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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5 (주) 마음으로 드리는 향유 옥합 (눅 7:44-47) 이기형 목사 20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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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7:36-50절 개역개정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마음으로 드리는 향유 옥합(7:36-50)

 

2023년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에 대해 2가지를 말씀드렸는데,

지지난 주일에는 교회 이름처럼 하늘가족이 되자는 것과. 지난 주일에는 예수 가르침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 복음을 내 안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이루어가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말씀을 그 귀한 가치를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는지, 그 동력과 자세에 대해 말씀 나눌까 한다.

본문은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을만큼 중요하다(26:6-13, 14:3-9, 7:36-50, 12:1-8).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을 본문으로 살펴볼 것이다.

 

등장

누가복음에는 선명하게 대조되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부류의 사람은 바리새인 시몬이고 또 한 부류는 죄인인 여인이다.

당시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적대시했는데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 용감한 사람이다.

예수께서 들어가 앉아 식사를 하시려는데, 한 불청객이 들어온다.

이 여자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동네에 펴져서 바리새인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꺼리는 사람이었기에 불청객이었다.

거룩하게 구별되어 의롭게 살아가려는 바리새인과 죄인으로 낙인찍힌 한 여자. 예수를 초대하여 섬기는 자와 누구도 원치않는 불청객,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어느 쪽에 동일시 하겠는가?

 

섬김

바리새인은 예수를 위해 성대한 잔치상을 베풀었다.

그럼 이 여자는 무엇을 하였는가?

옥합에 향유를 가득히 담아 와서 예수의 발치에 다가선다.

여자는 서서 울면서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신다.

적시고라고 변역된 단어는 원래 비가 내리는 것을 말할 때 쓰는 동사이다.

그 눈물이 발을 적시려면 얼마나 많은 눈물이 나와야 될까?

여자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 눈물로 적셔진 발을 자기의 머리털로 닦는다. 이러한 행동은 의외이다.

당시 유대 관습에 따르면 여자가 사람들 앞에서 자기 머리를 풀어 내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여자의 긴머리는 영광이요 자랑이며 왕관과도 같은데, 머리를 풀어 발을 닦는 행동은 왕관을 그 앞에 내려놓는 것과 같다.

 

여자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 발에 입맞추고 준비한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붓는다.

발에 입맞추는 행동은 가장 헌신적인 복종과 존경을 의미한다.

향유는 나드 향으로 알려져 있는데 요한복음에 의하면 향유 한 옥합의 가격이 '300 데나리온(노동자 1년 품삯)'이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 여자가 무슨 행동은 하고 있는지 아시겠는가?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평가

성경에 이 향유를 부은 행동을 보고 여러 반응들이 나오는데, 마태복음에는 먼저 제자들은 분개하였다.

그 중에 가룟 유다가 특히 분노하였다고 요한이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에는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그 여자를 책망했다고 나와 있다.

누가복음의 바리새인도 불편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는데, 바리새인 시몬의 불편한 마음은 향유를 허비한 여자에게 대해서가 아니라 예수에 대해서였다.

자기가 초대한 예수라는 선생이 대단한 선지자인줄 알고 대접했는데, 가만보니 저 여자가 죄인인줄도 모르고 그것을 좋다고 받아 누리고 있으니 선지자가 아님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바리새인은 여자뿐 아니라 이제는 예수까지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다.

 

비유와 가르침

이러한 바리새인 시몬의 생각을 예수께서 모르셨을리 없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을 부르시고 비유로 말씀하시며 질문하신다.

500 데나리온과 50 데나리온을 탐감받은 사람 중에 누가 더 탕감해준 주인을 사랑하겠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어려운 질문이 아니기에 시몬도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라고 쉽게 대답한다.

예수님은 그 대답이 옳다 하시고 이 여자의 섬김과 바리새인 시몬의 행동을 대조해서 말씀하신다.

