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입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 속에 주 되심의 문제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말은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가르쳐 주신다.

마음에 예수가 가득하면 예수 이야기가 나오고, 세상이 가득하면 세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가 주인되시고 예수로 충만한 삶에는 선한 말, 은혜의 말이 나온다.

예수로 충만한데 사납고 악한 말이 나올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스스로 경건하다 해도, 구원의 확신이 넘치고 성경의 지식이 대단하다 해도, 그 혀를 재갈 물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속임수고 헛것이라고 가르쳐 주신다(1:26).

여러분 주위에 신앙생활은 잘 하는거 같은데, 말이 사납고 거칠고 입술이 험악한 사람이 있는가?

야고보의 기준에 의하면 그 경건은 헛것이다. 가짜라는 말이다. 그런 사이비는 피하시라.

우리가 한 사람의 인격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말을 통해서이다. 말이 그 사람이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말이 그 마음 속에 쌓인 것을 나타내준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입술에서 시작된다.

성령이 임하자 저들이 방언을 한다. 방언을 하늘의 언어라고 신비하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본질은 입술을 성령께서 주관하셔서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 방언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말해야 하는 새 방언은 무엇인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마무리

일구이언 자승자박(3:9-11)

 

설교 제목의 뜻 풀이는, 한 입으로 두 말하면 그 말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거라는 말씀이다.

국회의원 총선거에 정당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지역들이 있다.

민주당의 경우 서울 강북을 지역구에 민주당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나 다름 없었는데, 정봉주 전의원이 공천을 받았다. 그렇지만 과거에 유튜브와 방송에서 행한 막말이 문제가 되어 지난 14일에 공천이 취소가 되었다.

국민의 힘의 경우도 대구 중남구 지역구에 도태우 변호사, 부산 수영에 장예찬 전 청년최고의원이 공천을 받았는데 공천이 당선이지만 이들 역시 과거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공천이 취소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발언을 다 잊어버렸겠지만, 그 발언들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남아 그들의 미래를 가로막았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 아닌가?

 

우린 출마할 일이 없으니 안심할 수 있는가?

모든 인생에게는 죽음 이 후 심판대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건데, 형제를 비판하고 업신여기는 자에게 심판을 경고하신다.

심판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의 언행심사, 말과 행동과 마음과 생각이다

과거의 발언이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정치인들 뿐만이 아니다.

무익한 말이 사라지지 않고 그로 인해 심판 날에 심문을 받을거라 하신다.

행동으로 저지른게 아니라도 입술의 죄도 가볍지 않다.

낚시에 물고기의 입이 걸리듯이, 사람도 입술로 인해 재앙과 멸망의 그물에 걸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야고보서 3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1. 말의 영향력과 파괴력

1) 말의 영향력 - 말과 배

야고보는 말의 영향력을 말과 배의 비유로 설명한다.

[]은 힘이 있지만, 아무리 힘이 있어도 제어(통제)가 안되면 무용지물인데, 말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 그 입에 재갈을 물린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말의 재갈처럼 입술을 제어하는 자가 지혜자이다.

또 하나의 비유는 배인데, 배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는 것이 지극히 작은 방향키이다.

야고보는 말에는 영향력이 있는데, 말의 입에 개갈을 물리듯이 우리의 말에도 재갈을 물려야하고, 배에 키로 운행하듯 우리의 말에도 키가 있어야 온전하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말은 단지 소리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괴의 능력이 아니라 생산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가?

재갈과 키. 실제적으로 말하면 경우에 합당한 말, 유익하고 선한 말이라 하겠다.

경우에 합당하고 유익하고 선한 말 가운데 하나는 칭찬과 격려라 하겠다.

아픔과 고통많은 세상에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절실하다.

 

2) 말의 파괴력 -

그런가하면 말에는 영향력 뿐 아니라 파괴력도 있다. 야고보는 그것을 불에 비유한다.

불이 얼마나 유익한가.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불은 통제가 안되면 오히려 재앙을 가져온다.

작은 불씨가 어마어마한 숲을 잿더미로 만들고 삶의 터전을 집어 삼켰다.

혀의 파괴력이 그렇다고 비유한다. 우리 지체 중에 지극히 작지만 온 몸을 불사르고 더럽힌다.

말 한마디로 인해 관계가 깨지기도 하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 우리의 고민 - 통제불능

이렇게 말에는 선하게 사용하면 영향력이 있고 통제를 잃어버리면 파괴력이 있는데, 우리의 고민은 통제가 안된다는 점이다.

인류는 만물의 영장으로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을 길들여 왔다.

그런데 인류가 길들이지 못한 것이 있는데, 자신의 혀라고 말씀한다.

만물의 영장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인간이 자기의 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왜 길들여지지 않을까? 자기 혀도 자기 맘대로 안되는 것일까? 자기 혀가 아닌가?

그렇다. 내 맘대로 못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것을 죄인됨이라 한다.

로마서에서 말씀하는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3:10).

그러면서 죄인됨을 열거하는데, 먼저 혀와 입술과 입을 지적하고 있다(3:13-14).

그 안에 이미 속임과 독사의 독이 있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해서 혀를 통해 자동적으로 죄를 짓는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구원받은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 입술로 또한 사람을 저주하기도 한다(3:9).

일구이언, 한 입으로 다른 말,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마땅치 않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비정상을 어떻게 정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

 

3. 해답 - 우리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온전히 성화되지 못한 탓에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입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 속에 주 되심의 문제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말은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가르쳐 주신다.

마음에 예수가 가득하면 예수 이야기가 나오고, 세상이 가득하면 세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가 주인되시고 예수로 충만한 삶에는 선한 말, 은혜의 말이 나온다.

예수로 충만한데 사납고 악한 말이 나올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스스로 경건하다 해도, 구원의 확신이 넘치고 성경의 지식이 대단하다 해도, 그 혀를 재갈 물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속임수고 헛것이라고 가르쳐 주신다(1:26).

여러분 주위에 신앙생활은 잘 하는거 같은데, 말이 사납고 거칠고 입술이 험악한 사람이 있는가?

야고보의 기준에 의하면 그 경건은 헛것이다. 가짜라는 말이다. 그런 사이비는 피하시라.

우리가 한 사람의 인격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말을 통해서이다. 말이 그 사람이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말이 그 마음 속에 쌓인 것을 나타내준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입술에서 시작된다.

성령이 임하자 저들이 방언을 한다. 방언을 하늘의 언어라고 신비하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본질은 입술을 성령께서 주관하셔서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 방언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말해야 하는 새 방언은 무엇인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마무리

그리스도인의 변화의 시작은 입술이다.

성령에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이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송과 이웃에게 축복을 전하며,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않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인의 변화의 시작은 입술이다.

성령에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이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송과 이웃에게 축복을 전하며,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않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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