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1(주) 주님을 만나셨습니까?(요 3:1-5) | 이기형 목사 | 2023-06-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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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3:1-5절 개역개정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주님을 만나셨습니까?(요 3:1-5) 탈종교화 시대 세계 인구의 84%가 종교를 믿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갤럽 조사에 의하면 종교인구는 2004년 54% 이후 계속 줄어들어서 2021년엔 40%로 나타났다. 특히 종교인 비율이 가장 낮은 연령대는 20대 10대이다. 그 중에 기독교를 20% 잡을 수 있는데, 그 중에 가나안 교인이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지난 2019년 코로나 전의 조사에 의하면 23%라고 한다. 주변에 교회에 안나가는 그리스도인을 쉽게 볼 수 있다. 교회에 출석하는 그리스도인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성령님과 동행하고 있는 성도들은 얼마나 될까?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불신자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목사의 자녀로 집사의 자녀로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인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교회 문화에 익숙하고 부모따라 교회에 다녔다. 그래서 신앙이 있는줄 알았다. 그런데 문득 현타가 오고 뭘 믿는지조차 모르기에 회의와 방황, 그리고 불신으로 이어진다. 지난 연말에 발간된 한국 교회 트렌드 2023이라는 책은 한국 교회가 주목해야 할 2023년의 10가지 트렌드 키워드를 보여주는데 첫 번째 키워드가 플로팅 크리스천의 등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머무는 이유는 진리와 교회에 뿌리 내려서가 아니라 떠날 이유가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람불고 물결치면 여지없이 떠밀려 다닌다. 교회를 떠돌고, 그러다가 종교를 떠돈다. 언제 어느 연령대에 교회와 믿음을 떠날까? 지난 2021년 21세기교회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기독청년들이 유치원 이전에 교회를 다닌 비율은 65%로 비교적 높았지만 고등학교 졸업후 교회 출석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나마도 현재 교회 출석 청년 3명 중 1명 이상 ‘10년 후 교회 안 나갈 것 같다!’고 응답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인이 되는 20대에 접어들면서, 대학에 진학하면서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대학을 진학하고 부모를 떠나면서 교회도 졸업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 청소년들은 얼마나 믿음을 가지는가? 청소년 사역자들이 말하는 우리나라 청소년 복음화율은 3.8%라고 한다. 선교학에서 보통 복음화율이 3%대 이하면 미전도 종족이라고 하는데, 미전도종족이 멀리 있지 않다. 북미원주민들이 미전도 종족이라 하지만 그들 뿐 아니라 우리 자식들 MZ세대 역시 미전도종족이다. 그 3.8%마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신앙을 졸업하는 이들이 절반이다. 교회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물결따라 요동하며 조용히 떠나는 까닭이 무엇일까? 청소년 자녀들 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프로팅 크리스챤으로 떠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만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했는가? 성령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여기에 분명한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경에도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등장한다. 1. 성공한 사람 니고데모 본문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요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요한의 증언에 의하면 니고데모는 1) 바리새인이었다. 선민 중에서도 구별된 이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인 셈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길거리에서도 기도하며 십일조에 철저한 모범적인 유대인이었다. 종교적으로 지도급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2) 유대인의 지도자였다. 지도자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을 가리키는데, 고위 사제들과 율법학자, 원로들 71명으로 구성된 그 당시 유대인의 최고 의결 기관이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종교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공회 회원으로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다. 3) 율법 교사였다. 그는 조상들의 율법에 정통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율법 교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율법 교사는 종교법과 의식의 문제들에 대해 독자적임 판결을 내릴 수 있었고 랍비라는 칭호를 받았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종교 지도자요, 공회원으로 정치지도자요, 율법교사로 사법지도자였다. 이만하면 출세한 사람, 성공한 인생 아닌가? 참으로 부러운 사람이다. 더 이상 뭐가 부러울게 있겠는가?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닌가? 2.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뭐가 아쉬어서 예수를 찾았을까? 무슨 목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첫인사를 통해 그 이유를 엿볼 수는 있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받은 선생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표적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사람이 세운 랍비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랍비라고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랍비라고 인정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거듭 강조하는 것을 보면 그가 예수를 찾은 이유를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율법에 정통한 이들은 하나님과 메시야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보냄받은 예수를 통해 더욱 분명히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알진 못했다. 신앙에 대한 전통과 율법은 있었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긴 했지만, 그 나라에 살진 않았다. 니고데모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건 그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사법적으로 성공한 인생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젊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가 이룬 성공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모르는 것을 가지고 예수를 찾아왔다. 하나님을 아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만나고 싶은 그 열망,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어떤 나라인지, 그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냄받은 참 선생으로부터 알고 싶었던 것이다. 니고데모는 프란시스 쉐퍼의 표현대로 정직한 질문자였다. 3. 예수님께서 만나주신 니고데모 지도급 인사 니고데모의 칭찬을 들은 예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뜬금없는 동문서답 아닌가? 아니 누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지’ 물어봤나?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가 왜 찾아왔는지를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는 사람들이 왜 당신을 찾는지 그 중심을 보시기에 아신다. 떡이나 얻어 먹으려고 자기를 찾는 대중들의 속마음을 아셨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예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그 속셈도 예수님께서 모르실리 없다. 그런데 진실하게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의 그 간절한 갈망도 예수님은 아신다. 니고데모가 직접 묻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의 마음속 의문을 시원하게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를 몰아내고 시오니즘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 참으로 복된 소식이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고 푸념하고 절망하는 인생들에게 소망은 무엇일까? 죽음이 두려운 인생들에게 그 죽음을 이겨내는 생명은 무엇일까? 돈으로, 권력과 명예로 죽음을 이길 수 있다면 천하를 호령한 사람들이 죽을리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거듭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질문이 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내 의지와 능력대로 된 것이 아니잖는가? 세상에 한번 태어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니고데모는 정직한 질문자였다. 예수님께서는 친절하게 ‘물과 성령으로’ 라고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육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마치 바람이 부는 것처럼 신비한 영역이 있다. 그러면 신비의 영역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가?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라 돌아가듯이 우리는 그저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예수님이 광야의 놋뱀 이야기를 꺼내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 심판하셨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모세가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고 그것을 보는 자마다 살리라 하셨다. 놋뱀에 무슨 신비한 효능이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그 믿음이 살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놋뱀을 통해 이스라엘의 믿음을 보시고 살게 하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신다. 장차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고 놋뱀을 본 자들은 살았듯이, 이것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니고데모가 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을까?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을 변호하고,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다. 이로 보건대 우리는 니고데모가 예수의 제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무리 이제 앞서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할 시간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했는가? 성령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니고데모처럼 아무리 세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해도, 거듭나지 못하면 허무한 인생일 뿐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 정직하게 질문한다.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정직한 질문이 있으면 좋겠다. 주님은 그 질문에 답을 주신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독생자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답을 들었다면 남은 것은 결단이 아닌가? 살 길을 얻었고 생명의 길을 찾았다면 선택해야 하지 않는가? 니고데모는 선택했다. 여러분들도 이 귀한 선택이 있기를, 그렇게 선택한대로 살기를 바란다. 흔들리는 플로팅 크리스챤 부평초 인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고 그의 몸된 하늘가족교회에 닻을 내리는 사랑하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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