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9(추수감사) 감사, 형식을 넘어 마음으로(시편 50:14, 23) | 이기형 목사 | 2022-1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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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50:14-23절 개역개정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 형식을 넘어 마음으로(시 50:14,23)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다.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감사가 없기에 감사를 가르친다. 감사는 인간의 도리이기에 억지로라도 감사하게 한다. 그러다보니 굳이 이런 감사절이 필요없을만큼 우리에게 감사는 익숙하고 몸에 습관처럼 배어 있다. 뭐든지 습관적이 되면 위험성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다보면 의식없이 생각없이 조건 반사처럼 빠르게 튀어 나온다. 그러다보면 의미와 본질을 놓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리고 감사가 체면과 도리 때문에 의무적인 억지 감사가 될 수 있다. 마음은 보이지않고 형식만 보이기에 사람들은 형식으로 마음을 가늠하곤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젯밥에 관심이 없으시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하나님께서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다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그 번제의 제물로 인해서는 책망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왜 이정도 밖에 안되니, 왜 더 많이 드리지 못하는거니’ 그렇게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진 재산에 눈독 들이지도 않으신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사이비 교주나 여러분 지갑에 관심이 많지 하나님은 여러분의 것을 강탈하거나 속여 빼앗지 않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이 드리는 재물이 절실하게 필요하신게 아니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하나님께서 당신의 만족을 위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당당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야생의 짐승들도, 목장의 가축들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 목장 안에 있으니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임의로 주시기도 하고 데려가시기도 하신다. 나는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주인이 것을 가지고 제 것인양 주인에게 생색내는 청지기야말로 얼마나 웃기는 사람인가? 삼라만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령 내가 주려도, 이건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그렇게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해도 너희에게 이르진 않을 것이다. 너희에게 얻어먹을 생각은 전혀 없다. 하나님이 뭐가 아쉬어서 우리에게 구걸하시겠는가? 뭣 땜에 우리에게 사정하시겠는가? 주의 일은 자기가 아니면 안될거라고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걱정 붙들어 매시라.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관심이 젯밥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에 있을까? 제사드리는 사람이다. 특별히 제사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중심이다. 앞서 하나님께서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으셨는데,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울은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좋은 것은 남겨 주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남겨 두었다는 것이다. (삼상 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그러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번제나 제사가 아니라 순종하고 듣는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번제나 제사가 아니라 예배자의 순종과 청종을 기뻐하신다. 그 마음을 살펴보시고 받으신다. (삼상 16:7)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그 마음이 없으면,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 정말 마음이 없으면 잠시 멈추시고 그 마음부터 챙기신 다음에 하셔야 한다. 마음이 없는 헌신이나 감사는 헛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된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 기쁘게 드리는 자, 곧 그 마음에 기쁨이 있는 헌신자를 사랑하신다. 초대교회에는 감사와 헌신이 풍성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렇게 이상적인 모델을 권력과 힘으로 이루려 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강요와 억지로 된 것이 아니었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도 체면과 외식으로 하려 한다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공산주의자들의 실패 뿐 아니라, 초대교회 첫 시험이 무엇인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다. 이들의 징계는 부부의 죽음이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인색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얼마를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 왜 감사의 마음이 아니라 인색한 마음이 들었을까? 처음부터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드린 헌신이 아니라 그릇된 욕망, 앞서 바나바가 땅을 팔아 교회에 드리자 사람들이 칭찬하고 인정했고 이들도 덩달아 드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동기와 중심을 보시고 그것을 원하신다. 이 사건은 초대교회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중요한 반면교사가 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을 섬기고 무엇으로 주의 일에 사역해야 하는가? 무엇으로 감사해야 하는가? 제도나 시스템이나 직분이나 남들 하니까 따라가는 체면치레나, 그런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드리는 마음, 오직 그것이다. 하나님의 경고 (시 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올려 드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라고 부르신다. 그들의 제물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있지 않았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그것은 헛된 제물이라고 말씀하셨다. 인류의 첫 제사였던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받으시고 무엇을 거부하시는지 명백히 보여주셨다.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의 관심 가지시고 받으시는 것은 제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드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 14절과 23절에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그 감사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관계이다. 무엇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비록 그런 것이 없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의 구원의 하나님,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이면 족하다. 그 감사는 의무가 아니라 자원하는 감격이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 아깝고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그런데 마음이 없으니 핑계가 나오고, 뭘 해도 본전 생각이 나서 인색하고, 잘되면 사람의 칭찬과 인정이라도 받아야 하고, 힘들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거 아닌가? 마무리 오늘 추수감사절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을 보면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지 못하는 자들이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불량자들이기에 누구나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그 감사가 억지로 의무가 아니라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생각없이 지나가는 절기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드리는 조건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필요를 따라 채워주시고 채워주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온맘다해 드리는 감사 절기가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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