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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주) 성화인가, 오염인가 (눅 8:43-44) 이기형 목사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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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8:43-44절 개역개정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화인가, 오염인가(8:43-44)

 

성수에 파리가 빠졌다면, 성수가 오염된 것인가, 아니면 파리가 성화된 것인가?

우리는 쓸데없는 논쟁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저들에게는 중요한 신학적인 이슈일 수 있다.

성수가 성결하게 하는 능력이 없는 맹물에 불과하다면 그걸 뿌린들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러나 파리가 성화될 정도의 능력있는 생수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당연히 성화될 것이다.

하지만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파리가 성화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에 틀림이 없다.

거룩과 부정에 대한 가르침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이 접촉하면 항상 정결한 것이 부정해진다.

특별히 부정하게 되는 질병이 있었는데, 나병이나 유출병이 그러하였다.

 

1. 혈루증 여인 - 예수를 통해 부정이 정결해지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오늘의 본문을 살펴보자.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의 치유인데, 9:20-22 5:25-34 8:43-48에 병행구로 나온다.

혈루증은 하혈이 멈추지 않는 질병인데 이는 위생의 불편을 넘어 건강상으로 심각한 위협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고통은 종교적인 규례 때문이었다.

혈루병은 전염병이 아니지만, 누구든지 그와 닿기만 해도 부정이 전염되고, 심지어 직접 접촉이 아니라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기만 해도 부정한 자가 되었다.

아무도 그녀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었고 소외를 당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댄다.

이 여자와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기에 이 여자가 누군가에게 손을 대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예수님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예수님도 부정한 자가 되어 저녁까지 격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예수님이 부정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혈루증을 고침받고 정결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혈루증으로 오염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성화가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모든 인생이 부정한 것에 접촉되면 부정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간이 범죄함으로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죄인은 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죄가 예수님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고 정결하게 하신다.

오늘 혈루증 여인이 고침받은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은,

사람이 못고치는 어떤 고질적인 질병도 예수님은 고치시고,

어떤 문제든지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오면 다 해결받을 수 있다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가르침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어린 양되신 예수 십자가 대속의 보혈이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2. 적용 - 두가지 질문

1) 우리는 예수를 만난 거룩한 자인가?

여러분은 이 예수를 만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심으로 죄에 오염되었던 심령이 예수 보혈로 인해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예수를 주로 영접한 이 후의 기나긴 과정을 성화라고 한다.

성화는 거룩하게 되어가는 점진적 과정이다. 나의 삶은 성화되고 있는가?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분의 신앙 곡선은 상승인가, 하강인가? 여러분의 신앙이 가장 뜨거웠던 때가 언제인가?

지금인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아니면 옛날인가?

예수를 만난거 같긴한데, 성화되기는커녕 세상에 오염되어 가는거 같은 불안함을 가진 분이 있다.

세상에서 믿음 붙들고 살아가는게 왜 그리 힘들고 어려운지,

세상에 안주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미지근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이건 아닌거같다.

안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믿는다고 하기에는 부끄럽고 빈약함이 있다.

연륜이 더하고 지식은 높아지고 경험도 많아지면서 경건의 모양은 그럴듯하게 갖추었고, 목사 장로 권사 직분도 받아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만 삶은 늘 그렇고 그렇다. 늙어간다.

뜨거움을 갈망한다지만 솔직히 뜨거움보다 미지근함이 더 안락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머리와 가슴, 이상과 현실은 제각기이다. 어느 것이 내가 바라는 나인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늘 막쪄낸 찐빵처럼 살아갈 수 없다. 찐빵은 식기 마련이다.

그래서 찐빵은 밖에 두지 않고 찜솥 안에, 전용 보온 머신에 넣어두어 온도를 유지하게 한다.

우리가 막쪄낸 찐빵으로 살아가려면 찜솥같은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정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때보다 더욱 깊어졌다고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속에 오염되어 세속화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정결하게 순수해지는 성화의 삶이 되면 좋겠다.

 

2) 우리는 세상에서 거룩을 전해주고 있는가?

그 거룩한 삶은 개인적인 차원 뿐 아니라 이웃과 세상에서의 삶으로도 드러난다.

오늘날 기독교는 수구적이고 보수적인거 같다. 그것을 진리를 지켜가는 삶으로 생각한다.

거룩은 구별됨인데, 죄악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거리두기, 철저한 격리와 차단, 접촉을 금할뿐 아니라 아예 얼씬도 못하도록 담을 높이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혈루증 여인같은 부정한 자들이 접촉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방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룩한 삶이란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지 세상과 담 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교회가 조인들을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배제한다면 죄인들이 어떻게 예수를 만나겠는가

오늘날 교회는 저들이 교회를 접수하고 세속화시키기 때문에 철저하게 막아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교회가 거룩의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저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기에,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저들의 인생이 바뀌기에, 거룩하게 성화되어 갈 것을 믿기에, 저들이 어떻게든 교회에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 거룩의 능력이 있다면 그 접촉을 통해 교회가 오염되고 세속화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진리 안에서 변화되고 거룩한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저들은 똥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혼들이다.

내 안에 거룩의 능력이 없어서 저들과 접촉하면 저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러워질거 같다면 피하는 것이 지혜이다.

그러나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로 충만해서 거룩한 능력으로 저들을 성화의 길로 이끄는 것이기에, 담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면 좋겠다.

 

3. 해답 - 예수로 충만하라

그러려면 결국 예수로 충만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로 충만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우리는 본문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예수로 충만하려면, 거룩의 능력을 가지려면 예수를 만나야 한다.

예수와의 만남이 일회성이 아니라 늘 만나야 한다.

예수를 만나는데 태도와 자세를 말씀드리고 싶다.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은 예수께 나아와 예수를 만나는데, 당당함이 아니라 간절함이다.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나와서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뒤로 와서 예수님도 모르게 겉옷 가를 만진다.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낫겠다는 생각,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그 믿음과 닮아 있다.

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간절함이고 갈급함이고 가난함이다.

오늘날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서 찾을 수 없는 아쉬움도 간절함이고 갈급함이고 가난함이다.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를 만나 너무 고급진 입맛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뒤로 가서 옷자락이라도 만지려는 혈루증 여인의 겸손함, 부스러기라도 갈망하는 이방여인의 간절함

뷔페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에 입맛따라 골라먹는 재미를 누리는 오늘 우리 세상에서는,

전속 요리사를 두고 맞춤 요리를 주문할 수 있는 오늘 우리 세상에서는 가난한 날의 추억일 뿐이다.

그 때가 좋았다고 아련히 추억하지만 거기 가난한 시절로 돌아가려는 마음은 사실 없다.

은혜와 감동을 갈망하면서도 겸손함과 간절함을 잃어버렸다면 늘 그렇고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간절함과 갈급함, 가난함으로 주님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나는 성화되고 있는가, 오염되고 있는가? 아니면 늘 그 자리인가?

나로 인해 세상이 거룩을 회복하고 있는가? 아님 세상과 담 쌓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해답은 내가 예수로 충만하고 거룩의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예수를 만나는 것은 혈루증 여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간절함과 겸손함과 가난함이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예수님께 가까워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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