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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7 (주일예배) 메시야의 조상들- 유다와 다말 (창 38:24-26) 이기형 목사 202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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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38:24-26절 개역개정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메시야의 조상들 - 유다와 다말(38:24-26)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의 족보가 등장하는데 특이한 점은 여성들의 이름이 5명 있다.

처음 등장하는 여성이 다말인데,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낳은 아들로 후사를 이어간다.

막장불륜드라마인지, 아님 은혜의 스토리인지 창세기 38장을 살펴보려 한다.

 

1. 유다와 아들들의 악함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지만 성경에는 장자처럼 나타나고 있다.

장남 르우벤은 서모와 동침함으로,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학살 주동자로 장자권에서 멀어지고,

야곱은 유다가 형제의 지도자가 될 것이며 나아가 그 후손으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언하였다.

유다가 그에 합당한 족장이었을까?

38장은 유다가 형제를 떠나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삭도 야곱도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 가나안 여자가 아닌 멀리 본토 친척중에 아내를 취하게 하였다.

그런데 유다는 형제를 떠나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다.

형제들의 으뜸이 될 유다가 가나안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예감을 가지게 한다.

 

그 예감은 그대로 맞았는데, 유다는 세 아들을 두고 맏며느리로 다말을 맞이한다.

그런데 장남 엘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함으로 여호와께서 친히 죽이셨고,

차남 오난은 계대결혼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음으로 이를 악하게 보신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셨다.

대계결흔을 하고 안하고는 오난의 선택이었지만, 일단 하고 나서는 이 결흔에 따른 책임을 다 했어야 했다.

계대결혼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황당한 이야기지만 당시 문화적인 배경에서는 권장되었고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다(25:5).

두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유다의 관점은 성경 저자와 달랐다.

성경은 명백히 두 아들이 악해서라고 설명하는데 유다는 자기 아들들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에 들어온 여자 다말이 문제라는 인식이다.

유다는 남은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으려고 셀라가 어리다는 핑계를 대고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다말을 돌보지 않고 속이는 것은 오난과 같이 악한 처사였다.

2. 다말의 도전

여지껏 다말은 피동적으로 기다리는 존재였다.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시아버지 유다는 셀라를 자기의 남편으로 줄 생각이 없음을 다말도 알게 되었다.

이제 다말은 기다리지 않고 행동한다.

아내를 잃은 유다가 양털 깎기위해 딤나로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여인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유다가 지나가는 에나임 문 곁에 앉았다.

다말이 유혹했는지, 유다가 다말에게 접근했는지는 모르지만, 유다는 변장한 다말을 창녀로 알고 그에게로 들어가기로 한다.

유다는 댓가로 염소 새끼를 주겠다고 약조하는데, 지금 당장 염소새끼가 없으니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담보로 건넨다.

그리고 마침내 다말은 임신을 하게 된다.

 

3. 누가 의로운가?

유다는 친구를 보내 염소를 주고 담보를 찾으려 하지만 창녀를 찾지 못한다.

그렇게 유다의 일탈과 범죄는 덮어지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다말의 간음은 덮어지지 않았다. 다말의 임신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간음으로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는 다말을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한다.

끌려가던 다말은 자기를 임신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제시한다.

유다는 자기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알아본.

그리고 모든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사실은 다말 뿐 아니라 자기도 간음하였음을,

그리고 다말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과 까닭이 자기에게 있음을 고백한다.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다말을 인정한다.

다말의 본심, 정욕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시아버지 유다의 장애를 넘어서 기필코 남편의 대를 이으려는 다말의 본심이 유다에 의해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남편의 대를 이어주는 것이야말로 죽은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며 의로움이었다.

유다는 큰 아들의 일을 방관하였지만 다말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는 나보다 옳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사건을 오늘날의 윤리도 바라보거나 도적적인 척도로 바라보는 것은 바른 시각이 아니다.

다말이 살던 당시의 문화 속에서 그녀는 죽은 남편의 가장 가까운 친족에 의해 아들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가졌었다. 그녀는 이런 아이를 갖기 위해 창녀 역할을 했고 그녀의 속임이 성공했다.

족장인 유다로 인해 끊어졌던 유다 자손의 계보다말에 의해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다말이 그런 온갖 오해와 수모를 겪으면서도 유다 집안을 떠나지 않았을까?

어떻게 해서라도 이스라엘 족속의 아들을 잉태하려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때문이다.

가나안 여인 다말은 유다 집안에 시집와서 비록 유다의 타락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집안에 내려온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배웠다.

그러므로 다말의 마음에 유다 집안을 떠나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마음은 없었다.

죽어도 유다 집안에 붙어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믿으므로 함께 구원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있는 또 다른 이방여인 모압 여인 룻을 볼 수 있다.

모압 여인 룻은 하나님의 족속에게 시집왔지만 졸지에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며느리들도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 강제한다.

동서인 오르바는 나오미를 떠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다.

룻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베들레헴으로 나오미와 동행한다.

여기 다말도 룻과 똑같다.

가나안 족속의 딸로 이방인이었던 다말하나님의 백성의 집안으로 들어온다.

남편이 죽고 시동생이 죽지만 결코 유다 집안을 떠나지 않고 어린 시동생이 자라기를 기다린다.

시아버지 유다가 의도적으로 셋째를 주지 않자 다말은 이제 정상적으로 약속의 씨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시아버지를 주목하고 그를 통해 약속의 씨를 잉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다말에게 두 아들을 낳게 하셨다.

극적으로 죽음의 위기를 모면한 다말은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녀가 쌍둥이를 낳은 것은 두 남편에게서 아이를 하나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며 동시에 두 아들을 잃은 유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는 징표이다.

 

마무리

하나님은 은혜로 유다를 용납하시고 다말을 인정해 주신다.

그렇게 의로운척 하던 유다는 결국 그는 나보다 옳다고 다말을 인정한다.

다말의 임신을 통해 감추어 두었던 은밀한 자기의 죄악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그는 나보다 옳다는 고백이 있어야 하겠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속 역사에 동참하려 했던 다말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지위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지켜가려 했는지,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망령된 행실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백성, 권속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지를 깨달았음 좋겠다.

믿음의 공동체에 참여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갖 수모와 굴욕을 참으면서 기다리고, 창녀로 변장하면서까지 기여이 아들을 잉태하려는 다말을 보면서 그렇게 믿음의 공동체를 지켜 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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