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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1(주) 들릴라, 사랑꾼인가 사냥꾼인가? (삿 16:16-18) 이기형 목사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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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사기16:16-18절 개역개정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들릴라, 사랑꾼인가? 사냥꾼인가?(삿 16:16-18) 삼손과 들릴라는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성경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서도 두 눈이 뽑히고 노예가 되어 맷돌을 돌리는 삼손의 모습은 세간에는 흥밋거리지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면교사로 귀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 삼손 == 삼손은 나실인으로 태어났고,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블레셋 사람들로서는 삼손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아킬레스 건, 비밀을 찾아내는데 올인하게 된다. 삼손의 약점이 무엇인가? 머리카락인가? 나실인은 ‘구별된 자’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란 의미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일정 기간 혹은 평생동안 자신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이다. 나실인의 규례가 있는데. ① 포도나무 소산 및 독주를 금할 것(6:3-4), ② 머리털을 깍지 말 것(6:5), ③ 시체 접촉으로 인해 부정케 말 것(6:6). 이런 규례를 어기게 되면 정결례를 행하고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고 다시 서원을 하면 된다. 삼손은 자기는 나실인이라 머리털을 자르면 힘을 잃을거라 말했지만, 그것은 지켜야 할 규례 3가지 중에 하나일 뿐이다. 사실 삼손은 잔치를 벌이며 포도주에 취하기도 하고,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따기도 하는 등 일찌감치 2가지 규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기고 있었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려서 힘을 잃은게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떠나시자 무력해진 것이다. 암튼 삼손의 약점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다른데 있었는데, 바로 여자였다. 삼손이 처음으로 한 일은 여자를 보고 아내를 삼겠다는 것이다. 삼손을 기록한 사사기의 각장 각 사건은 언제나 삼손이 이방 땅 여자를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딤나에서 가사에서 소렉에서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지 않는가? 삼손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자기 민족의 고통도 아니고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자를 찾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삼손이 진지하다.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국경과 종교를 초월하여 원수를 사랑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그러나 들릴라가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일단 결격 사유가 생긴다. 더 나아가 중요한 것은,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다지만 들릴라도 삼손을 사랑했을까? 성경은 그 질문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기에 들릴라의 행동으로 살펴봐야 한다. == 들릴라 - 위험한 거래 == 블레셋 방백들은 삼손의 처음 아내였던 여자를 협박하여 삼손의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아낸바 있다. 이번엔 들릴라를 회유한다. 은 5천5백세겔, 평생 놀고 먹을만큼의 포상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들릴라에게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포상금이 걸린 사냥감을 사냥하는 게임이었다. == 1라운드 == 이제 목숨을 건 위험한 게임이 시작되었다. 삼손은 게임도 안된다고 자신할 수 있다. 키는 삼손이 쥐고 있고 힘도 삼손이 더 쎄기 때문이다. 들릴라는 단도직입적으로 나온다. 어떻게 하면 당신을 즐겁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는가? 질문한다. 질문 하나로도 이 여자가 자기를 돕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를 파멸시키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그런데 삼손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장난하듯 들릴라를 놀리듯 반응하는 것을 보게 된다. 푸른 칡 일곱 가닥으로 결박하라고 하는데,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듣고서 들릴라는 그대로 실행한다. 들릴라는 생각으로만 있는게 아니라 실제로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2라운드 == 두 번째 들릴라의 투정에, 삼손은 쓰지 않은 새 밧줄로 결박하라고 가르쳐 준다. 이미 삼손은 유다 지파의 결박을 끊은바 있다. 그런데도 들릴라는 손수 밧줄을 가져다가 삼손을 결박한다. 앞서 푸른 칡은 블레셋 사람들이 가져다 주었지만 이제는 들릴라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3라운드 == 두번이나 하고 놀림을 당한 들릴라는 포기를 모른다. 이번에도 삼손은 힘의 비밀을 알려 주는데,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삼손의 입에서 머리털이 나온 것이다. 삼손이 승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 4라운드 == 들릴라는 네 번째 간청하면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는데 삼손의 사랑을 의심이 든다고 말한다. 연인간에 “자기가 날 사랑하지 않는거 같아” 이 말처럼 정신 번쩍드는 싸늘한 말이 또 있을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사랑하고 있는데 사랑하지 않는거 같다고 말하면 그 사랑을 증명해 보여야 할거 같은 부담감이나 강박감이 들 것이다. 날마다 재촉하고 조르니, 삼손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다. 앞서 삼손은 딤나의 여자가 울며 강요할 때 수수께끼의 비밀을 말해 주었는데, 이번에도 삼손은 비밀을 말할 수 밖에 없도록 진행되고 있다. 결국 삼손은 진심을 털어 놓는다. 천하장사 삼손이 4라운드에 들릴라에게 KO패로 꼬꾸라진다. 처음부터 이리될 줄 알았을까? 자기만 몰랐지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실인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 여인의 품에 있으면서도 승리할 수 있겠는가? 성도는 말씀을 벗어나면 지극히 연약하고 무능할 뿐이다. 유혹의 자리는 요셉처럼 아예 벗어나는 것이지 기도하며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삼손은 머리털을 밀리고 힘을 잃어버린다.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힘을 잃은 것은 아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진심이 아니라 들릴라에게 진심이었을 때, 곧 하나님이 아니라 들릴라에게 마음을 주었을 때 하나님꼐서 그를 떠나셨고 그의 능력은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삼손은 자기에게서 능력이 떠난 줄을 모르고 여전히 호언장담하며 큰 소리친다.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얼마나 슬픈 비극인가? 이미 자기가 여호와를 떠나고 여호와께서도 자기를 떠나셨는데, 깨닫질 못하고 허풍을 떤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능력은 잃어버렸다. 능력이 없으니 목소리만 높이고 말만 그럴싸하다. 혹시 우리가 그런 것은 아닌가? 내가 그런 것은 아닌가? == 마무리 = 삼손에게 들릴라가 있었듯이 당신에게도 들릴라가 있는가? 들릴라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우리에게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우리는 유혹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애시당초 사랑해선 안되는데 순수한 진심이라고 포장을 한다. 들릴라 쯤은 자기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목숨을 건 도박을 즐긴다. 성경은 단호하다. 세상을 사랑치 말라. 성도가 세상을 얼만큼 사랑하든지 그것은 일방적인 짝사랑이다. 세상은 성도를 사랑하지 않는다. (잠 6:26)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나에게 다가오는 들릴라가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정신차리고 단호하게 물리치시기를 바란다. 당신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셨지만 깨닫지 못하고 전과 같이 물리치겠다고 큰소리친다. 하나님의 능력은 머리카락에 있는게 아니다. 내가 붙들고 지키고 있는 그 몇가지 규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 하나님께로부터 들릴라에게 옮겨질 때 하나님도 능력도 함께 떠나신다.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목소리를 높이고 큰소리를 치지만, 부끄러움만 당할 뿐이다. 아무말 대잔치로 무기력할 뿐이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면, 다시한번 여호와께로 돌아가 성령에 붙들린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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