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31(주) 집행유예의 은혜와 열매맺기 (눅 13:6-9) | 이기형 목사 | 2023-12-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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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3:6-9절 개역개정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집행유예의 은혜와 열매맺기(눅 13:6-9) 포도원에서 무화과 열매를 기대하다. 오늘 비유의 말씀은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 나무이다. 포도나무 가운데 무화과 나무라니, 무슨 이유일까? 포도원이니 포도는 흔하게 얻을 수 있지만 과수원 주인이 포도와 다른 무화과를 얻고 싶었나보다. 그러면 포도동산에 무화과 나무는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주인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과수원의 모든 나무들이 포도 열매를 낼 때 이 나무는 무화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럼 무화과 나무의 사명은 무엇인가? 무화과 나무는 목재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었고, 꽃이나 향기나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무화과 나무의 가치와 목적은 오직 열매 맺는데 있다. 주인도 열매를 기대하고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래서 열매를 구하였는데, 어떻게 되었는가? 열매를 얻지 못했다. 3년이나 되었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3년이나 자랐으니 잎사귀만 무성했을 것이다. 주인의 분노와 심판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그러자 주인의 기대는 분노로 변하여 극형을 선고한다. 포도원지기에게 차라리 찍어버리라고 지시한다. 없으면 기대라도 하지 않을텐데, 없으면 그 땅에 다른 나무라도 심을텐데, 없으면 그 땅의 양분이라도 빼앗기지 않을텐데. 그야말로 자기뿐 아니라 땅만 버리는 무화과 나무였다.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틴에 있는 여러 나무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애용되고 있는 나무였으며 종종 이스라엘을 상징하곤 했다(호 9:10;율 1:7). 예수께서 삼년을 이곳 예루살렘에 와서도 열매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나무(예루살렘)를 찍어버리겠다고, 즉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셨던 것이다(눅 13:7). 이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 뿐이겠는가? 어쩌면 영적 이스라엘 우리의 자화상은 아닌가? 서당개 3년이면 풍얼을 읊고 식당개 3년이면 라면도 끓인다 하지 않던가. 조금 어설프고 작고 못생긴 열매라도 보여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데도 아무런 열매를 내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움을 넘어 분노를 살 일인가? 복음서가 강조하는 것은 크기도 아니고, 햇수도 아니고, 오로지 열매이다. 열매로 나무를 안다. 그 나무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얼마나 크게 자랐는지 주님은 그렇게 외형을 보지 않으신다. 아무리 화려하고 오래되고 크다해도 열매 없으면 땔감이다.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어떤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가? 좋은 나무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고 못된 나무에는 나쁜 열매가 맺힌다. 무화과 열매는 무화과 나무에서 딸 수 있지 엉겅퀴에서 얻을수는 없다. 그럼 우리는 무화과 나무인가? 주인은 분명히 무화과 나무를 심었다. 당연히 무화과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럼 이 나무는 무화과 나무인가, 아닌가? 무화과 나무이긴 한데 쓸모가 없으니 가시나무처럼 찍어버리시겠다 하신다. 이스라엘이긴 한데 열매가 없으면 찍어버리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열매가 없으면 가시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심각하고 두려운 경고 아닌가? 구원은 믿음으로,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가는줄 믿고 느긋하게 세상의 곡간에 열매를 쌓아두면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리이다. 포도원지기의 중보 이제 포도원지기는 주인의 명을 받아서 무화과 나무를 잘라버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주인의 지시를 거부하고 막아선다. 당연히 열매없는 무익한 무화과 나무는 찍어버려야 맞지만, 금년만 그대로 두시라고.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더 많이 주겠다고. 그래도 열매가 없으면 그 때 찍어버리시라고. 포도원지기 역시 이 무화과 나무를 각별한 사랑과 관심으로 키웠기에 더욱 분노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맺지 않은 것이 마치 자기의 잘못이나 되는 것처럼, 자기가 잘 할테니 한번만 더 기회를 주자고 간청한다. 시간을 벌어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더욱 풍성한 은혜,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다고 한다. 햇볕을 잘 받고 수분을 흡족히 받도록 땅을 파서 흙을 부드럽게 하고 거름을 주어 토양을 기름지게 하겠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열매맺게 하려는 포도원지기의 사랑이 주인의 심판을 유보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집행유예 은혜의 시간에 살고 있다. 마무리 무화과 나무를 향한 주인의 기대는 무엇인가? 포도열매가 아니라 오로지 무화과 열매이다. 이 한해 동안 여러분의 삶은 어떠했는가? 남들이 맺은 포도 열매가 부러워 보여서 무화과를 버리고 포도 열매를 맺으려 하진 않았는가? 세상 사람들의 열매가 부러워서 내가 맺어야 하는 주님의 기대는 저버리고 세상으로 달려가진 않았는가? 열매맺기 보다는 혹시 크게 보이려고 잎사귀를 무성하게 하고 웃자라진 않았는가? 주님은 여지껏 참아오셨으니 앞으로도 그냥 참고 기회를 주실거 같은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 어쩌면 금년은 포도원지기의 마지막 부탁, 한 번만 기회를 더 달라는 은혜의 해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허비해서는 안되는 귀중한 시간이다. 당장에 찍어버리지 않으시고 다시금 기회를 주시지만 그 기회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이다. 언제까지 주실지 알 수도 없고, 기회를 주시지 않으셔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 주신다면 정말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변화된 삶으로 나타나는 회개의 열매, 성품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빛의 열매, 삶의 열매들을 주님께 드리는 무화과 나무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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