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4 (주일예배) 메시아의 조상들 - 살몬과 라합(마 1:5) | 이기형 목사 | 2022-1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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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4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대림절 둘째주일 메시아의 조상들 - 살몬과 라합 (마 1:5)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있는 첫 번째 여성은 다말이었다. 유다는 다말을 큰며느리로 얻는데, 두 아들의 죽음으로 다말을 멀리하게 된다.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고 유다에게 들어가 두 아들을 낳아 메시야의 계보를 잇게 된다. 이러한 다말의 행동이 오늘날의 도덕이나 기준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당대의 용인된 풍습으로 용납할 수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이 없지 않다.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있는 두 번째 여성은 창녀로 변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창녀였다. 그녀는 라합인데, 성경에는 기생이라 했지만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창녀임을 밝혀주고 있다.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해야 했던, 그야말로 성노예로 살아가던 라합의 삶은 견고하고 안전한 여리고에 살더라도 고단하고 피폐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소망없이 살아가던 그녀에게 구원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40여년 전에 애굽에서 고통받던 히브리 노예들을 그들의 신 하나님이 놀라운 이적을 베풀어 구원하신 뿐 아니라 홍해를 마르게 하셔서 건너게 하셨다는 이야기이다.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셨는데 광야를 매돌다가 드디어 그들이 가나안을 향해 진격하고 있고 벌써 아무리 족속의 두 왕이 전멸을 당했다는 소식이다. 자기 백성을 노예에서 구원하고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을 라합은 참 하나님으로 믿게 된다. 그런들 여리고가 망할 때 함께 망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데, 놀라운 기회가 그녀에게 찾아온다. 이스라엘이 보낸 스파이가 자기 집에 유숙하러 찾아온 것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여리고왕이 보낸 군사들이 들이닥쳐 스파이를 끌어내라고 한다. 라합은 스파이를 지붕에 숨기고 군사들을 따돌려 보낸다. 이것은 목숨을 건 반역이다. 죽기를 각오한 것이다. 여리고성이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가 있다. 여리고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일과 아모리를 멸한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간담이 녹았고,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 그들이 이렇게 두려워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모리 두 왕들처럼 자기들도 그렇게 진멸당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과는 달리 라합은 여기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다. 상천하지에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이 선포는 모세의 설교(신 4:39)에 나온다. 그런데 이 고백이 여리고의 창녀를 통해 증거되고 있는 것이다. 라합은 여리고가 망할줄 알기에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스파이들을 숨겨 주면서 자기 가족을 구원해 달라고 요구한다. 히브리 노예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여리고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자기도 구원해주실거라 믿었다. 자기 집에 찾아 들어온 스파이를 구조대로 여겼다. 하나님의 초대로 여기고, 구원의 밧줄로 여기고 그 밧줄을 붙든 것이다. 그는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반역을 하고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 하나님께 자신을 던진 것이다. 그는 이제 창녀가 아니라 혁명가요 모험가인 것이다. 성경은 이런 라합을 믿음의 용사로 인정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전당에 올라있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나온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다니엘, 기드온 등 성경의 중요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과 어깨를 겨루며 당당하게 등장하는 사람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라합이다.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여성으로서 이름이 직접 언급된 인물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라합 둘뿐이다. 야고보서에서도 보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참 믿음임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로 아브라함과 라합을 꼽았다. (약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은 믿음의 전당뿐 아니라 메시야의 족보에도 올라가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놀랍지 않은가? 그녀의 믿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4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인근 아모리 족속들이 당한 일들을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소식을 통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여리고성이 망할 것을 알고 믿었다. 그 견고한 성이 무너질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만, 홍해를 가르고 아모리 족속을 멸하신 분이라면 여리고도 능히 멸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다. 라합은 여리고를 믿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기에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을 믿었고, 무너질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들어가 하나님 나라에 자신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처한 여리고의 시민들과 여리고 왕은 구원의 초대장을 거부하고 문을 걸어 잠궜다. 망할줄 알면서도 고집부리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서기관 바리새인들보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1:31). 예수님을 대면하고서도 제사장들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였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그렇게 많은 메시지가 선포되고 이 세상이 망할거라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 안주하고 세상을 믿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라합은 이방인이고 창녀였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아 믿음의 전당에 메시야의 족보에 오른 믿음의 사람이었다. 오늘 우리도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면 좋겠다. 또 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 있다. 그는 살몬이다. 그는 룻기의 기업무른자 보아스의 아버지가 된다. 사람들은 그를 유다 지파의 두령으로 인정한다. 백성의 지도자라면 여러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특히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일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일찍이 이스라엘에게는 이방 결혼을 엄히 금지하였다. (신 7:3)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더군다나 백성의 어른이라 하는 제사장들은 창녀 짓을 하는 더러운 여인은 아내로 삼을 수 없었다(레 21:14). 살몬이 제사장은 아니지만 두령이라면 당연히 준하는 모범을 보여야 했다. 그런데 라합은 이방 여인이며 창녀였다. 어떻게 이런 여인과 결혼할 수 있을까? 살몬은 눈이 없는 것일까?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사람들은 과거를 보고 현재를 판단한다. 부정적인 선입관은 꼬리표처럼 늘 따라다니고 의심하고 불신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전과자는 억울하다. 하나님도 그러실까? 하나님도 낙인 찍어놓고 선입관을 가지고 바라보실까?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할까?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라합의 과거는 이방 여자였고 창녀가 맞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누구보다도 인정받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신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도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주님은 간음의 현장에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신다 하셨다.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살몬은 라합의 과거를 본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와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 알아보고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믿음의 부부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주시는 것은 마땅할 것이다. [마무리] 하나님은 망할 성에서 라합을 구원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내신다. 그들은 구조대였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반응하면 그는 어디에 있든지 구원을 받는다.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가나안 족속 중에 기브온 족속은 한 민족이 구원을 받았다. 라합은 애굽에서 행한 하나님에 대해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고 근래 하나님이 아모리 사람들에게 행한 일을 듣고 하나님을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한다. 히브리 노예들을 이끌어 가나안에 인도하신 하나님을, 노예처럼 살아가던 라합도 믿고 고백하게 된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라합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믿음의 전당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고, 나아가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가는 영광을 주셨다. 망할 여리고에서 믿음으로 구원얻은 라합은, 성도가 심판받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오로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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