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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4(주일예배) 전도자 빌립-성령의 인도하심 따라(행 8:26-40) 이기형 목사 20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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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8:26-40절 개역개정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전도자 빌립-성령의 인도하심 따라(8:26-40)

 

교회가 감당할 일들은 많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일까? 하나님나라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다.

복음서에 교회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온다.

그럼 예수님은 무엇을 선포하셨는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복음서에 50여회 이상 나온다.

그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에는 여러 기능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통해 친히 보여주신 것은 가르치는 일(디다케)복음 전파(케리그마), 그리고 고치시는 봉사(디아코니아)였다(4:23).

그리고 교회가 세워졌을 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레이툴기아)성도의 교제(코이노니아)가 더해졌다.

보통 교회의 4대 기능 혹은 5대 기능을 말하는데 그것은 예배, 친교, 교육, 전도, 봉사이다.

이 다섯가지는 모두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도이다. 2월은 전도자에 대해 말씀 나누려고 하는데 오늘은 전도자 빌립이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다.

결국은 사도 외에는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흩어지면서도 말씀을 전했다.

그 중에 유대인들이라면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에 내려가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빌립이다.

빌립의 전도에는 표적과 능력이 있었다.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들이 낫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이 추종했던 시몬이라는 마술사도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랐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지자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보내 성령을 받게 한다.

전도자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부흥의 주역이었다. 사마리아의 터주대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때에 빌립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3가지 인도하심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1. 남쪽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사마리아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은 150km나 되는 먼 거리이다.

더군다나 그 길은 광야이다. 길도 험할 뿐 아니라 강도와 들짐승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사마리아 부흥의 주역을 감당하고 있는 빌립에게 이러한 지시가 합당할까?

지금 사마리아에는 누구보다도 빌립이 필요한거 아닌가?

광야에 누가 산다고 거기로 가라는 것일까?

도저히 우리의 상식으로는 납득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한 지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가고싶지 않고 원치않는 곳으로 보낸다.

하나님께서 전도를 위해 우리 교회에게 가라고 하시는 곳이 어디일까?

우리의 상식으로 맞지 않는 곳일 수 있고, 그래서 가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빌립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빌립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마리아를 떠난다.

27절 말씀, 일어나 가서 보니. 순종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확장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마리아 그 자리에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여기 중요한 단어는 가서 보니이다.

사마리아에서는 광야 길이 보이지 않기에 거기 뭐가 있는지를 모른다.

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데, 가서 보니까 거기 하나님의 예비하신 여호와이레가 있더라는 것이다.

탁상공론이라 하는데, 책상에서 아무리 갑론을박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장에 가보면 거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

오늘의 본문에는 유독 가다, 나아가다, 달려가다 능동적이고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는 그렇게 생명력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서 순종하겠다 하지만,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믿음으로 순종하시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하실 것이다.

 

2.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빌립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을 것이다.

그는 내시, 남자의 성을 제거한 환관이었지만 여왕의 인정을 받아 국고를 맡아 관리하였다.

한 나라의 재무부 장관을 맡았으니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행렬도 감히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났을 것이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수천km 떨어진 멀고 힘든 여정이고 더군다나 이방인 고자는 예배에 참여할 수 없음에도 그는 예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가고 있다.

흔들리는 수레에서도 성경 이사야를 소리내서 읽고 있다.

당시 성경을 구하는 것도, 헬라어로 된 성경을 읽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한 신앙인이다.

 

두 번째 성령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신 것은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에는 세상의 권력과 부요를 가진 사람, 예루살렘까지 예배하러 올라오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 노중에서도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세상과 신앙 다 가진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성령께서는 피상적으로 보지말고 가까이 나아가라 하신다.

빌립이 다가가 묻는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빌립은 내시가 읽고 있으니 당연히 이해하는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답은 너무 뜻밖이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가까이 가보니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다른 실제가 보인다.

사마리아에 있지 않고 순종하여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내시가 있었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보니 예배도 성경도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성령께서는 이 한 사람을 위해 사마리아에 있는 빌립을 이끌어 오신 것이었다.

 

내시는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읽고 있었는데 자기의 궁금함을 빌립에게 묻는다.

이 선지자가 말한 것이 누구를 가르키는 것인가? 선지자 본인인가, 타인인가?

빌립은 이 질문에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한다.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 받기를 자청한다. 빌립은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어 준다.

내시는 빌립을 만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에디오피아 국고를 맡아 관리해야 하기에 에디오피아 목적지가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목적은 달라졌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3.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주고 물에서 올라오자, 세례 주기를 마치자마자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갔다.

이제 광야길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세례를 베풂으로 그 사역이 마치자 이번에는 성령께서 강권하셔서 빌립을 이끌어 가셨다.

이끌어가다는 단어는 강한 어조가 담겨 있는데, ‘데려가다’ ‘잡아채 가다’ ‘신비롭게 혹은 매우 빨리 다른 장소로 옮김이라는 의미도 있다.

초자연적인 붙들림에 의해 다른 장소로 옮겨진 것을 의미한다.

그는 성령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었다. 자기를 이끌어가도록 성령께 온전히 맡긴 사람이었다.

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전적으로 내어드린 사람이었다.

성령에 붙들린 빌립과 같이 온전히 성령님께 내어 맡기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성령께서 어디로 이끌어 가셨는가? 아소도이다.

아스도는 블렛셋의 5대 도시 가운데 한 곳으로 구약에는 아스돗으로 나온다.

본절에 따르면 빌립은 해안의 욥바, 룻다를 거쳐 가이사랴에 거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고 붙들림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빌립은 초대교회 집사이자 전도자로서 사마리아 복음 전파에 개척자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이 후 베드로와 바울의 본격적인 복음 전파의 토대를 만들어 준 셈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전도자 빌립은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한 사람이었다.

사마리아에 안주하지 않고 성령의 이끄심 따라 멀리 남쪽의 광야 길로 간다.

광야에 무슨 사람이 있겠는가만, 순종하여 가서 보니 한 사람 에디오피아 국고 맡은 관리가 있었다.

성령께서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라 하실 때 가까이 가서 보니 그는 멀리 예루살렘까지 예배하러 올라오고 돌아가는 길에도 성경을 읽을만큼 열정적이었지만 성경을 깨닫지는 못했던 것이다.

피상적인 만남이 아니라 가까이 나아가면 그의 영혼이 보인다.

내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 예수는 종교가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사람들은 그 예수를 갈망한다. 단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고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방황할 뿐이다.

사마리아에 있는 빌립을 남쪽 광야 길로 인도하셔서 내시를 만나게 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를 그 한 사람에게로 이끄신다.

그는 피상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나아가보라.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필요는 있지만 깨닫지 못하니 그렇데 답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 예수를 알게하고 전해주라.

성령에 붙들림으로 살아가시는 능력있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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