 

(44)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유대 관습에서 손님이 방문하면 주인은 손님의 손과 발을 씻기 위해 물을 준비하거나 하인을 시켜 씻겨주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예수께 물을 주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깜박하고 잊어버린 것인가?

바리새인이 하지 않은 일을 이 여자가 대신하여 자기의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겨드린 것이었다.

 

바리새인의 실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입맞춤은 당시 문화에서 환영한다는 자연스러운 영접 인사였다(29:13, 45:15, 삼하 15:5).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예수께 대해 이런 예를 갖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다.

 

바리새인의 무례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주인이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을 맞이하면서 환영의 표시로 머리에 감람유를 바르는데 번성의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고, 향수 역할도 하면서 손님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이 또한 무시한다. 이쯤되면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것이다.

예수님을 위한 잔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예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상다리를 부러지게 차렸다해도, 음식보다 중요한게 그 마음이 아닌가?

그런데 이 여자는 값비싼 향유를 머리가 아닌 발에 부어드렸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사랑함이 많음이라.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 여인이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죄인으로 정죄받으며 살아왔던 여인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었다.

이 여자가 예수님께 다가섰다면 그 이유는 오로지 한가지였다.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에 대한 사랑.

그 구원의 감격이 있기에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자기의 죄를 씻어주신 그 사랑에 비하면 그 눈물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바리새인 주인에게 무시당하여 더러움 그대로인 예수의 발을 눈물로 씻긴다.

발을 씻기고 머리털을 풀어 닦아낸다. 자기의 영광과 자랑을 예수의 발에 내려 놓는다.

그 발에 복종의 마음을 담아 입맞추고, 합을 깨트려 향유를 부어 드린다.

사랑, 그 사랑으로 인해 기쁘게 드릴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면 족하고 충분하다.

 

마무리

오늘 본문에는 바리새인적인 섬김이 있고 이름없는 죄인인 여자와 같은 섬김이 있다.

당시 많은 바리새인들은 예수에 대해 적대적이고 죽이려 했는데 이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를 위한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하였으니 얼마나 귀하고 대단한 일인가?

그런데 겉으로 차린 성대한 상차림과 대조되게 그의 마음은 인색했다.

기본적인 예의인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환영하는 입 맞추지도 않았고, 배려하는 감람유를 발라주지도 않았다.

이 잔치는 어쩌면 바리새인 시몬이 자기 이름과 생색을 내기위한 자기를 위한 잔치였지 예수가 주인되는 잔치는 아니었다.

바리새인 시몬의 오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예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린 사람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한 낭비에 화가 나고 분노가 일어난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트집잡고 선지자가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한다.

 

퇴색하고 오염된 자리를 기쁨으로 바꿔준 섬김이 있다.

그 이름은 나와있지 않고 오히려 죄인인 여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불청객이었기에 사람들의 이목과 비난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가 눈물로 그 발을 씻기고, 그의 머리털을 풀어 그 발을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린다.

마르지 않는 감격의 눈물, 자기의 영광인 머리털로 그 발 아래 감싸고, 복종의 입맞추며 가장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 드린다.

그녀에겐 인색함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사랑이 많음이라.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오직 그것 뿐이었다.

감동과 감격이 있기에 누가 뭐래도 그 따가운 시선이 있어도 주님 발 앞에 자발적으로 나선다.

이 여자의 섬김과 헌신에는 없는 것도 있다. 여러분은 찾아 내셨는가?

말이 없다.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여인의 행동은 말보다 더 큰 울림이 있다.

봉사와 헌신의 원리는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기에, 감격과 감사 기쁨과 황송함과 송구함으로 감당해야 한다. 자발적이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감격과 감동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구원받은 은혜, 그 주님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많기에 이 여인에게는 인색함도 자기 주장도 없었다. 침묵했지만 더 큰 울림이 있었다.

우리 하늘가족 식구들과 교회가 그런 섬김의 사람이 되고 그런 섬김의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우리교회는 조직이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이 움직이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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