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6(주일) 아둘람 교회(삼상 22:1-2) | 이기형 목사 | 2022-10-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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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상22:1-2절 개역개정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아둘람 교회(삼상 22:1-2) 다윗은 사울의 질투와 진노로 인해 도망자로 전락한다. 블레셋에 피해보려 했지만 자기를 알아보는 덕분에 오갈곳이 없게 된다. 결국 사람이 살 수 없는 동굴로 도망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가 아둘람 굴이다. 동굴은 박쥐나 뱀같은 동물들이 살아가는 곳이지 사람 살만한 곳이 못되기에, 사람이 숨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히브리 사회에서 동굴의 또 다른 용도는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매장지였다. 무덤은 생명의 종착지이지 생명의 산실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 죽음이 지배하는 동굴을 생명이 출산하는 산실로 바꾸셨다. 예수님이 장사되셨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굴이나 초대교회 카타콤 굴도 그러하였다. == 다윗을 찾아온 가족들 == 그 고독과 역경의 장소에 가족들이 찾아온다. 물론 가족들도 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부귀 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고난의 자리지만 가족은 기꺼이 함께 한다. 어쩌면 우리 교회도 아둘람같은 변변찮은 교회일 수 있다. 비록 동굴같은 곳이지만 사랑으로 뭉친 가족들, 예수의 보혈로 하나된 가족들, 그런 하늘가족교회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 다윗을 찾아온 다른 사람들 -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 == 아둘람 굴은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억눌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던 사람들,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 들었다. 지금 다윗은 자기 코가 석자인지라, 든든한 빽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줄 사람들이 필요하지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이 무슨 힘이 되겠는가? 그런데 재력이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다윗에게 모여들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사울의 주변에 있다. 이들은 당한 사람들이고 빼앗긴 사람들이라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고 고슴도치처럼 행동과 말에 가시가 돋혀 있다.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한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들도 지친다. 동굴은 사람 살만한 곳도 못되는 환경인데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는가. 도대체 이런 사람들과 함께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이런 사람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 이런 사람들을 찾으시고 부르신 분이 계신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다. 그 스스로 어찌할 수 없어 쓰러지고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부르신다. 상처 투성이의 인생, 도무지 손 쓸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인생을 부르신다. 그러다면 오늘날 교회도 그런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고 있는가?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한국교회 트렌드를 분석한 <2023년 한국교회 트렌드>를 발간했다. 그 첫 번째가 ‘플로팅 크리스천(Floating christian)’의 등장이다. 한 교회가 아니라 여러 교회의 예배를 떠돌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소속감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 책임감도 없는 사람들. 왜 크리스챤들은 교회를 떠돌고 있는가? 어느 한 곳에도 마음 둘 곳이 없고 정착할 만한 곳이 없어서인가? 교회를 갈수록 화려하고 편리해지는데도 왜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외면할까?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이 머물 아둘람 같은 곳에 없어서라면, 사람들이 교회를 잃어버렸다기 보다는 오늘 교회가 그 본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시작은 늘 이렇게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해서 강한 것들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다. 하나님께서 아둘람 굴에서 한이 많고 상처투성이며 거칠고 신앙적으로 정돈되지 아니한 오합지졸을 믿음의 용사로 훈련시키면서 위대한 일꾼으로 세워 가신다. 비록 우리가 비천하고 연약하며, 상한 마음으로 나아오고 원통하고 빚진 자들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대하시기에 우리를 고치시고 바꾸시며 우리를 사용해 주신다. 그렇게 지옥같은 삶을 살아갈거 같은 아둘람 공동체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윗 왕국의 모판이 되었다. 삼하 23장 8-39절에 나오는 다윗의 3대 명장과 30대 용장들은 아둘람 굴에서 훈련받은 자들로, 다른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할 때도 끝까지 충성하였다. == 마무리 == 아둘람은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무덤같은 동굴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산실로 바꾸셨다. 다윗의 가족들과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 이들을 장차 통일왕국의 기둥같은 사람들로 빚어 주셨다. 다윗이 대단한 리더십을 가져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빚어주신 것이다. 금과 은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한다. 우리 각자는 환난 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우리를 맡길 때, 또한 자기의 아픔보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돌아보고 주의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줄 때 우리 안에 놀라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하늘가족교회가, 그리고 주의 몸된 교회들이 아둘람 같은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하며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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