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 홈 >
  • 하늘가족양식 >
  • 설교말씀
설교말씀
240310(주)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하신 욥의 하나님(약 5:11) 이기형 목사 2024-03-10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54

http://gajok.onmam.com/bbs/bbsView/5/6371404

[성경본문] 야고보서5:11절 개역개정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하신 욥의 하나님(5:1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긍휼과 은혜와 인자가 풍부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주신다.

하지만 성경을 조금 더 아는 분들은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가나안 정복에서 원주민들을 진멸시킨 사례라든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 등은 이해가 어렵다.

또한 욥에게 주신 시련을 보면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라 하기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당사자 욥에게는 분노가 없고 배신감이나 상처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본문에서 야고보는 인내라는 한 단어로 욥을 설명했고,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우리가 질병과 가난, 실패와 죽음 등을 경험할 때에도 하나님을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신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렇게 고백할 수 없다면 왜 야고보는 욥의 하나님을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바르고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욥과같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고난의 원인 - 장난이나 징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랑

욥이 고난을 당한 이유는 욥이 대단한 잘못을 저질러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처구니 없게도(?) 하나님의 자랑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욥을 보시고, 입이 근질근질 하셔서 사탄에게 칭찬을 늘어 놓는다.

욥기에 나오는 욥의 행실을 보면 유별나긴 하지만,

먼지와 티끌같은 인생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천군과 천사뿐 아니라 사탄 앞에서도 높이들어 자랑하신다. 이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 뿐만 아니라 나도 그렇게 보신다.

 

여기에 사탄이 시기하고 빈정대며 이의를 제기한다.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할리 없다, 댓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탄의 주장은 한 마디로 인과응보이다.

축복이라는 원인을 제거하였는데도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것이 진짜라는 것이다.

욥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장은 인과응보인데, 사탄도 욥의 친구들도 그렇게 주장한다.

사탄은 욥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복이 없으면 믿음도 없다고 생각하고,

욥의 친구들도 욥이 고난을 당하는 까닭은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과응보의 자연법칙을 넘어서는 더욱 크고 놀라운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자비와 긍휼의 법칙이다.

욥이 대단해서 그 결과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인과응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로 사랑과 은혜로 욥에게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럼 욥도 복을 받아서 그 댓가로 하나님을 섬긴 것인지, 댓가가 없어도 온전함으로 섬긴 것인지 이제 고난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2. 고난의 과정 - 욥의 인내

하나님은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신다.

어쩌면 사탄의 주장이 옳을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은 떨어지고 하나님도 욥에게 속았다는 수치를 당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왜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셨을까?

하나님은 앞서 욥을 세상에 그런 사람 없다고 칭찬하시고 인정하셨었다.

말로만 칭찬하신게 아니라 하나님은 욥을 그렇게 믿어 주셨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힐 수 있지만, 하나님은 여러번 발등이 찍히셨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믿어 주신다.

사탄은 우리를 믿지 않는다. 복을 주지 않으면 신발 바꿔 신을 거라고 고소하지만

하나님은 그럴리 없다고 우리를 믿어 주신다. 욥은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열 자녀를 잃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욥은 온전함을 잃지 않았다.

욥의 믿음이 인과응보 조건적인 거래가 아니라 까닭없는 온전함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탄은 자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더 쎈 제안을 한다.

욥에게 주신 복을 거두어들일 뿐 아니라, 이제는 욥에게 질병을 내리는 것이다.

인과응보에 의하면 질병은 죄악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욥이 죄악을 저지르진 않았다.

사탄은 자기가 믿고 있던 인과응보를 넘어서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욥을 넘어뜨리기 위해서이다.

이 공격은 욥에게는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온전함, 곧 하나님을 향한 온전함을 지켜가기 어려울텐데, 욥은 아니다.

27: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이것을 야고보는 욥의 인내라 하였다.

인내는 시간이 지나가도록 수동적으로 고난을 참는 것이 아니다.

인내는 시간 떼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인내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온전함으로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함, 곧 인과응보의 거래가 아니라 온전한 믿음을 붙들었다.

 

그가 하나님을 붙들었다는 것은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나님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지 순응한 것은 아니었다.

욥은 하나님께 따져 묻는다.

욥은 자기는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겼는데, 하나님은 까닭없이 자기에게 괴로움을 주신다고,

뭔가 잘못된 거라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저울에 달아보시고 자기의 온전함을 알아달라고 호소한다.

하나님께 따져 묻는 것이 불경한 것인가? 감히 인생 주제에 하나님께 따지는 것이 참람한 죄인가?

우리가 하나님께 털어 놓지 못할 말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는 상한 마음과 상처를 그대로 내려 놓을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 온전함이고 인내이다.

 

3. 결말, 고난을 통해 만난 하나님 -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마침내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시고 결말을 주신다.

왜 까닭없이 나를 괴롭히시냐는 욥의 호소하나님께서 뭐라 하셨을까?

이런 건방진 녀석같으니, 감히 인생인 주제에 나에게 덤비겠다고? 그럼 정말 죄가 없는지 한번 따져볼까? 이런 하나님이 아니셨다.

욥에게 주신 결말은 하나님은 인과응보를 주장한 욥의 친구들의 주장이 아니라 온전함을 주장한 욥을 옳다고 인정해 주신다.

그리고 잃었던 것을 회복시키실 뿐 아니라 갑절의 복을 주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복은 무엇인가?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자기의 간구와 행실대로라면 결국 심판에 처할 수 밖에 없지만, 자기를 옳다 인정해 주시고 갑절의 복을 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복을 주신 것오로지 자비와 긍휼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강력한 자연법칙 가운데 하나가 인과응보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인과응보로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편협되고 위험하다.

인과응보보다 더 큰 하나님의 통치원리는 자비와 긍휼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욥에게 깨우치시기 위해 욥에게 질문하신다.

우리는 자연질서의 모든 원리가 인과응보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다 알지 못하지만, 대답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조화와 질서있게 움직인다. 거기에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

하나님이 욥에게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느냐?"라고 질문하신다.

까닭없이 은혜를 베푸는 것이 인간 세상을 운영하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인과응보에 의하면 선인에게는 햇볕을, 악인에게는 구름으로 가려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햇볕과 단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

그것은 까닭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다. 모든 만물은 그 은혜로 살아간다.

 

마무리

사랑하시는 하늘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욥의 하나님이 가장 자비로우시고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실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욥과 같은 시련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삶이 유달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거듭되는 역경과 고난과 실패와 좌절하나님이 무섭고 잔인하게 보일 때,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다고 나만 가지고 그러는지 억울함이 커져 가신다면.

왜곡된 오해로 하나님을 보실 것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을 온전히 대면하시기를 바란다.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욥의 인내를 배우셔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거래가 아니라 순전한 믿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시라.

하나님께 따질 수도 있고, 하나님께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그 자리만큼은 떠나지 마시라.

기다리면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행한대로 갚으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으로 자비와 긍휼로 임하실 것이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뿐이다.

때때로 구름이 햇빛을 가리듯 의심이 사랑을 가릴 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있다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인과응보가 아니라 자비와 긍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귀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40317(주) 일구이언 자승자박(약 3:9-11 운영자 2024.03.22 0 149
다음글 240303(주) 성화인가, 오염인가 (눅 8:43-44) 운영자 2024.03.06 0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