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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3(주) 나이롱에서 찐으로 (행 19:1-7) 이기형 목사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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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9:1-7절 개역개정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3년 12월 3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31203(주일예배) 나이롱에서 찐으로(행 19:1-7) 나이롱에서 찐으로(행 19:1-7) ‘거미줄보다 부드러우며, 실크보다 아름답고, 강철보다 강하다.’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합성 섬유인 나일론(Nylon)이 1935년 처음 개발됐을 때 신문은 그렇게 극찬했다. 나이론은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기적의 신소재’로서 서민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옷감이었다 하지만 국민생활이 나아지면서 건강에 좋지 않은 싸구려, 값싼 화학 물질로 격하됐다. 그러면서 나이론은 ‘가짜’나 ‘사이비’ 혹은 ‘엉터리’란 의미로까지 변질되었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나이롱 신자가 있는데, 이들은 얼마나 될까? 지난주 기독신문에는 “출석교인 40%가 '나이롱(nylon) 신자'... 충격”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는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지난 23일 ‘한국교회 명목상 교인 실태 조사’를 보도한 것이다. 그 비율을 측정한 결과, 출석 교인의 39.5%가 명목상 교인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목협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인 중 교회 출석자가 70.7%, 가나안 성도가 29.3%였다. 70.7%중에 39.5%를 계산해 보면 ‘가나안 성도’와 ‘명목상 교인’을 합하면 전체 한국 개신교인의 57.2%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절반 이상이 나이롱 신자라면 나는 어디에 속해 있을까? 2023년의 연말이 되었으니 우리 신앙을 스스로 점검해 보면 좋겠다. 1. 참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럼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나이롱 그리스도인인지 어떻게 분간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에게 영이 떠나면 시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마찬가지, 시체 그리스도인, 죽은 그리스도인이다. 성령께서 그 안에 함께 하셔야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은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연인의 안에 육체의 욕망이 있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 육체의 정욕은 십자가에 못박고 이제 내 안에 성령께서 나를 이끌어가는 사람, 그것을 성령충만이라 하는데 그가 그리스도인이다.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인에게 생명과도 같다. 바울은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그것을 묻는다. 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1절에 나오는 아볼로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는 말을 잘하고 성경 지식이 해박했다. 그가 회심하여 예수를 배우고 예수를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지만, 한계가 있었다.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행 18:24-25). 본래 세례는 죄 씻음의 표식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요한이 요단강에서 베풀었었다. 기독교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와 연합하는 표식으로 베풀었다. 성경에는 능통하지만 예수의 세례를 알지 못하고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안타깝지 않은가? 그의 가르침을 받은 에베소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자인데 예수의 세례를 모르다니, 그래서 이들을 나이롱 제자라 할 수 있겠다. 잘 배워서 제자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예수의 세례를 알지 못하니 나이롱 제자일 수 밖에 없다. 우리도 성경에 능통하지만 예수가 아니라 그 이전 그림자와 전통을 붙들고서 믿고 있을 수 있다. 이 제자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왜냐면 요한은 세례를 베풀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인 예수를 믿으라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예수에 대해 듣긴 했지만 정작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교회 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얼을 읊는다고 지식과 정보는 많이 알고 있는데, 정작 자기와 관계가 없다. 바울은 그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한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앞서 말씀 드렸다. 시금석과도 같은 질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대답은 충격적이다. 성령을 받기는 고사하고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성령은 금시초문이었다.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한 사람을 제자라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십자가가 없어도 교회이고, 성령이 없어도 교인이라는 사실이 두렵지 않은가? 오늘날 신앙도 소비재가 되어서 예수를 따르는 삶이 아니라 예수를 즐기는 삶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찾아가는 교회는 어디인가? 사람들이 원하는 신앙은 어떤 것인가? 안락하고 편한 곳, 기왕이면 최고의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면 우리는 성령이 인도하심 가운데 있는 것일까? 성경에 나이롱 신자를 이렇게 지적한다.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 딛 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는게 신기하지 않은가?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론적 무신론자는 왜 신이 없는지 이론의 체계를 세우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실천적 무신론자는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말하고 때로 종교의식에 참여하며 경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그의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으셨는가? 성령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지식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나의 욕심따라 살아가지 않고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함으로 내 삶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가? 그렇게 되려면, 3.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하라. 요한의 세례만 받고 성령이 계심을 알지 못했던 제자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울이 안수할 때 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예수의 세례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표식이 세례이다.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가 주인이기에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간다. 그게 가능하려면 내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는가? 이것이 관건이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믿음은 성령의 역사이니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 안에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그러면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주인되시도록 그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명목상의 교인 나이롱 신자가 아니라 리얼 찐 크리스챤이 될 것이다. 마무리 성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감당할 능력도 은혜도 주셨다. 그것으로 나는 2023년 어떤 삶을 만들어 갔는가? 어떤 사람들은 연초보다 더 힘든 수렁에 빠져가는 삶도 있을 수 있겠는데, 어떤 사람들의 삶은 더 나아지고 여유롭고 안정되고 부유해졌을 수도 있다. 생활은 살만해졌는데 영적인 삶은 얼만큼 달라졌고 변화되었고 성숙해졌는가?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는가? 하나님의 몸인 교회를 어떻게 섬겼고 이웃과 성도를 어떻게 섬겼는가? 우리교회는 연초보다 어떻게 달라졌고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나이롱, 나이만 먹은거라면, 그저 명목상의 이름 뿐이라면  

이제부터라도 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성령의 열매맺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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