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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8(주) 감사가 우선입니다 (눅 17:11-19) 이기형 목사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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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7:11-19절 개역개정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감사가 우선입니다(17:11-19)

 

말세의 징조 가운제 하나는 감사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는데(딤후 3:2) 과연 오늘날 풍요의 시대지만 감사는 찾기 어렵다.

본문에서도 10명의 나병환자가 모두 고침을 받았지만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단 한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병은 하나님께 저주받은 병으로 인식하여 가족과 공동체에서 격리 추방되었다.

질병도 고통이지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고 다가오지 못하도록 부정하다고 소리쳐야 했다.

나병환자 10명이 메시야 예수를 만났지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이들은 저 멀리서 큰 소리로 외친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 선생님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랍비와 같은 뜻인데, 선생 주인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들의 호칭에는 주님,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자로 인식한 것이다.

 

이런 외침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애매하지 않는가? ‘너희들이 나았다하시면 당연히 제사장에게 갈 수 있는데, 그냥 가라니..

그 말씀을 듣고 조금이라도 몸의 변화가 있으면 가겠는데, 그런 변화도 없으니 괜히 헛고생일 수 있다.

여러분이라면 제사장에게 가겠는가,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는가?

그들이 가긴 했다. 14절 가다가,, 어디로 가다가 나음을 받았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첫 번째 가정은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고침 받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대단한 믿음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치 나은 것처럼, 그러니까 아직 낫지 않았고 나을 징조도 없는데 나은줄 믿고 제사장에게 가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과 순종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가정은 그냥 자기 집으로 돌아가다가 고침 받았을 수 있다.

제사장에게 보이려면 뭔가 달라진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조금도 달라진게 없다.

집에 가서 기다렸다가 뭔가 달라지면 그 때 제사장에게 가도 늦진 않을거라. 상당히 합리적이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이 어디로 갔느냐는 것은 중요한게 아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했든지 그들은 가다가 자신들의 병이 나았음을 알았다.

그들이 믿었든 아니면 믿지 않았든, 병 고침을 받은 것은 결국 예수님의 능력이었다.

나에게 은혜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서든지, 그런 믿음이 없음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자격없는 자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지나온 삶의 여정마다 지금도 풍성하지 않는가?

이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이어야 할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열명 중에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하였다.

정말 기적적인 은혜를 경험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만 돌아와 감사하는가?

만큼 감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일까? 사실 감사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여기 감사하는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 참된 감사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1)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15)

큰 소리로. 표현하지 않는 감사는 감사일 수 없다. 마음으로는 너무 감사한데, 표현은 인색하다?

하나님, 그냥 마음만 받으세요그러시면 하나님도 OK 나도 마음만 줄께그러실지 모르겠다.

하나님께 마음만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는가?

정말 나병을 고침받은 사람이라면, 큰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어떻게 감출 수 있고, 어떻게 숨기고 있겠는가?

우리 안에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감사가 아니라 그런 감사를 넘어 감격과 감동이 있기를 소망한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자기 자랑이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만 그 명목 하에 자기 것인양 자기 자랑을 늘어 놓기도 한다.

감사의 기본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권과 주인되심이다.

내가 한게 아니라서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런 행동을 다음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감사하니

오늘날 대인관계에서 감사를 잊은 배은망덕한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그러다보니 때로 감사는 자신의 교양이나 품위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결국은 감사도 자기 중심적일 수 있다.

주님 앞에 드리는 감사도 인정받기 위해서, 나는 괜찮은 믿음의 사람이라는 칭찬받기 위해서라면,

그는 엎드릴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존재를 누군가의 발 아래 쳐서 복종시킬 수 없다.

님의 발 아래 엎드리는 감사, 나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시며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그 주님께 대한 신뢰와 감격으로 드리는 참된 감사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홉 명은 어디로 갔을까?

그 아홉명이라고 고침받은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없었겠는가? 왜 없었겠는가?

예수께 돌아오지 않고 어디로 갔는지 가장 합리적은 추론은 제사장에게 갔을 것이다.

아무리 나병이 나았다해도 제사장의 판단이 없으면 사회로 복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께 돌아오지 않고 제사장에게로 갔다면 그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겠다.

 

1) 우선순위

고침받은 9명은 제사장에게 가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다.

자기를 고쳐주신 먼저 예수께 돌아가 감사하고 그 후에 제사장에게 찾아갈 것인가,

아니면 먼저 제사장에게 찾아가 확진을 받고 그 후에 예수께 돌아가 감사할 것인가.

나의 필요를 먼저 채울 것인가, 아니면 먼저 감사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음이 없을 수 있다.

감사는 타이밍이다. 지금 감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감사하겠다는 것은 핑계와 변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제사장을 만나는 것은 나중이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감사보다 나의 필요를 먼저보고 크게보면, 참된 감사가 아니라 그저 형식적인 감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감사가 우선이다. 감사가 당연하다.

 

2) 병이 나았다는 현상에 가려 병을 고쳐주신 분을 보지 못했다.

이들은 무엇을 보지 못한 것인가?

병이 고쳐진 것은 보았지만 그 병을 고쳐주신 분은 보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들이 유대인들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받은 것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있었을 것이다.

그 감사하는 마음은 상식적인 생각이라서 그 인식으로는 예수께 나아갈 수는 없다.

피상적인 현상만 바라볼 뿐 믿음의 시각으로 해석할 능력이 없다면 진정한 감사에 나아갈 수 없다.

근원적인 성찰, 깊이있는 믿음의 시각을 가지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감사는 믿음의 가치를 증명한다

예수님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놀라운 구원을 선포하신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열명 모두가 고침 받았으니 이들 모두가 나병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이다.

돌아와 감사하지 않았다고 나병이 다시 재발되었을리 없다.

그런데 돌아와 엎드려 감사하는 이 한 사람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특별한 말씀이 주어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기 구원은 육신의 병고침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됨 곧 영혼의 구원까지 말씀하시는 것이다.

무엇이 그를 구원하였는가? 감사가 아니라 믿음이다.

그런데 다른 9명도 고침을 받았으니 동일한 믿음이 있었던거 아닌가?

그럼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있는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감사하는 믿음이다. 감사하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고 그 가치를 증명해 준다.

그러기에 감사는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의 근원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믿고

나의 필요를 채우기보다 먼저 감사로 깊은 감사로 온전한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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