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8 (주일예배) 은혜가 충만하기를 (고후 6:1-2) | 이기형 목사 | 2023-01-08 | |||
|
|||||
[성경본문] 고린도후서6:1-2절 개역개정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가 충만하기를(고후 6:1-2)
성도는 무엇으로 사는가?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이런 찬양에서 보면 성도는 은혜로 살아간다. 바울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였는데(고전 15:10) 우린 은혜로 구원받고(행 15:11) 은혜 아래 살아간다(롬 6:14)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은혜가 없으면 윤활유 없는 기계처럼 빡빡하고, 앙꼬 빠진 찐빵처럼 밋밋하고, 삶이 메마르고 삭막하고 날카롭고 사납고 짜증이 난다. 그렇기에 대제사장의 축복기도에 은혜 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씀이 있고, 바울이 전한 축복에도 은혜가 있기를 축복하고 있다. 그러면 은혜는 누가 주시는가?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렇다(출 34:6).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즐겨 하신다(출 20:6) 은혜의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려고 늘 기다리고 계신다(사30:18) 특별히 언제 은혜를 주시는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고후 6:2) 지금이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를 받고 있는가? 정직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받고 있는가? 아멘 할 수 없다면 심각한 배달사고 아닌가? 은혜로 살아가는데 은혜가 없다면 그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인데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본문의 말씀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고 말씀하신다. 본문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데 안받은 것처럼 공허하고 그 심령은 메마르고 비어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내가 기대하는 은혜가 달라서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명품에는 어김없이 유사품이 존재한다. 진짜가 있는가 하면 짝퉁 가짜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도 유사품이 있어서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은혜가 아닌 것을 은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은혜를 은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헛된 것을 가짜를 추구하면 그것이 참된 기쁨을 주지 못하니 허무한 것이고, 참된 은혜를 은혜가 아니라고 부정하니 늘 궁핍한 것이 아니겠는가? 은혜의 착각 - 지적 동의 은혜를 지적인 만족과 동의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은혜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어보면 자기가 생각하는 주장을 설교자가 동의해 주었거나, 자기가 몰랐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을 때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옳다고 내 편을 들어줄 때, 나에게 지지를 보낼 때 은혜가 된다. 은혜를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으로 이해하여 많이 배우는 것을 은혜로 생각하기도 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뿌듯하지 않던가. 무슨 시험이 와도 이겨낼거 같은 든든함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과연 그렇던가? 그 지식이 자기를 변호하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흉기가 되지 않던가? 하나님의 말씀은 내 귀를 즐겁게 하고 내 마음을 만족케 하는 청량음료가 아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은혜이다. 그 은혜가 우리를 온전하여지고 거룩하게 성화되어 가게 한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은혜는 지적인 동의나 만족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은혜의 착각 - 느낌과 체험 은혜를 느낌이나 체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느낌과 체험처럼 강력한 것이 있을까? 굳이 말이 필요없다. 설명이 필요없다. 내가 느꼈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실체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갈망하는 은혜라는 것이 어쩌면 이런 체험일 수 있다. 종교에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의 추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는데, 그가 말하는 은혜가 그렇게 놀라운 느낌과 체험인가? 그는 셋째 하늘까지 경험한 사람이지만, 그것을 간증하고 다녔다면 떼돈 벌었을 수도 있는데 그는 침묵한다. 감정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극적이고 종교적인 경험을 원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린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놀랍고 황홀한 경험을 한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 가시면서 함구하라고 하심을 보게 된다. 사랑이라는게 언제나 뜨겁고 결혼생활이 언제나 신혼처럼 뜨거워야 한다면 유지할 수가 없다. 사랑은 그렇게 감정이 아니라 신뢰이기 때문이고 희생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감정적인 사람은 좀 더 느낄수 있고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은 감정적인 느낌이 적을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관적인 체험은 객관적인 말씀으로 검증이 되고 증명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떠난 감정과 체험은 오히려 은혜가 아니라 사탄의 시험이 될 수 있다. 체험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마무리 은혜를 지적인 동의로 여긴다면 말씀의 왜곡과 취사선택이 일어난 것이고, 은혜를 주관적인 느낌이나 체험으로 여긴다면 그저 감성터치로 끝날 것이다. 그래서 은혜를 헛되지 받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공허하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보다 대단하다고 오해하진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지만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햇볕과 단비를 주시며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특별 은총을 베푸신다. 지금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로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내 지식이나 감정으로 선별하고 재단해서 수용한다면 은혜는 변질될 것이고 은혜가 아닐 것이다. 은혜가 나를 주장하고 이끌어 가야지, 은혜를 나에게 맞추고 이성과 감성으로 취사선택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은혜이시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이다. 이 말씀이 나를 살게 하고 나를 교정하고 만들어가며 나를 이끌어간다. 말씀이 선포되고 들려지는 시간과 장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복한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고, 내가 말씀을 묵상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복한다. 그 은혜가 2023년을 이끌어가고, 삶의 고비마다 은혜로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사랑하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