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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주) 기다림의 영성2(눅 2:36-38) 이기형 목사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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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36-38절 개역개정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기다림의 영성2(2:36-38)

 

메시야가 오셨음을 선포하는 법적 증언에 시므온과 함께 증인이 된 사람이 또 있다.

그가 바로 안나이다.

 

안나는 누구인가?

(36)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안나는 아셀지파라고 한다.

여로보암의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지만, 아셀 지파 중 몇 사람은 유다왕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유월절을 지킬만큼 신앙적인 사람들이었다.

안나는 안나스의 여성형으로 은혜, 은총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한나에 해당한다.

그는 여선지자라고 한다.

흔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안나는 신약의 여선지자로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결혼하고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았다.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그런데 그녀의 남편이 죽고 안나는 과부가 되었다. 그리고 자식도 없었다.

과부가 되고 84세가 되었다. 원문의 의미는 그리고 그녀는 84년까지 과부였다

과부가 된지 84세라는 의미라면 14세에 결혼했다 가정하면 21세에 과부되고 84년이 지났으니 지금 안나의 나이는 105세이다.

그런가하면 과부가 되었고 지금 나이가 84세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럼 60여년을 과부로 지낸 셈이다.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편을 잃어버린 과부는 약자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혼법, 계대결혼법이라는 특수한 제도를 허용하시기도 하였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남편없이 홀로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선택했을까?

 

안나의 삶은 어떠하였는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1)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

안나는 얼마든지 재혼해서 새출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나는 성전을 선택한다.

아마 안나는 자신의 삶을 나실인으로 드렸을지 모르겠다.

갈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성전이 편하고 안락해서가 아니라,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 아닌가? 하나님의 품이 아닌가?

그렇기에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라고 노래할 수 있었다.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 할 때에, 그 건축물로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는 말이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감옥일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늘 주님의 품 안에 머물기를 사모하였다.

그런 갈망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를 섬기는 삶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새로운 남편 대신 하나님을 남편으로 삼을거라 결심했을 수도 있겠다.

하나님이 남편이라는 비유는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선지자들이 보여주는 선명한 가르침이었다.

바울도 비슷한 비유로 말씀하여 가르쳐 주신 것이 있다(고후 11:2).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간음이라 한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벗된 삶을 간음이라 하면서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살도록 참으로 유혹이 많고 강하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고 하나님의 집을 떠나는 것이 가출이고 세상을 사랑함이 영적 간음이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던 안나 선지자.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들도 늘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 머물러 살아가시기를 축복한다.

 

2)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로 섬겼다.

84세된 과부라면 뭘 할 수 있을까?

그저 편하게 대우받고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누가는 성전에서 안나의 삶을 한마디로 뭐라 정의하는가? 섬기더니

지금 안나는 84, 해석에 따라서는 100세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섬김의 삶을 살아간다.

안나는 왜 그런가?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주님은 섬김을 받으려 하심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다.

세상에서는 군대처럼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고 높아질수록 편하게 되지만,

크리스챤은 신앙이 깊어질수록 연륜이 더해 갈수록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삶이다.

섬김의 삶을 결단하면 해야 할 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나의 섬김은 금식과 기도였다.

기도도 섬김인가 싶을지 모르겠는데.. 기도야말로 가장 능력있는 섬김이다.

금식하며 드리는 그 간절한 기도야말로 하늘 문을 열게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다.

우리가 말세에 깨어 있는 믿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하라 하신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는 과부, 그는 하찮은 늙은이가 아니라 존경받는 참된 어른이다(딤전 5:3).

 

또 한 사람의 메시야 증인 안나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38)

그러니까 안나는 특별한 이벤트를 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메시야를 만난 것이다.

어쩌면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안나가 있는 성전에 찾아온 셈이다.

우리의 소망이 다시 찾아오시는 예수를 만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예수를 만날만한 자리인가?

이렇게 살다가 주님 맞이하면 정말 반갑고 행복한 만남이 될까?

주님은 예고하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홀연히 도적같이 오시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주님을 만날 수 밖에 없는데, 일상이 주님 뵙기에 반갑고 합당한 자리가 되시기를 축복한다.

 

안나가 메시야를 만나고 처음으로 한 것은 감사였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메시야를 만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으니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안나는 감사에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메시야 예수를 만나고 구원받은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보이는게 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보인다.

메시야가 오셨음에도 알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보인다.

구원의 길이 있는데 모르고서 오지 않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서 선지자 안나는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속량을,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고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안나는 그에 대하여, 예수 메시야에 대하여 말하였다. 미완료 시제인데 계속적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빌립이 예수를 만나고 나다나엘에게 와보라고 전한다.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없다면 전할 것도 없지만, 우리에게 메시야 예수를 만난 기쁨과 감격이 있다면 그것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시므온 안나가 이스라엘의 위로, 이스라엘의 속량이신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감격을 누린다.

우리도 동일하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안나는 결혼 후 7년동안 남편과 살다 과부가 되어 84가 되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불행한 여인임에 틀림 없지만, 안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남편으로 삼았다.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품인 성전을 떠나지 않았고, 모든 생애가 섬김의 삶 특별히 금식과 기도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그 일상을 살다가 마침 메시야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을 남편 삼아서 성전 하나님의 집을 떠나지 않고 기도와 섬김과 주님 만난 전도의 삶을 살아가다가 그 일상의 자리에서 주님을 다시 만나는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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