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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3(주) 낙심을 넘어서 영광으로(고후 4:1-6) 이기형 목사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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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4:1-6절 개역개정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3년 4월 16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30423(주일예배) 낙심을 넘어서 영광으로(고후 4:1-6) 

 

낙심을 넘어서 영광으로(고후 4:1-6)

 

저는 요즘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이 한국교회이고 캘거리의 교회들이다.

쇠락해가는 정황이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 할 수 있는게 없어 낙심이 된다.

지난주 개척 8주년을 지나는 소회는 물론 감사이지만, 낙심과 좌절도 있다.

8년을 그렇게 몸무림쳤는데도 아직도 출발선에 머물러 있는 무능이 절망스러운 것이다.

캘거리의 어느 교회는 한 주일에 3-4 가정이 제 발로 찾아온다는데,

우리같이 작은 교회들은 일년 내내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다.

기대와 소망의 미래가 아니라 꿈꿀 수 없는 미래.

우리 교회를 봐도 그렇고, 한국 교회를 봐도 낙심 뿐이다.

 

여러분은 낙심되거나 좌절할 때가 없었는가?

대부분은 내 뜻대로 안될 때, 하는 일이 막힐 때, 해도해도 나아지지 않을 때.

그러니까 어떤 결과를 보여줄 수 없을 때 헛수고라고 생각하고 실패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느냐로 생각한다.

그다지 소득이 없는데, 수고하고 고생한 것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여길 수 있을까?

그건, 개고생이고 무모한 고집일 뿐이라 생각한다.

 

본문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편지이다.

바울은 워낙 대사도인데, 그에게도 낙심이 있었을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읽은 고린도후서 4에서만 1, 8, 16절에서 3이나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바울 역시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표현일 것이다.

사도 바울이 낙심할만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고린도후서를 쓰게 된 배경은 유대 거짓 교사들이 고린도교회에 들어와서 바울은 가짜 사도라고 그의 사도권을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 가르쳤는데, 오히려 자기의 정체성을 의심받는다면 힘빠지고 낙심이 될 법도 하겠다.

그러할 때 바울은 어떻게 했을까? 낙심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바울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1. 낙심하지 않았다.

고후 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이 직분을 받고 긍휼하심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린도 성도들이 의심한다해도 자기를 사도로 부르신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사도라는 직분을 받았기에 람들이 뭐라한들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사람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는다.

다윗이 짱돌 하나 갖고도 골리앗 앞에 맞짱 뜰 수 있었던 것은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하나님만 바라보면 낙심하지 않고 당당할텐데, 우리는 한눈으로 하나님을 보면서도 다른 한 눈으로는 사람들을 본다.

물론 하나님의 인정이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살려면 사람들의 인정도 중요하지 않는가.

마음의 동기도 중요하지만 그건 보이지 않기에 결국 드러나는 결과가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믿으면서도, 낙심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만 그러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2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내 비즈니스가 아니기에, 잘된다고 뻐기고 교만할 것도 없고, 안된다고 주눅들고 낙심할 것도 없다.

내 인생의 주인도 당연히 하나님이시기에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내가 노력해서 내 집념으로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는데,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나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나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고난의 좁은 길을 걷게 하신다.

그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두번째 진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은혜를 내려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잘되는 것, 형통으로만 생각하기에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렸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하도록 상황도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상황보다도 우리에게 더 관심이 있으시기에 우리를 바꾸신다.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부어 주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감당하게 하신다.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그것을 바르고 온전하게 받고 누릴수 있기를 축복.

 

2. 타협하지 않았다.

바울은 숨은 부끄러움이나 속임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았다고 양심고백한다.

사람들은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고들 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강하게 버티다가 꺾어지는 것이기에 갈대처럼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둘을 얻으려면 하나는 내어주는 타협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도 성장하려면 일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정말 치열하게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남들이 모르면 부끄러운 일잠깐 눈 감을 수 있어야 하고,

하얀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때로는 과장하거나 속일 수 있어야 하고,

목사도 하나님의 말씀에 양념을 쳐서 사람들의 기대와 욕구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은 이런 세상의 논리에 동의가 되는가? 저는 솔깃하게 들린다.

본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본질을 추구하면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예수의 십자가와 고난을 말하면 사람들은 떠나간다.

조직 관리를 위해서 경영학도 도입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위해서 엔터테인먼트도 빌려오고.

사람들의 정서적인 충족을 위해서 심리학도 배워야 할거 같다.

 

그게 목사의 유혹 뿐이겠는가? 여러분들에게는 유혹이 없는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낙심되기도 하고 때로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믿음으로 온전하게 순전하게 살아가는데 형통하는게 아니라 고난과 핍박이 올 때도 있다.

선을 행하고 믿음으로 결정하면, 악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손해가 날 때도 있다.

잘 되는게 성공이고, 형통이 하나님의 복이고, 풍요가 옳은 것이라면...

이 외롭고 힘든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목회자 3명 중 2(67%)안락함이라 응답했다.

쉽고 편하게, 그것이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가?

그래서 십자가의 길도 넓고 평탄하게, 교회도 편안하고 안락하게 타협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으로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내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3.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발하였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는 고난이지만 결국은 영광에 이른다.

우리는 영광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 외에는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자가의 고난만 보고 그 후에 있는 영광까지 보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근시안인 이유가 있다. 3절에보면 복음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이다.

누가 가린 것인가? 4절에 이 세상의 신, 현대인의 성경에는 사탄이라고 말한다.

사탄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를 볼 수 없으니, 정말 귀하고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한다.

그저 우선 당장 현실적인 것들을 추구하며 세상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를 주인으로 높이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신 것을 선포한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신가? 날마다 우리의 고백, 주님이라 부르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 어둠을 몰아내신 창조의 빛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 그 빛이 있기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타협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방으로 포위를 당해도 자유할 수 있고, 답답한 일을 겪어도 낙심하지 않으며(8)

세상이 박해와 고난으로 버린다해도 버려지지 않고, 업어치기를 당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9)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10)

 

마무리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타협하지도 않았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안락한 삶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이 온다해도, 숨은 부끄러움이나 속임이나 혼잡함으로 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진리로 살아내었던 것이다.

바울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가 주인되는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사탄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해서 영광스러운 복음을 가린 탓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 주셨기 때문에, 어둠 가운데 미혹되지 않고 복음으로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낙심하고 절망하며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세상속에서 살아가지만, 복음으로 인해 영광스러운 그 빛 가운데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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