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4(주) 무엇을 염려해야 할까?(마 6:31-33) | 이기형 목사 | 2023-09-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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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6:31-33절 개역개정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무엇을 염려해야 할까?(마 6:31-33)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염려하지 않는가? 근심 걱정이 없는가?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자기 교만의 죄악이라고. 그렇게 극약 처방을 해도 염려를 떨칠수는 없다. 1. 우리는 왜 염려하는가? 1) 생각이 염려를 가져온다. 염려라는 한자어는 생각할 염(念), 생각할 려(慮)이다. 그러니까 생각이 많은 것이다. 아무렇게 생각없이 되는대로 살면 염려 근심할게 없다. 생각이 많다보니 잘될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염려도 걱정도 같이 생긴다. 염려한다해서 달라질 것도 없으니 염려말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지라고 권한다.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는 스와힐리어로, 직역하면 “문제가 없다” “걱정이 없다”이다. 기왕 생각하는거 안될거라고 염려하지 말고 잘될거라고, 근심 걱정은 떨치고 편한 마음을 가지라. 순리대로, 물 흐르는대로, 되는대로 맡기라. 그리고 염려하지 말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자족하라. 있으면 있는대로 살고 없으면 없는대로, 잘되면 잘 되는대로 살고 안되면 안되는대로 살면 그만 아닌가? 마음을 잘 지키고 다스리라. 그러면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일까? 이건 운명론 숙명론에 따른 마인드 콘트롤. 합리화, 변명과 착각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계획없이 예측없이 살기를 원하시는가? 그냥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적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의 스위치는 끄고 그냥 주어진 삶과 환경에 아멘하면 되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하라 하신다. 2) 책임감이 염려를 가져온다. 누구라도 자기 일이 아니면 염려하지 않는다. 남의 일이라면 어떻게 되든지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책임감이 있기에 염려한다.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책임감도 없고 나와 관계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직업을 잃고 당장에 먹을 것이 떨어지고 있다면, 비즈니스가 잘 안되고 빚이 늘어가고 있다면,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지 않고 예배에 안나오고 있다면, 어떻게 염려가 안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먹을거 입을거 다 책임져 주시는데 왜 염려하냐고. 그 작은 것이라도 기뻐하고 자족하라고 거기에 만족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다 살게 하시는 방법이 있다고.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공급해 주신다고. 엘리야의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역사하신다는 간증을 많이 들어보았다고 한다면, 이것을 대단한 믿음이라고 인정하시겠는가? 이건 믿음이 아니라 무책임이고 그냥 게으름 아닌가? 물론 비상한 하나님의 공급을 간증하는 그 간증이 거짓일리 없다. 그런데 간증은 성공자들의 주관적인 자기 경험이다.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실패자들이 있다. 간증은 법칙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꼭 그렇게만 역사하시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상 말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노력해야 하나님도 도와 주시지, 그럴 의지나 생각이 없다면 하나님도 역사하지 않으신다. 생각과 책임감이 있으면 염려는 불가피하다. 염려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될 수 있다.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 하셨는데, 그 의미가 아무 생각없이 살라거나 무책임하게 살라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대로 바울은 늘 교회를 위해 염려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2. 염려하지 말라 하심의 의미 1)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염려하지 말아야 할 영역이 있는데, 무엇을 마시고 먹고 입을까? 이건 우리의 일상에서 생존을 말한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고 지키시고 살피시고 돌보시고 공급하시고 채워주심을 믿는다. 예배당에서 예배할 때 은혜가 충만하면 세상 근심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주일 예배 후에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서 현실로 돌아오면 그렇게 하나님께 맡겨두었던 염려와 근심이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다. 바뀌지 않은 현실, 치열하게 생존해야 하는 책임감에 짓눌리는 현실에서는 염려하고 근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주일에만 하나님이시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개점 휴업하시는가? 하나님은 예배당 안에서만 계시고 우리의 일상에는 무관심하신가? 그래서 일상에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챙기고 찾아가야 하는가? 내 삶인데 내 목숨인데 내가 책임져야지, 누가 나를 챙겨주고 도와주겠나 싶은가? 주님께서는 그것을 하늘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들이 살아가는 법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들도 염려가 되고 두렵긴 마찬가지고 불안한 것도 똑같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먹고 살 수는 있을까?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지만, 그러나 그것은 내 책임도 아니고 내 영역도 아니다. 이젠 내 소관이 아니다. 혹시 아버지 없는 고아라면 자기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지만 아버지가 계시니 아버지가 책임지신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 우리의 욕심대로가 아니라 필요대로 채워 주신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필요하다면 주실 것이고, 필요하지 않다면 안주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과 형통에서 자유할 수 있다. 세상의 풍요와 부요에서 자유할 수 있다. 안주실리 없고 못주실리 없는 하나님은 나의 계획과 나의 욕심따라 좌우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 따라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떠하든지 염려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는 이유는 어짜피 환경은 달라지지 않고 그나마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지면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에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시고 인도하시면서 필요에 따라 풍성하게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내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면 그럼 나의 할 일은 무엇인가? 2)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럼 내가 살아내야 하는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은 무엇인가? 염려를 생각이라 한다면, 책임감이라 한다면 우린 무엇을 염려해야 할까? 내가 무엇을 먹고 입고 살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염려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되심과 다스리심이 나를 통해 드러나고 보여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이 사명이고 그 자리가 선교의 자리가 된다. 단지 잘먹고 풍요롭게 살라고 그 비즈니스와 직장을 주신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은 크게 성공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현장이 얼마나 치열한지, 서바이벌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 안가려도 쉽지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인간의 수단 방법보다 못하실까? 그래서 하나님을 팽개치고 세상적인 수단 방법을 붙들고 살아야 할까? 그 현장에서 여러분이 인정받기 보다 하나님께서 인정받으시면 좋겠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여러분이 보냄받은 곳에 세상의 풍요와 번성이 아니라 성령의 그 열매가 있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이 되어 오직 그리스도로 인해 살아가는 삶이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형통이나 번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염려하고 추구할 것은 나의 만족과 성공을 위한 염려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주권이 나를 통해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무리 이렇게 말씀을 전해도 우리는 여전히 염려하고 걱정할지 모르겠다. 주어진 상황으로 돌아가 거대한 환경에 부딪치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감정이 속아서는 안된다. 그런 감정에 나를 맡겨서도 안된다. 생각이 있고 책임감이 있기에 염려할 수 밖에 없지만, 어쩌면 염려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먹고 입는 나의 삶은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고 믿는다. 나의 욕심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쓸 것을 채워주실줄 믿는다. 우리가 염려가 아니라 자족하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 내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이 온전히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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