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3 (주)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막 9:23-24) | 이기형 목사 | 2022-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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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9:23-24절 개역개정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막 9:23-24)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경 구절’ 중에 하나가 빌립보서 4:13이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의 이 말씀은 어쩌면 본문 23절 예수님의 말씀에서 인용했을 수 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을 믿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에는 불가능이 많이 있다. 본문의 제자들도 그러했다. 귀신들려 말못하고 간질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 제자들은 70인 전도대로 나갔을 때 귀신을 쫓아내는 경험을 하였지만, 지금은 못하고 있다. 이 때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시고 아들을 데려오라 하신다. 귀신이 예수 앞에 오자 예수를 보고 아이에게 거품을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게 한다. 예수님께서 언제부터 그랬냐고 물으신다. 아이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대답하지만, 한가롭게 언제부터 그랬는지 관심갖기 보다는 당장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시급한게 아닌가? 아버지는 급한 마음으로 말로만 하지 말고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22)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말씀하신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전적인 신뢰임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과 놀라운 역사를 믿는 자를 통해 나타내시고 보여주신다. 그러기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곤란하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수단쯤으로 생각하면 주객전도인 셈이다.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는 것이다. 믿음은 나의 원함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는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무엇을 믿는가? 1) 하나님의 전능하심, 능력이다. 2) 하나님의 선하심, 의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하실까? 과연 그렇게 하실까? 못하시는 것과 안하시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못하는 것은 능력의 문제이고 안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끌려다니시고 이용당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이끌어가시고 우리를 사용하신다. 그래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고쳐주실 수도 있지만 고쳐 주지 않으실 수도 있다. 하나님은 나를 부요하게 하실 수 있지만, 가난하게 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도 맘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해서 결국 선을 이루어 가게 하신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져도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 있고,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 뜻을 찾으면 내 뜻대로 잘되었다고 우쭐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내 뜻대로 안되었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도 실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능히 감당,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간청한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아버지는 내가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계속해서 하는 이야기는 자기가 믿음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고백한다. 이 아버지는 믿음이 있다는 것일까, 없다는 것일까? 있긴한데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일까? 사실은 이 모순처럼 보이는 고백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고백이다. 1) 내가 믿나이다. 오늘날 갈수록 믿음없는 세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문화도 세속가치, 불신으로 무섭게 바뀌어가고 있다. 물질 문명 사회의 최대의 신은 맘몬 돈이다.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다고, 쉬운 돈과 권력이 있는데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도 돈과 권력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 오늘 우리 시대에 절실하다. 2)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의 실체가 있는지 아님 믿는다는 착각인지 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있는 믿음인지, 죽은 믿음인지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야고보가 말하는 살아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의 차이는 행함이다. 행동은 머리의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머릿속의 생각을 지적인 동의를 믿음으로 착각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성경 지식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순간순간 그렇게 흔들린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이 따라오지 않고 손과 발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의 이야기에는 쉽게 아멘도 할 수 있겠는데, 정작 나의 삶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는 물음표를 붙일 때가 많이 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데에 지적으로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지만,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정말 선하신 분인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믿는다고 하지만 어느새 흔들리고 무너져 폐허가 된 황폐한 심령을 목도하기도 한다. 내 믿음이 그렇게 연약하기에 우리는 주님께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내가 주님을 잡은 손은 믿을 수가 없기에, 주님께서 내 손 잡아주심을 확고하게 믿고 평안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자기의 연약과 부족을 안다면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연약한 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의 삶이다.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내 가진 것으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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