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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2(주)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막 15:12-15) 이기형 목사 202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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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15:12-15절 개역개정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342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15:12-15)

 

우리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일주일에 한번씩은 부르는 이름, 본디오 빌라도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고 본디오 빌라도를 가해자로 지목한다.

그런데 라틴어 원문은 좀 의미가 다르다.

sub Pontio Pilato 라틴어 전치사 sub을 사람 이름 앞에 사용하면 그 사람 치세에, 그 사람 시절 정도 의미가 된다.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카톨릭이나 성공회의 신앙고백은 빌라도 통치 아래서, 빌라도 치하에서 그렇게 번역을 한다.

사실, 예수님의 처형에 가장 큰 책임을 묻는다면 대제사장들이거나 가룟 유다일 것이다.

빌라도는 수차례 예수님의 무죄 선언을 하고 구해주려고 애쓰다가 결국 저들의 원대로 해주었다.

 

1차 구명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했지만 그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다.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는 무죄를 선고한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18:38)

마태 마가에 의하면 빌라도는 예수가 대제사장들의 시기로 인해 잡혀온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15:10)

빌라도는 아내에게서 저옳은 사람에게 상관말라는 꿈 이야기도 들은터라(27:19) 예수를 놓아주려 하였다.

그 방법이 유월절 특사로 예수를 풀어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18:39).

그런데 무리들의 선택은 반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한 바라바였다(15:11).

 

2차 구명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였다(19:1).

군인들로 하여금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희롱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채찍질 당한 예수님을 끌고 나와 유대인들에게 보여주면서 또 말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고 찾지 못했지만, 너희들이 요구하니 죄 없는 사람을 이정도로 채찍질 했으면 된게 아닌가? 그런 뜻이었다(19:4)

그런데 무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지른다(19:6)

빌라도는 자기는 예수는 죄가 없으니 그리 못하겠다고, 너희들이 데려다가 그렇게 하라고 그들에게 미룬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다.

유대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한다고 하자, 빌라도는 더욱 두려워하였다.

 

3차 구명

빌라도는 어떻게든 예수를 놓으려고 힘을 썼다고 요한은 증언한다.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그러자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를 협박한다.

자기들에게는 가이사 외는 왕이 없는데, 자칭 왕이라 하는 반역자를 풀어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정치적으로 압박한다(19:15)

이런 상황을 보면, 예수는 변호인도 없었지만 재판장인 빌라도가 예수를 변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워낙 유대 지도자들이 강경하게 고집을 부리니까 결국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판결을 내린다

 

빌라도의 죄

그럼 빌라도는 죄가 없는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죽인 그 또한 희생자인가?

아니다, 그가 예수를 살리려고 구명 활동을 하였고, 자기는 무죄하다고 손을 씻었다해도 자기의 죄가 사해지거나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집행한 죄이다.

아무리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하고, 가룟 유다가 배반을 하였어도 그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기에 결코 예수를 죽일 수 없다.

빌라도에게는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기에, 산헤드린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빌라도가 여러차례 공언한 것처럼 그는 예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 석방하면 되는데, 왜 석방하지 못하고 채찍질을 하고 붙들고 있는가?

군중들의 소리 때문이다.

그러면 군중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를 처형하면 되는데, 왜 주저하고 예수를 변호하는가?

양심의 소리 때문이다.

빌라도는 고민에 빠져 갈등한다.

예수를 풀어주자니 백성들이 가만있지 않을거 같고, 예수를 죽이자니 양심이 괴로울거 같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일어나는 갈등이 아닌가?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가책없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아가는데, 우리 안에는 늘 갈등이 있다.

예수냐 세상이냐 빌라도의 고민은 우리 안에서도 늘 만날 수 있다.

 

고민 가운데 빌라도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빌라도에게 예수를 풀어주려는 마음보다 더 강한 것은 자기 권력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빌라도가 어디에서 무리들에게 굴복하는가?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종교적인 문제로 안되니까 정치적으로 몰고 간다.

자칭 왕이라는 반역자를 풀어준다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협박한다.

빌라도는 자기의 주장이 아니라 무리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다.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15:12)

언제부터 빌라도가 군중의 의견을 들었는가?

이것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사형을 언도한 까닭마가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15:15).

빌라도가 백성을 위하는 선한 정치인이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은 것 뿐이다.

빌라도는 최후의 보루였음에도 그렇게 죄와 타협한 것이다.

그리고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는지, 그는 손을 씻고 자기는 죄가 없다고 스스로 선언한다(27:24).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가능한가?

그렇게 한다고 죄가 없어지는가? 게 아니라고 사도신경이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그가 예수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자기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준다.

그러면서도 손만 씻으면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탁월하지 않은가?

예수를 위하는 척 하면서 내가 얻을 것은 다 얻어내는 그 기발한 방법을 우리도 배워서 반복한다.

우리가 지식으로는 모르는게 없지 않은가? 우리가 입술로는 못할게 없지 않는가?

그렇게 청산유수처럼 말은 잘하는데, 정작 작은 이익 앞에서는 고민하고 갈등한다.

얻을 것은 얻고 누릴 것은 누리고, 그리고나서 손만 씻으면 되는거 아닌가? 착각한다.

기독교는 너무 쉽다. 편리하다. 손만 씻으면 되니까..

정작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면서,

내가 한게 아니라고, 어쩔 수 없어서 그런거지 내 본심은 그게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아닌가?

그기 빌라도의 죄였고 오늘 우리의 죄이기도 하다.

 

마무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고 고백하면서, 우리는 모든 죄를 본디오 빌라도에게 뒤집어 씌울게 아니라, 본디 내 안에 있는 빌라도, 본디 오! 빌라도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빌라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도 내 삶에 내 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성령께서 책망하시고 양심의 가책이 있는데도,

내 자리를 지키려고, 내 이익을 지키려고 진리에 침묵하거나 예수를 외면한다.

사람들이 다 그런거 아니냐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그걸로 위로받지 말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최후의 보루, 무너져서는 안되는 마지노선이다.

세상을 향해 저항하고 진리를 증명해내는 그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려면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 기준은 바른 가치관에서 온다.

빌라도에게 주어진 권력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평과 정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권력이었다.

그렇기에 자기의 권력을 지킬 것이 아니라, 예수를 지켰여야 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안에도 빌라도의 고민과 갈등이 있지 않는가? 정말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내가 살았기 때문이다.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닌데, 아니 목숨을 내 놓으라고 한들,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사랑에 비하겠는가?

그래서 이제 다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에 내가 못 박히고(2:20) 나의 정욕과 탐심도 십자가에 못 박고서(5:24)

예수 십자가 붙들고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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