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4(주) 약할 때의 은혜 (고후 12:9-10) | 이기형 목사 | 2022-09-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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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12:9-10절 개역개정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약할 때의 은혜 (고후 12:9-10) 큰 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 지고 싶어 물질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주셨다. 내가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를 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 표현하지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 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여러분은 이 글을 듣고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여러분이 힘과 건강과 물질과 성공을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연약과 질병과 가난과 실패를 주셨다면 그것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며 영광 돌리시겠는가? 남의 이야기는 은혜롭지만 정작 나에게 적용할 때는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연약과 질병 가난은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 안에도 어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까? 약함의 은혜와 유익 오랜만에 아파 보니까 평소에 몰랐던 은혜와 유익이 있다.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없으니 비로소 아쉽고 그것이 은혜와 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복을 복으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낭비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자기 손에 쥐고서도 찾아다닌다면 그건 저주와 형벌일 것이다. 고난과 질병을 통해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앞으로는 복을 복으로 알고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그런데, 우리가 연약할 때 혹은 가난과 실패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로 낮은 곳을 체험하게 하셔서 겸손하게 준비시키시고, 앞으로 높은 곳에서 건강하고 부요하고 잘 살아가도록 가르치시기 위함인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은혜가 이런 것일까?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약함과 질병과 고난을 통해 주시는 참다운 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한다. 바울의 약함과 질병 사도 바울은 못생긴 약골에 말 주변도 없는데다가, 사탄의 가시라고 할만한 치명적인 질병이 있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의 간구와 응답 바울이 질병을 고쳐주시기를 세 번이나 기도하는데 (고후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이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바울은 은혜가 족하지 않기에 그 질병을 고쳐 달라고, 은혜로 고쳐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내 은혜가 족하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있는 그 질병이 은혜라고 말씀하신다. 아니, 어떻게 질병이 은혜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은혜는 건강하고 형통하고 순조로운거지. 나를 강하게하 고 나를 부요하게 하는 것이 은혜이지.. 나를 약하게 만들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어떻게 은혜일 수 있는가? 그렇게 따져묻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씀하신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나님의 능력은 내가 강해질 때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약할 때 온전하게 역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약함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나를 강하게 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침내 강해지면 나의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겠다고, 그러니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매달린다. 나의 질병을 고쳐 주시고 나의 가난을 부요하게 하시고 나의 약함을 강력하게 해 달라고, 그래야 악한 세상을 이기고 보란 듯이 당당하게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간절하게 구한다. 하나님은 내가 강해졌을 때의 부작용을 너무도 잘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은 내가 강할 때가 아니라 내가 약할 때 온전하여진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내가 약하고 내가 무능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주님의 생각은 다르다. 내가 무능하고 연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진다고 말씀하신다. 바울의 반응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응답같지도 않은 응답을 듣고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크게 기뻐함으로 자기의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약점을 감추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한다고 말한다. 지금 바울을 괴롭히는 것들이 자기를 약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떠나기를 기도하였는데, 이제는 기도 제목이 아니라 기쁨의 제목, 감사의 제목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게 된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할 그 때가 곧 주님의 강함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진정한 참된 복은 나의 부요와 건강, 강함이 아니라 나를 강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가 어떠하든지 강하든지 약하든지 부요하든지 가난하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참된 복이다. 내가 지혜롭다고 내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지혜로 살아가고, 내가 힘과 능력과 부요가 있다고 그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며, 내가 어리석다고 좌절할게 아님은 어리석은 나를 통해 주께서 일하시기 때문이고, 내가 가난하고 연약하며 질병 가운데 있어도 낙심하지 않음은, 그런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역사하신다 하시니 다시금 주님을 온전히 붙들어야 하겠다. 마무리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당연함이 아니라 은혜를 은혜로 알고, 날마다 은혜의 감격을 회복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강하게 하시고 부요하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심도 아니다. 어쩌면 고난 가운데 허덕이게 하시고, 연약과 질병 가운데 신음하게 하실 때도 있고, 잠시가 아니라 영영 그렇게 살아가게 하시기도 한다. 그것도 은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그것도 은혜라고, 아니 그것이 은혜라고. 그래서 그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기뻐하겠다고 환영하겠다고 말한다. 약할 그 때가 강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강함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 강함은 세상을 정복하고 자기의 명예와 권세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포기하고 좌절과 절망하게 만드는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강함이고, 작은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가는 강함일 것이다. 내가 강함이 아닌 주님의 강함으로, 그렇게 승리하며 영광 돌리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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