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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30(주) 찌르는 채찍과 잘 박힌 못(전 12:11) 이기형 목사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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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전도서12:11절 개역개정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찌르는 채찍과 잘 박힌 못(12:11)

 

우리는 지난 주부터 말씀 묵상을 시작했다.

묵상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 속으로 생각함. 이라 되어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말씀묵상인가?

말씀 묵상을 내가 논어나 맹자같은 고대 문헌을 연구하여 거기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고 내 지식을 더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 묵상은 생각하기가 아니라 듣기이다.

말씀 묵상은 내 눈이 읽고 내 생각이 정리하여 뭔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나를 맞추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과 대화하거나 하나님과 교제하거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본은 잘 듣는 것이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는 사실 대인관계나 우리 삶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다.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무엇이 먼저인가? 듣기는 속히 하고, 들었으면 그것으로 생각한 후에 더디 말하라.

하나님께서 귀는 양쪽에 2개를 주시고 입은 하나를 주신 이유, 2배로 잘 듣고 그 다음에 말하라.

대화는, 동행은 일방통행이어선 안된다. 잘 듣고 잘 말하는 것이다.

 

* 잘 듣는 것이 어려운 이유

대화를 설득으로 오해한다. 상대를 굴복시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말의 주도권을 잡는 비결을 아시는가?

상대의 말을 듣기 보다는 내가 할 말만 생각하고 상대의 말을 끊고 큰소리로 내 말을 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지혜롭다 하지 않고 오히려 미련한 자보다 더욱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29:20)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우리는 듣는 훈련은 되어있지 않다.

웅변학원이나 논술학원은 자기 주장하는 발표력과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려 하지 듣는 훈련은 하지 않는다.

듣는 법은 배우지 않다보니, 공자같은 사람도 듣는 귀를 가지기까지 60년이 걸렸다 한다.

나이 60이 되어 이순(耳順)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

耳順남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를 않는 경지요, 무슨 말을 들어도 깊이 이해하고 너그런 마음으로 관용하는 경지이다.

 

* 성경은 들으라고 강조하신다.

세상은 듣기를 가르치지 않지만, 성경은 들으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신앙교육은 한 단어로 쉐마라 하겠다.

쉐마듣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샤마아의 명령형으로, 우리말로는 들으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쉐마라 할 때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되는, 신명기 64~9을 말한다.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그들은 하나님 앞에 말하기 전에 듣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인생 시작부터 끝까지 늘 품고 살아간다.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 요한계시록의 7교회 비유의 마지막 구절마다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11, 17, 29. 3:6, 13, 22)

오늘날 교회 안에도 자기 주장과 목소리가 난무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한다면 이다지 소란스럽진 않을 것이다.

 

* 듣기 어려운 말이 있다.

우리는 듣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 듣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데,

그 중에는 우리의 귀에 듣기 쉬운 말이 있고 듣기 어려운 말이 있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을 알고 계실 것이다.

당근이라 함은 긍정적인 보상이나 칭찬이나 격려를 뜻한다고 하겠고.

채찍은 부정적인 책망이나 체벌, 징계를 뜻한다고 보겠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이런 요소들이 다 들어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할 이유이기도 하다.

비유컨대 말씀은 어둔 세상의 빛과 같고 순례길 지도와 같다.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세상이 어둡고 인생이 어리석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보지 않는 고집이 문제이다.

(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하나님은 그 인생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씀을 통해 공급해 주신다.

지난주 말씀 드린대로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다.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말씀은 승리의 능력인데, 전신갑주에 주신 유일한 공격 무기가 말씀의 검이다.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런데 늘 칭찬과 격려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를 교정해 가시려고 때로 채찍, 쓴소리를 하신다.

우리의 삶을 태워 버리시거나 부수기도 하시고

(23: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말씀은 찌르는 채찍과 잘 박힌 못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12: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내 귀에 듣기 싫을 뿐 아니라,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 찌르는 채찍

짐승들을 몰 때 자극하기 위해 사용된 날카로운 것이 박힌 막대기, 혹은 소를 몰 때 사용되는 끝이 뾰족한 막대기(3:31)를 의미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찌른다.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송곳처럼 아프게 찌른다.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검으로 비유한 바 있는데, 그 검은 사탄을 맞설 뿐 아니라 나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신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수술하는 메스와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CTMRI와 같이 전인적으로 우리를 판단하신다.

그리고 영적 질병을 정확하게 파악하시고 치료하시는데, 치료가 평안하고 즐겁진 않다. 고통이 따른다.

조각가가 큰 바위로 작품을 만들어가려면 망치와 정과 끌로 부수고 잘라내고 다듬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사생자는 징계하지 않지만 자식은 징계한다고 말씀하신다.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오늘날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채찍과 꾸지람이 없어서 패역한 자식이 나오는건 아닌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찌를 때 양심이 화인맞고 마비가 되어 무감각한 사람들은 아무 감각이 없지만, 보통은 양심의 가책이 있다.

하나님이 말씀이 찌를 때 각기 다른 두 부류의 반응이 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은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면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동일하게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그리고 돌을 들어 스데반을 쳐죽였다.

베드로와 스데반의 설교 능력의 차이이겠는가? 똑같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반응이 달랐다.

사람들이 제일 보기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꾸미거나 가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난 자기의 추한 모습이다. 누가 훈계나 충고하면 대부분은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분노한다.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인가? 회개하고 돌이키시겠는가. 돌을 들어 대적하시겠는가?

여러분에게는 찌르는 말씀이 없는가? 그럴리 없다.

하나님은 책망하신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아프게 듣는만큼 그는 새로워질 것이고 온전해질 것이다.

찌르는 채찍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여기고 기름같이 여겨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 잘 박힌 못

유목민들이 천막 생활을 할 때 천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견고하게 고정시키려면 땅에 못을 잘 박아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각자의 마음 속에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어야, 흔들리는 세상 풍파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고 침몰하지 않고 강건하게 살아갈 수 있다.

벽에 못을 박고 액자를 걸었는데, 그 못이 잘 박혀있지 않으면 액자는 떨어져 부서질 것이다.

말씀에 인생을 걸었는데, 그만 대충 헐겁게 못을 박았다면 말씀에 인생을 걸었어도 추락할 것이다.

성경은 One of them이 아니고 only One 유일한 기준이다.

우리는 한번도 가 보지 않은 뉴노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다원주의 시대에 다양성이 인정받고, 타협과 공생의 길이 있다해도, 우리는 오직 말씀에 우리 인생을 건다.

인생을 걸었는데 그 못을 대충 박으시겠는가? 대충 믿으시겠는가? 대충 들으시겠는가?

말씀이 잘 박힌 못과 같이 우리의 심령에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 마무리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쉐마 이스라엘! 들으라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대 문서가 아니라 살아 역사하는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묵상은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 것이다. 잘 들으시라.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위로하고 격려해 주신다.

그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검과 같이 채찍같이 우리를 찔러 깨우치신다.

찔림을 당하면 아프고 고통스럽고 분노가 일어나고 외면하고 싶지만, 그 말씀이 나를 바르고 온전하게 흠없이 단련하고 정금같이 세워갈 것이다. 훈계를 듣지 않는 인생은 소망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 박힌 못과 같이, 리의 심령에 확실하게 분명하게 새겨지시기를 바란다.

인생을 걸었는데, 허술하게 대충 못을 박으시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날마다 묵상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꿀과 송이꿀 같은 양약이 될 뿐 아니라 수술하는 검과 같이 찌르는 채찍같이 되어, 건강하고 아름답게 빚어지는 하나님의 걸작품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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