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6(주일예배) 교회를 꿈꾼다(행 2:1-4) 교회설립 8주년 설교 | 이기형 목사 | 2023-04-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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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1-4절 개역개정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교회를 꿈꾼다(행 2:1-4) 오늘은 캘거리하늘가족교회 설립 8주년, 교회 생일이다. 이 교회를 태어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지난 8년간 우리의 힘으로 세워온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린다. 나아가 우리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교회, 나의 고민과 나의 사랑이라는 말처럼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고민이기도 할거 같다. 느끼는 사람도 못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어렴풋이라도 교회가 어렵다는데는 동의할 것이다. 우리같이 작은 교회는 더욱 어렵다. 약하고 작은 곳에서부터 무너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노병사 흥망성쇠는 인생뿐 아니라 역사와 종교의 반복이기도 하다. 한때 제국도 지금은 사라지거나 한때 주류 종교도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기도 한다. 그럼 기독교도 그렇게 되어갈까? 2023년 한국교회 트렌드라는 책에서는 한국 교인들의 키워드 열 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중에 첫 번째와 두 번째가 플로팅 크리스천, SBNR이다. 플로팅, 붕 떠 있는 그래서 언제든지 요동치면 떠내려 갈 수 있는 크리스챤들인데, 왜 그럴까?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는, 제도로서 종교를 거부하고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여기에서 소망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필요없고 종교가 쓸모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갈급해서 교회를 찾았는데 거기에서 영성을 찾아볼 수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부요와 권력은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교회마저 번영과 축복을 팔더라는 것이다. 힘을 숭배하고 권력을 추구하며 강자의 논리를 설파하더라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 하듯이 비판하고 분석하지만 우리 하늘가족교회는 어떤가? 우리가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인가? 재정인가? 프로그램인가? 건물인가? 아니면 예수와 복음과 성령의 임재인가? 우리가 회복하고 추구할 교회의 모습을 초대교회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1.성령의 임재가 있는 교회 교회는 성령의 임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되려면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영이 떠나면 시체가 되듯이, 교회에 성령이 떠나면 제아무리 안락한 건물과 화려한 예배가 있어도 시체와도 같다. 오늘 우리에게는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면서 하나님의 앞에, 그의 품에 들어간다는 믿음이 있는가? 더럽고 추악한 이 모습으로는 차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어, 예수 십자가 보혈로 피뿌림받아 정결하게 되어야 하겠기에, 오로지 그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만을 붙드는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기에 그렇게 절박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는가? 하나님의 교회에만 오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실거라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갈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만족이 될 수 없다. 아무런 준비도 소원도 없이 습관적으로 교회 문턱을 넘어오셨다면, 그 자체가 얼마나 주님께 고통인가? 오늘날 예배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어간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배당에는 편안하고 안락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앉아있기만 해도 은혜가 된다. 성도들은 예배자라기 보다는 시청자 구경꾼 방관자이 되었다. 최고급 음향과 시설로 갖춘 무대에서 정상급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찬양대 연주를 감상하고, 강대상에서 목사는 우리 시대의 교양과 행복을 제시한다. 잘 짜여진 프로그램은 웃기기도 하고, 때로 눈물을 짜내기도 한다. 그것을 은혜로 착각한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갈망하는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말씀 앞에 통회 자복하고 새로운 삶을 결단한 그 예배가 언제였는가? 아니 그런 추억이라도 있는가? 그게 언제든 오늘 이 예배가 그 예배 되시기를 축원한다. 2.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는 교회 성령이 임한 증거는 무엇인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 현상보다도 그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하나님의 큰 일이라고 11절에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하기도 하고 술취했다고 조롱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술취한게 아니라 요엘서 예언의 성취라고 하면서 예수를 전한다. 하나님께서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증언하였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못박아 죽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를 사망에서 풀어 살려 주셨다 제자들은 자기들은 이 예수 부활의 증인들이다. 베드로는 설교의 결론을 이렇게 말한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선포는 쉽지 않은 고백이었다. 예수가 퀴리오스 주인이라니, 당시 주님은 로마 황제 하나뿐이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 왕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 당시 왕은 로마 황제 뿐이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처형할 때 올무 씌운 것이 바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혐의였다. 그렇게 예수가 처형당하고서도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의 입술을 통해 선포하신 하나님의 큰 일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정말 예수가 주님이고 그리스도인가? 예수만 믿는 것과 예수도 믿는 것은 같을 수 없다. 믿어주는 사람과 믿는 사람은 같을 수 없다. 예수가 주가 아니라 번영과 형통과 권력과 힘이 교회의 주인이 될 때, 멸망의 가증한 맘몬이 거룩한 주님의 자리를 차지할 때 그게 종말이다. 마지막 그 날까지 예수만이 주와 그리스도 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3. 함께 더불어 사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통회 자복하고 회개하였다. 이들은 예수믿고 세례받았으며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힘썼다. 성령 충만 받은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어떻게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함께 있어 필요를 따라 나눌 수 있을까?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뒹구는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예수 공동체는 모여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자기들끼리 간증하며 즐거워하는 집단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혁명가로 이루어내지 못한 그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혁명은 재산을 다 나누지 않아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 그가 우리 형제라는 그 의식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이제 베드로와 요한이 보여주고 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성령의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간다. 들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인 걸인을 만나게 된다. 평생을 구걸하면서 남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로 살아가야 하는 저주받은 인생. 베드로 요한은 그 장애인 걸인을 주목하였다. 처음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쳤을 뿐이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의 귀에 들렸던 약자들의 신음소리, 예수의 눈에 밟혔던 가난한 자들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전 한닢 던져주고 자기만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일으켜 세우고 함께 성전에 들어간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제국을 건설하는 세상이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아픔을 대신하고 일으켜 세워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가?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 아닌가? ‘그건 이상적이지..’. 성령이 없으면 한낱 백일몽에 불과하지만, 성령께서 임하시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꾼다면 그건 우리시대 현실이 될수 있는거 아닌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바라보면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을 간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포기하시고 그 촛대를 옮기시려 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기대할게 없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서 떠나시려 하신다면, 그대로 방관하시겠는가? 얍복강의 야곱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지 가랑이라도 붙들고서 떠나려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지 않는가? 마무리 지금 한국 교회는 심폐소생술을 해야할 만큼 마지막 골든 타임을 지나고 있다. 일분 일초가 급박한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여유롭게 딴전 피우면서 세월만 허송하겠는가? 자기 교회는 괜찮다고 강 건너 남의 집 불구경 하듯이 그렇게 무관심하게 방관 하실건가? 다 썩었다고 갈아 엎어야 한다고 남의 일처럼 무책임하게 빈정대고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사람이 필요하다. 교회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아파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 하나님의 사람과 교회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하늘가족교회를 세우신 까닭이, 교회가 문 닫을 위기가 수차례 있었어도 오늘까지 8년을 실날같은 생명으로 지켜주신 이유가. 그런 교회 되라고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성령의 임재가 있는 교회,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는 교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교회 그렇게 주님께서 꿈꾸시고 기대하시는 그 교회를 반드시 이루어 내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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