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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6(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눅 7:24-27) 이기형 목사 20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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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7:24-27절 개역개정

24.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일예배에 이찬수목사님(분당우리교회 담임) 설교하셔서 수요예배 설교를 올립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7:24-27)

 

지난 주말 금토주일 캘거리 날씨가 32도를 넘나들 때, 더욱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집회가 있었다.

캘거리교역자협의회가 주관한 이찬수목사 초청 교민집회.

예전에 없었던 전대미문의 집회였다.

예배당에 들어가려면 예배 30분 전에는 와야 할 만큼 성도들이 은혜를 사모하였다.

시간마다 얼마나 풍성한 은혜가 쏟아졌는지, 말씀을 들은 성도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를 위해 준비된 말씀이었다고 간증을 쏟아 놓았다.

강사 목사님을 만나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지난 주일 오전에 우리교회에서 설교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는 분들도 몇 분 오셨다.

그들은 한결같이 온라인으로 말씀 잘 듣고 있다고, 그 말씀이 자기를 살게 했다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1990년 신대원에서 같이 공부할 때는 그런 분이 아니었는데,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찬수목사님은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되셨다.

지난 2014,15년 시사저널이 선정한 차세대리더 1위의 영향력이 그것을 증명하고, 세계 각지에서 그의 설교를 듣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니 정말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목회자임에 틀림없다.

그럴 수 밖에, 가까이 교제해보니 목사님은 선포한 말씀을 그의 삶으로 증명해내고 있었다.

저에게도 많은 도전과 은혜의 시간이 되었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 세례 요

구약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 400년동안 중간기라는 침묵과 암흑의 시기가 있었다.

침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말씀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절망 가운데 방황하고 있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선지자의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세례 요한이었다.

그가 외쳤던 곳은 도시가 아니라 빈들 광야지만,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요한은 세례 받으러 나오는 자들의 죄를 무섭게 책망했다.

3: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백성들은 이 세례 요한이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요한은 굳이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사람들이 물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엘리야냐? 요한은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러면 정체가 뭐냐고 묻자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주의 길을 예비케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소리, 소리는 인격이 없다. 그저 정보만 줄 뿐이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는데,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께서 요한에 대해 증거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물으신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광야는 일상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도 아니고, 소풍가는 명소도 아니다.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고서야 광야에 나갈리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무리들이 광야에 나갔는데, 그들에게 무엇을 보려고 나갔는지 물으신 것이다.

 

1.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갈대는 유대 광야에서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흔하고 하잘 것 없는 식물이다.

이렇게 질문하심은 반어법. 그럴리 없지 않느냐는 의미이다.

갈대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연약하고 줏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가 만나러 간 세례 요한은 결코 나약하거나 춧대 없이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례 요한은 당시 기득권자였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 꾸짖었으며 회개를 외쳤을 뿐 아니라(3 7-12) 죽음을 무릅쓰고 헤롯에게 직언할만큼 강한 신념의 사람이었다(14:4).

 

2.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이란 곱고 감촉이 부드러운 값비싼 옷을 가리킨다.

다시 부연하기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는 자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광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왕궁에서 권력을 누리면서 호화롭게 살고 있었다.

무리들도 그런 사람을 만나러 광야에 나간게 아니었다.

광야에는 있었던 사람 세례 요한은 엘리야처럼 거친 가죽옷을 입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3. 선지자냐?

예수님은 이제 반어적인 표현이 아니라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신다.

그럼 선지자를 보려고 나갔느냐? 그렇다, 바로 선지자다.

무리들이 광야에 나간 것은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헤롯이 요한을 옥에 가둬 두고서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예수님의 질문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요한이 회개를 선포할 때 사람들은 세리들과 군병들도 회개하면서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것이다. 말씀을 듣고 물어야 한다. 말씀을 자기에게 맞추는게 아니라 내가 말씀에 맞추는 것이다.

요한의 지적이 아프고, 그렇게 돌이켜 살아가는게 쉽지 않지만 사람들은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그의 말에 순종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을 선지자보다 훌륭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기록된 바, 예수께서는 3:1에 예언된 말씀을 세례 요한에게 적용시키신다.

예수님은 말라기 4:5 예언된 선지자 엘리야가 세레 요한임을 밝혀 주셨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했지만 세례 요한은 직접 그 메시아를 보고 그를 증거하며 또한 회개의 세례를 통해 메시아의 첩경을 평탄케 한 위대한 선구자였다.

그가 훌륭한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았다는 점이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는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다만 그를 증언하는 소리라고 소개하였다.

예수께서 나타나시자 그가 메시야라고 소개하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고 겸손히 말하면서 구속 역사의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졌다.

 

마무리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고 물으셨는데,

지금 우리에게도 물으신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제일장로교회당에 나갔더냐?”

오랜만에 교민들 다 모인다니 연약하고 줏대없는 사람들 만나러 나갔더냐?

온라인에서 설교 잘한다는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려고 나갔더냐?”

아닐거다. 우린 그렇게 사람 만나러 나간거 아니다.

이찬수목사냐?그렇다. 말씀 집회에 다른 목사가 아니라 이찬수목사가 오신다길래 그렇게 모였다.

주님도 이찬수 목사님을 인정하신다.

옳다. 어느 목사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보라, 내가 이찬수 목사를 보내노니 그는 내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라

세례요한이 훌륭한 것은 자기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찬수 목사가 훌륭한 것도 자기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만할 법도 한데, 교만해도 충분히 자격이 될텐데, ?

그 역시 자기는 소리일 뿐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찬수 목사가 떠나서 서운하고 공허한가?

그는 자기를 지우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모든게 사라지는가?

아니다. 그가 전한 말씀은 남는다. 그는 처음부터 소리였기에 소리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려고 교회에 오시는가? 무엇 때문에 예배에 나오시는가?

갈대처럼 흔들리는 연약한 인생이라도 붙들려고 오시는가?

아니면 부드럽고 화려한 옷을 입은 권력자 부자 유력자와 인맥을 만들기 위해 오시는가?

그럴리 없지 않는가?

목사의 설교를 들으려고? 맞다. 하나님께서 세워서 당신의 음성을 전달하게 하는 목사를 만나려고.

그런데 목사의 설교가 아무리 은혜로운들 무미건조한들, 그건 소리일 뿐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에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그것으로 시험들 일이 아니다.

얼마나 들려졌든지, 다 들리지 않고 희미하게 한 조각이라도 붙드셨다면 그것으로 살아내시기를.

1990년 시작점은 같았지만 30여년 후에 이찬수목사와 이기형목사가 천지차이이듯이

그렇게 한 번의 설교에서 하나라도 불들고 살아내려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쇠하여가는게 아니라 깊어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은혜의 집회 후에 새롭게 시작하는,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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