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7(주)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행 5:12-16) | 이기형 목사 | 2023-08-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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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5:12-16절 개역개정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행 5:12-16)
초대교회 부흥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자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표적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신비하고 초월적인 기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음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고 사이비 적그리스도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참된 표적이란 무엇일까? 표적은 헬라어 ‘세메이온’인데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특징(sign)이나 표시(mark) 증거(token)를 의미하며 더 나아가 다가올 사건을 알리는 '징조'(foretoken) 혹은 '전조'(omen)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 사건 자체에 놀라움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표적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거 아니라 뭔가를 보여주는 증거나 징조라는 것이다.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단지 현상만을 바라본다면 헛된 것이다. 마가복음 16:20과 사도행전 14:3 말씀을 보고 표적의 목적은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다. 말씀은 또한 예수의 주되심을 증언한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오병이어의 표적은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저 떡을 먹는 것으로 만족했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떠나갔다. 기적을 경험하고서도 참된 가치 예수를 발견하지 못하면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표적이 있는가? 우리가 기적적인 사건은 일으킬 수 없어도, 우리에게 분명한 싸인이나 마크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드러내야할 표적은 기적이 아니라 ‘여기가 교회라는, 교회는 하늘가족이라는’ 싸인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그 삶으로 선명하게 보여주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그러한 교회에 나타나는 일들은 무엇인지 본문에는 3가지로 나타나 있다. 1. (내부적으로) 마음을 같이하여 모였다.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자 믿는 사람들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무슨 대단한 난리 법석이 일어난게 아니라,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고 증언한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는 것이라고 본문은 보여준다. 그게 무슨 표적이고 기사인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오늘날 인주의 이기주의 세상에서 하나됨은 가능할까? 우리나라는 한민족, 한겨레라지만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나뉘고, 진보와 보수로 첨예한 갈등이 있지 않나? 부자와 가난한 자, 진보와 보수, 인종과 종교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기적 중에 기적인데, 이것이 복음이 가져온 기적 아닌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우리가 하나되어야 하는 근거는 차고도 넘친다. 바울은 엡4:4-6에서 7가지 근거를 말하고 있다. 참된 공동체는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다.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당신의 자녀를 위한 중보기도가 요한복음 17장에 있다. 그 간구가 무엇인가? 요 17:11,21,22,23에 보시면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이다. 빌립보교회에 전하는 바울의 간곡한 당부의 말씀이 있다. 빌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4가지 강조)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렇게 마음을 같이하여 참된 예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하늘가족교회 되시기를 축원한다.
유감스럽게도 여기 말씀에는 그 나머지 사람들이 나온다.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불신자인지 이탈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들은 믿는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믿는 사람들과는 상종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한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보니 갈등과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싫은 사람은 상종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편하고 지혜로운 방법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갈망은 상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하나됨이 아닌가? 구원은 개인적으로 받지만, 구원 이후 하나님의 나라는 공동체이다. 하나님 나라를 산다는 것은 얼굴을 맞대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고 공동체가 낯설고 어색하다면 천국에서의 삶이 걱정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되어가는 나라이지 뜬금없는게 아니다. 그 나라에 나중 죽어서가 아니라 지금부터 함께 하시기를, 교회에서 그 나라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 하늘가족교회가 마음을 같이하는 참된 예수 공동체 되기를 축복한다.
2. (외부적으로) 백성들의 칭찬을 받고 남녀가 더해졌다.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교회는 존재감이 없이 그저 자기들까지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런 집단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 부분은 오늘날 너무 아쉬운 점이 아닌가? 세상에서 갈등과 분열, 다툼과 치열한 경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저들은 한 마음을 품고 사랑하며 살아가더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기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흉내낼 수도 없는 일들을 저들은 살아내고 있으니 칭송하는 것이다. 교회가 보여주는 하나됨은 자기들의 잉여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는 유무상통 공동체였다. 자기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형제를 위해 섬김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백성들은 칭송할 뿐 아니라 믿고 주께로 나아오게 되었다.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호기심이 있는 것이다. 궁금증이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저기는 뭐가 있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바뀌는 것일까? 돈으로도 권세로도 누릴 수 없는 저 평강과 기쁨의 비결이 무엇이란 말인가? 직접 그 현장에 찾아오는 것이다. 죽인다고 핍박을 하고 박해를 해도, 카타콤 지하 무덤이라해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던가? 그렇게 백성들이 찾아오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3. 다 나음을 얻었다. 표적과 기사가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15-16절을 보면 다 나음을 얻었다. 모든 사람들은 깨지고 망가진 세상에서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원래 세상살이가 다 그런거라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정말 어쩔 수 없나? 아니지 않는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신하신 분이 계시잖는가? 우리 허물과 우리 죄악을 대신하신 분이 계신다. 본문에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그 인근에서도 그에게 나온 사람들은 다 나음을 입었다. 베드로나 바울이 대단한게 아니라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그 시대에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은총이 아닌가? 지금 우리 가운데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고치셨다. 그렇다면 그 말씀이 나를, 우리를, 우리 시대를 고쳐주실줄 믿는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우리 안에 그런 치유와 회복, 소생케 되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한다. 한주간 살면서 이모저모 쌓인 염려와 근심, 상처와 고통..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반드시 기쁨과 감사, 소망과 평강으로 바꾸어 가셔야 한다.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꼭 붙드시고, 치유와 회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우리 하늘가족교회가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 초자연적인 기적도 필요하지만, 표적은 그것을 넘어 뭔가를 보여주는 싸인이고 마크이다. 교회는 하늘가족이라는 표적이 싸인이 우리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교회에 나타나는 3가지 일들을 나누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좋겠다. 먼저, 내부적으로는 마음을 같이하여 모였다.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에 기적이 아닌가?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 건 기적이 아니라 마술이고, 사람이 변하는 게 기적이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로 살던 사람이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으로 변한게 기적이다. 우리 교회에 일어난 기적은 여러분 각자가 변했다는 것이다. 이 교회에서 복음으로 내 삶이 변했다는 간증이야말로 놀라운 기적이요 표적이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칭송하고 사람들이 자기 발로 찾아와 더해가는 역사가 일어난다. 소문난 맛집도 찾아다니는데, 참된 평강과 기쁨을 왜 마다하겠는가? 지하 묘지 카타콤이라도 찾아가지 않던가? 그렇게 칭송받는 교회, 사람들이 찾아오는 그런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자. 표적과 기사가 가져온 결과는 치유이다. 누구나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우리 주님이 그 질고와 죄악을 대신 감당해 주셨다. 그래서 누구라도 그 앞에 나아오면 나음을 입는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을 누린 여러분들이 증거하고 간증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짜피 인생은 고통이라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이에게, 아니라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고쳐주신다고, 내가 그 증인이라고, 우리 하늘가족교회가 치유의 현장이라고 그렇게 선포하시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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