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1(주일예배) 전도자 안드레-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요 1:41-42) | 이기형 목사 | 2024-02-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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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41-42절 개역개정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전도자 안드레-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요 1:41-42)
우리가 누군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리 설명하고 정보를 많이 준다해도 본인이 직접 만나서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주 빌립 집사를 살펴 보면서 중요한 키워드가 있었는데, 가서 보니, 가까이 나아가라는 것이다. 빌립이 한참 사마리아 부흥을 주도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광야길로 내려가라니, 이게 무슨 말인지 이치에 맞지도 않고 이해가 안된다. 상식적으로 통념적으로 전략적이지 않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데 가니까 보이더라는 것이다. 이해되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면 이해가 된다. 가서 보니, 가까이 나아가니 거기 하나님의 준비한 영혼이 있었다. 오늘 키워드는 와서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초대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정보와 소문이 있지만 편견에 사로잡혀 그럴거라 추측하지 말고 직접 와서 보라는 것이다. 와서 보라는 메시지는 누가 처음으로 사용한 것일까? 오늘 세 사람의 전도자를 살펴보려 한다. 1. 세례 요한 - 보라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는 강력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앞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앞으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능력자가 오실거라고 가르친다. 마침내 예수께서 요한에게 찾아오셨을 때에 그는 소리쳤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메시야가 오셨으니 무관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텐데,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전도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자기 곁에서 자기를 따르던 두 제자가 요한의 전도를 듣고 예수를 따라 나선 것이다. 요한의 보라! 그 한마디가 두 제자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때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안다면 그 말 한마디가 어렵고 힘들겠는가. 예수를 보라고 전할 때 누군가 준비된 그는 반응할줄 믿는다. 2. 예수 - 와서 보라 예수께서 자기를 따르는 두 사람에게 묻는다. “무엇을 구하느냐?” 두 사람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무슨 생각으로 따르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하신다. 예수를 따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런 질문일 수 있다. 이 질문에 두 제자는 “랍비여 어디 계십니까?”라고 되묻는다. 엉뚱한 대답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교사들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선생님,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제가 함께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자기를 찾은 첫 제자들인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부르실까? 예수님의 전도 메시지라면 기독교의 복음을 한 문장 한 단어로 농축한 뭔가 심오하고 대단한 것을 기대할지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명문장은 바로 “와서 보라”이다. 너무 쉽고 평범한거 아닌가? 그런데 이보다 더 간결하고 핵심적인 메시지는 또 없을 것이다. 대단한 지식이나 영성이 없어도 이 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에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내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초대를 받고 그 날 예수님과 함께 거할 때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때가 10시쯤 되었다고, 그 시간을 기록해놓고 있다. 세례요한의 증언과 예수님의 ‘와서 보라’는 초대로 두 사람은 예수를 만나게 된다. 3. 안드레 -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두 제자의 만남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만남으로 이어진다. 여기 처음으로 제자가 된 두 사람 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라고 이름을 밝힌다. 예수를 만난 안드레는 가장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도한다. 그리고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온다. 예수의 제자가 되고 처음 한 일은 전도였다. 예수를 믿고나서 처음으로 한 일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사람, 자기 형제에게 예수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 이끌어 오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곳에 혼자 가면 가족 생각이 나지 않던가? ‘우리 가족들과 함께오면 좋겠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이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이 왜 안올까?’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가? 그런 생각을 못하는 것은 거절당할 때의 두려움이나 혹은 그렇게 와보라 해도 오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와서 보라는 초대가 교회 뿐인가? 얼마나 많은 광고가 자기들에게 오면 행복할거라 유혹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무수히 속아왔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넘어오지 않는다. 사람들을 넘어오게 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갖추고 초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교회는 너무 작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것들이 없는거 같아서 와보라 하기가 민망하다. 조금 더 사람들이 모이고 커지면 그 때 당당하게 와보라고 할 수 있을거 같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와서 보라고 한 것이, 와서 많은 사람들을 보라고 하신 것인가? 와서 좋은 사람들 사귀고, 인맥을 잘 만들어서 이민생활 편하게 살아가라고 초대하시는 것인가? 와서 보라는 것은 예수를 만나라는 초대이다. 그래서 예수님만 계시면 된다. 내가 예수를 만났는데 너무 좋더라, 그래서 너도 예수님 만나면 틀림없이 나처럼 좋을거야. 이런거다. ‘너는 왜 항상 웃니’라는 명곡 찬양을 소개해 드리려 한다. “너는 왜 항상 웃니 슬퍼도 눈물 나도” 슬픔과 눈물이 있어도 항상 웃다니, 무슨 비결이라도 있니? “남들은 모를 거야 왠지 좋아 항상 좋아” 넌 이해하지 못할거야. 그래서 ‘왜?’ 라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그러자 “무엇이 그리 좋은지 나도 알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오늘날 기독교와 복음과 교회에 이런 매력이 있는가? 힘과 권세와 크기를 자랑하는 시대에, 쥐뿔도 가진게 없는데도 기뻐하다니. 도무지 세상이 줄 수 없는 무엇을 가졌길래 저렇게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너와 나 만나려고 주 예수님 오셨단다” 예수님께서 너와 나를 만나려고 찾아오셨다는 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인생과 사람과 변화시킨다. 어떻게?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은 그 인생을 바꾸어 주시는데 먼저 이름을 바꾸어 주신다. 장차 게바라 하리라. 번역하면 베드로인데 반석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장차 앞으로 그렇게 되어질 것을 미리 보시고 이름을 주신다. 장차 주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 하신다. 누구든지 지금은 보잘 것 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에수를 만난 인생은 주의 손이 멋지게 만들어 가신다. 한가지 기억할 것이 있는데, 베드로 하면 12제자 중에 수제자라 인정받고 놀라운 역사를 감당했지만, 안드레가 없었더라면 베드로도 없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이 그 사람으로 인해 바뀌었다면 나 역시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 데려오면 예수님이 바꾸신다. 그렇게 예수께로 이끌어가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지목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예수를 보라는 스승의 말에 두 제자가 응답하여 예수를 따른다. 두 제자의 ‘저희가 함께해도 되겠습니까?’라는 요청에 예수님은 와서 보라고 부르신다. 와서 보라. 이것은 예수님의 초대이자 오늘 우리의 초대가 되어야 한다. 와서 보니, 예수를 만나니 요한과 안드레 그들의 인생이 변화되었다. 안드레는 예수를 만나자 자기의 가장 소중한 사람 그 형제 시몬에게 예수를 전한다. 너무 좋은데 자기 혼자만 간직하는 사람이 있는가?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낳는다. 안드레가 없었다면 베드로도 없었다. 성령이 충만하고 권능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는 빌립 집사같은 전도자도 있지만, 예수를 만나자마자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소개하는 안드레같은 전도자도 있다. 어떠하든지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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