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4(주) 아버지 하나님의 모성(사 49:13-15) | 이기형 목사 | 2023-05-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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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49:13-15절 개역개정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2023년 5월 14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30514(주) 아버지 하나님의 모성(사 49:13-15) Mother's Day
햇볕과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순간도 살 수 없지만 당연하게 여기며 감사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감사를 잃은 대상이 어머니가 아닌가 싶다.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가족들이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잊고 살았다면 잃은 것과 마찬가지임을 깨우쳐 준다. 엄마는 자식들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사는데 자식들은 바쁘다는 핑계와 무관심으로 엄마를 투명인간처럼 잊고 살아간다. 오늘 Mother's Day에는 그 엄마를 찾고 기억하고 감사하는 참으로 행복한 날이 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엄마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귀하게 깨달을 수 있는 날이 되면 좋겠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부터 히스기야 시대까지 활동했다.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앗수르에게 망했고, 유다에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며, 결국 바벨론에 망하고 포로로 끌려갈 것을 선포한다.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은 충격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의 집이라는 시온 성전이 무너지고 불탈 일이 있겠는가? 아버지가 두 눈 뜨고 지켜본다면 어떻게 자식이 이웃집 불량배에게 맞아서 죽을 지경이 되겠는가? 이것은 분명 여호와께서 죄 지은 유다를 버리셨고 잊어버리셨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잊어 버리시고 영영 사라지게 하실 것인가? 그것이 본문 14절의 탄식이다. (사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그런데 놀라운 선포가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데 마치 어미가 자식을 잊지 않는 것처럼, 그럴리 없지만 혹시 그들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백성을 잊지 않겠다고 하신다.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는 여기 이사야서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모성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에, 아버지에게서 모성을 찾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 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주셨다. 여지껏 가부장적 사회 흐름속에 하나님의 부성이 강조되었다면, 우리는 성경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본문 안에서도 3가지로 하나님의 모성을 찾아볼 수 있다. 1. 위로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위로라는 히브리 원어에는 '후회하다'라는 의미로 약 40회, '위로하다'라는 의미로 약 60회 이상 사용되었다. 후회는 대부분 하나님의 후회를 의미하는데, 하나님이 후회하실 리가 없다. 그 의미는 작정한 심판과 재앙을 돌이키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위로라는 의미와 통하는 것이다. 많은 위로의 모습이 나오지만, 이사야서에서 그려주는 위로는 66장11-13절에서 찾을 수 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어린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넉넉하게 젖을 빠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위로라는 주제의 그림을 이처럼 따뜻하고 평온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어릴적 아무 근심 걱정없이 엄마 품에 안기어 모든 것을 풍성하게 공급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품으시고 우리를 그렇게 사랑으로 위로해 주신다. 2. 긍휼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이 단어는 히브리어 어원은 어머니 자궁을 뜻한다. 긍휼은 누군가를 향해 느끼는 동정심, 불쌍한 마음 정도를 넘어 어머니가 자식을 몸 안에 품고 갖는 무한한 측은지심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성애라 부른다. 영어로 긍휼은 compassion인데 ‘함께 고통받다’라는 의미가 된다. 헬라어 의미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느낀다는 뜻이다. 우리는 자신의 아픔에 집착하다보면 아무도 나를 몰라줄거라 탄식하지만, 함께 고통당하는 분이 있으니 육신의 부모님이고 또한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너무 지치고 힘들게 지내는 분이 계시는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품에서 깊은 사랑과 치유를 누리시기를 축복한다. 3. 여인의 젖먹는 자식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인은 결코 그 젖먹이는 자식을 잊을 수 없다.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정죄해도, 엄마는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날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 심성이 황폐화되면서 정인이 사건처럼 모성을 잃어버린 어미와 계모들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한하고 죄많은 사람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잊지 않을거라 하신다. 우리 중에도 혹시 육신의 어머니나 아버지로부터 학대와 방치를 받고 상처를 입은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부모가 나를 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결코 포기하거나 방관하지 않으신다. (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책임을 이사야 46장 3-4절을 보면 ‘배’ ‘태어남’ ‘안김’ ‘태’ ‘업힌’과 같은 단어들이 모성의 언어이다. 하나님은 태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품어줄 것이고 안아줄 것이고 구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어떠하든지간에 우리는 더욱 큰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살아간다. 때로 어려운 일도 당하고 역경 고난이 가로막지만, 주님 품이라는 큰 그림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끝까지 업어주시고 품어주시고 구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시기를 바란다. 마무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시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부성과 모성을 각자에게 나누어 주셨는데, 엄마의 젖가슴과 자궁은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을 보여준다. 어린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넉넉하게 젖을 빠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겠다고 하셨다. 산모가 자궁안에 있는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듯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긍휼을 베푸시겠다 하셨다. 비록 여인이 그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업어 주시고 품어 주시고 구하여 내시겠다 약속하신다. 오늘의 주인공이신 사랑하시는 어머님들께 당부한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와 긍휼을 담아 주셨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보여주시고 나타내시는 따뜻한 품이 되어주시기를 축복한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머니’하면 사랑이 아니라 학대와 고통 아픔을 떠올리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하나님 사랑의 그림자이기에 불완전할 수 있고 원치않게 왜곡될 수 있다. 또한 이제는 저처럼 어머님이 안계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그 사랑의 원형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품에서 젖을 넉넉히 빠는 아기처럼 위로를 누리시고, 자궁안에 태아처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긍휼로 회복하시며, 나와 함께 고통당하시는 그 하나님으로 인해 새 힘을 얻으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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