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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0(주일예배) 너는 행복자로다 (신 33:29) 이기형 목사 202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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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행복자로다(33:29)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생 목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행복이라 하겠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거라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돈과 섹스와 권력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행복할거라 믿는다.

그래서 돈을 찾고 구한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한계는 있다.

돈을 얼만큼 가져야 행복할까? 정답은 조금만 더이다.

지금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우리 감각에 역치가 있기 때문에 적응하면 더욱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돈으로 행복을 못채운 사람들이 찾는 것은 권력, 명예를 구한다.

권력자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행복할거 같다.

그런데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영원한 권력은 없고 그 권력이 제 무덤이 되는 경우도 보았다.

돈도 권력도 행복에 못미친다면, 아예 쾌락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거 아닌가?

오늘날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중독이다.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손을 댔다가 빠져나올수 없는 수렁이 되어 버렸다.

돈이나 권력이나 쾌락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이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나마 다른 무엇으로 얻을 수 없는 불안전한 행복이라도 느낄 수 있기에 그렇게 추종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마저도 넉넉히 가질 수 없다.

돈이나 권력이나 쾌락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주관적인 기대를 낮추면 된다. 기준, 눈을 낮추라.

가질 수 없다면 이미 가진 것으로 만족하면 행복할 수 있다. 마음의 수양을 하라.

기대를 낮추려면 그 위험성이나 부작용만 부각시키는 것이다.

꼭 돈이 있어야 행복한건 아니잖는가?

마른 떡 한조각만으로 화목한 것이 진수성찬 앞에 두고 다투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가난하면 지킬 것이 없으니 단잠 자지만 부자는 잠도 못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불교가 말하는 해탈이나 공()소유로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라는 것이다.

경에는 자족이 있다.

먹을거 입을거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데,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더 나아가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이 통하는 것은 행복이 철저하게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정도면 행복할거야라고 부러워 하지만, 불행하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

저런 사람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의구심을 표하지만, 행복하다고 간증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보면 행복은 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말 그런가?

 

그것을 믿음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합리화이다.

가질 수 있지만 포기하는 것가질 수 없으니 포기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청빈과 가난이 진정한 행복이기에 부요를 준다해도 필요없다고 거절한다면 모를까,

어짜피 가질 수 없으니 거기엔 행복이 없다고 자기 최면을 거는거라면, 그건 거짓이다.

기독교도 이것을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기독교 진리는 행복을 말하기 이전에 인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참된 행복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놀이동산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에 비유할 수 있겠다.

어린아이가 처음보는 신기한 세상에 빠져서 놀다보니 그만 부모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아이가 신기한 세상에서 행복할까?

미아보호소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직원이 달래느라 아이스크림도 주고 장난감도 준다.

잠시 자기가 미아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장난감에 빠져들지만, 곧 부모 생각이 난다.

세상 무엇을 가져다준들 아이가 행복할까?

아이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부모를 다시 만나는 것이다.

 

모든 인생은 행복하지 않기에 행복을 찾는다. 행복하면 행복을 찾을 이유가 없다.

왜 행복하지 않을까?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아버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존재의 근원, 생명의 주관자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미아보호소에서 부와 권세를 거머쥐고 떵떵거리며 잠시 행복감에 취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행복한건 아니다.

이내 곧 허무하게 사라지고 영원한 저주와 고통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유가 없는 가난한 자만 불행한게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진 부자도 불행하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 상황따라 달라지지 않는 근본적인 행복은 존재에 있다.

주관적인 행복감을 느껴서 행복한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의 존재 자체가 행복이어야 한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부모를 만나는 것,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행복한 선언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있다.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하나님께서 행복자라고 인정한 사람들, 그는 이스라엘이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가 무엇인가? 여호와의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구원은 영원한 저주와 형벌인 불행에서 생명과 행복으로 옮겨진 것을 말한다.

인생이 무엇을 소유했든지 불행하고 죽음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시한부 인생에게 돈이나 권력, 쾌락... 무엇이 소망일 수 있을까?

시한부 인생은 생명을 하루 연장하는데 억만금이 든다해도 기꺼이 감당할 것이다.

살길이 있다면 권력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생명은 절실하다.

어짜피 죽을 정해진 기일을 사는 육체의 생명을 위해서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데,

영원한 생명이라면 무엇이 그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을까?

그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를 얻었다면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갖지 못한들 아쉽고 불행하다 하겠는가?

 

오늘 우리에게 이런 행복이 있는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그 기쁨과 감격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구원과 생명의 가치를 세상 무엇보다 크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가?

그런 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계실 것이다.

우리의 감정에는 역치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되면 무감각해진다.

그러기엔 현실도 녹녹치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감사와 감격으로 살기에는 삭막하고 역경과 고통이 있다.

물론 우리는 돈이나 권력이나 쾌락을 누리지 못한다해서 불행하다 생각진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결핍과 부족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때로 고통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구원의 감격에 감사하기 보다는 당장 눈 앞의 현실에 무너지기도 한다.

언젠가 눈물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복락을 누릴거라는 것을 믿지만,

우선 당장에 다가오는 염려 근심 걱정의 고통에는 절망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어서겠는가? 믿음이 있으면 초연할 수 있을까?

슬픔이나 낙심을 불신앙과 죄악으로 여기는 것을 영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깊은 슬픔과 절망을 거쳐야 비로소 소망과 기쁨을 바라볼 수 있다.

신앙도 슬픔과 절망에 빠질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진 않는다. 그것을 넘어서 소망한다.

 

감정이나 느낌이나 체험은 우리 일상뿐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중요하다. 그리고 강력하다.

그러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그런 느낌을 말하는 것일까?

그건 우리의 인지를 왜곡하고 감정을 속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라고 할 때, 행복감을 느끼고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일까?

우리는 행복감을 느낄 수 없을만큼 열악한 환경과 형편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힘에 부칠만큼 고난과 근심 걱정 불안에 잠 못 이루기도 한다. 그는 불행한 사람일까?

행복은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형통한 조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나의 존재에서 나온다. 곧 하나님의 자녀됨이 행복이다.

그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삼기 위해 행하실 일을 알고 믿기에,

그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 가시기에 그 품안에서 행복한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시고 항해하는 배라 할지라도 풍랑은 만난다.

풍랑을 만나면 두렵고 고통스럽다. 그럴 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간구한다.

풍랑이 없어서가 행복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아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행복한거다.

예전에 괜찮아 내 인생, 하나님이 있잖아라는 구절을 코팅해 드렸는데,

우리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뭘 가져서가 아니고, 언젠가 괜찮아 질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한거다.

비록 고난 가운데 살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자기 최면이 아니라... 합리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이다.

 

여기저기에서 행복을 준다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참된 행복은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줄 믿는다.

비록 삶이 고되고 힘들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간다해도

분명한 정체성,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주님의 말씀 붙들고,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그 품안에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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